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리새인이다
내가 바리새인이다
글쓴이/봉민근
설교가로 산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것이다.
설교자는 설교한 대로 살아야 바리새인이란 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설교를 통하여 얼마나 많이 바리새인들의 잘못을 지적 했었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도 설교한 대로 살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았을 것이다.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설교자의 삶도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행동 하나, 말 한마디가 매우 조심스럽고 어렵다.
인간이 큰 소리쳐도 몸에 다가오는 약한 감기조차 스스로 막을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가르친다는 것은 본을 보이는 삶이 동반 되지 않으면
가식적인 인간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미약한 존재요 불안정한 존재다.
언제든 죄를 지을수 있는 물가에 놓인 아이와 같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도달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 주라는 것이다.
듣는 자나 전하는 자나 모두가 죄인이다.
남의 눈속에 있는 티를 보기 전에 나도 그럴수 있고 그 보다 더 할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남의 허물을 발견한 것은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나에게 사명을 주신 것이다.
성도는 서로 세워주고 감싸주며 사랑하라고 공동체에 묶어 주신 것이다.
세상에 남의 허물만 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악을 한가지 더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설교가들이 거룩을 추구 하야 하는 이유는 자신이 본이 되지 않으면
듣는 자들도 변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너무나 가르치려는 자세로 하지 말고 섬기는 자세로 할 때에 성도들은 감동을 받게 된다.
목회자들의 단점중에 하나가 사람들을 만나면 무조건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영적 수준이나 지식을 고려하지 않고 나는 가르치는 자라는 인식이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거부 반응을 일으킬 때가 많다는 것이다.
기독교방송들을 보면 설교가 많은 비중을 차지 한다.
그들의 삶을 보여 주지 못하고 무조건 전하려는 것만 한다.
기독교의 망조는 삶이 없기 때문이다.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의 지탄에 기독교가 휩싸이는 것이다.
존경받는 목회자는 설교 잘하는 자가 아니요
행동으로 보여 주며 섬기는 자다.
주님도 늘 본을 보여 삶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셨다.
너무 가르치려 하지 말아야 한다.
성도들의 대부분은 설교자 보다 세상 지식적으로나
성경도 상당한 수준에서 알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섬기기 위해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는 우물안의 개구리가 되면 요란한 소리만 넘쳐 나서 세상에 잡음으로 들릴 뿐이다.
오늘날 왜 목회자들이 존경 받지 못하고 세상의 잘못에 대해서 쓴소리를 할 수 없는 것일까?
두말 할것도 없이 본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르치려 할 때에 "너나 잘하세요"라는 메아리에 놀라지 않을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더 배우려는 욕심 보다 알고 있는것 한 가지라도 실천 하는 것이
백번 성경을 읽는것 보다 낫다.
성경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면 무엇하나?
삶이 없다면 헛발질하는 신앙일뿐인 것을.....
성경에 바리새인 욕하지 마라
내가 바리새인이다.
내가 죄인 중에 괴수요 외식하는 공장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