불편함의 십자가를 질수 있는 그리스도인
불편함의 십자가를 질수 있는 그리스도인
글쓴이/봉민근
세상은 편한함 만을 추구 한다.
그래서 조금만 불편해도 그런 교회에는 나가려 하지 않는다.
20여년 전에 중국에서 목회하시는 분이 선교사님과 함께 방문한 적이 있었다.
한국교회에 와서 인상 깊게 느낀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교회 의자가 너무 좋다는 것이 였다.
자신들의 교회에는 등 받지가 없는 의자인데 한국교회의 의자는 너무나 안락하고 좋아서 앉으면 졸리고
앉아 예배드리기에 황송하다는 것이 였다.
한국교회에도 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교회에 의자가 없는 교회가 많이 있었다.
교회에 처음 의자를 들여 놓았을 때에 성도들의 반응은 황송하여 의자에서 기도 하지 못하고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수가 있었다.
현대 교회에는 불편함을 참지를 못한다.
예배 드리러 먼저 교회에 온사람이 안쪽부터 앉으면 좋으련만 늦게 온사람이 자리가 없어서 허둥대는 것을 보고도
자신의 자리를 고수 하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배의 자리에 와서까지 자신의 조그마한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 것이다.
교회 식당에도 먼저 가서 자리를 차지 하려고 식탁 의자에 성경 가방 부터 올려 놓고 식사를 받으러 가는
사람들을 볼 때에 방금 예배 드리고 온 사람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정도다.
교회 바닥에 휴지가 떨어져도 주우려 하지 않고 심지어 교회 비치용 성경을 가져다 보고
예배실에 그대로 놓고 가는 사람들과 주보나 휴지를 교회 바닥에 놓고 가면서 교회 관리 하시는 분들이
하겠지 하는 마음 자세는 오늘 날의 성도들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다.
언젠가 손ㅇㅇ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교회에 와서 주차를 할 때에 솔선 하여 나오기 힘든 곳에 하고 예배의 자리도 제일 불편한 곳에 앉아서 예배 드리려는
마음 없이 예배하는 자는 진정한 예배자가 아니라고 하였다.
아무리 편리한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남을 먼저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도 없이 어찌 그리스도의 사랑을 논 할 자격이 있겠는가?
자신의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엄청난 것을 요구 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의 본분을 지키며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 십자가 백날 떠들어도 그런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그는 아직 덜 익은 그리스도인일 수 밖에 없다.
나의 작은 희생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
세상에 나가서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 한다면 어찌 세상이 그를 보고 주께 돌아 올수 있겠는가?
예배에 잘 참석하는 것도 중요 하지만 삶 속에서의 예배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우리 모두 불편함의 십자가를 질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