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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에 책임을 지자

엘리야1 2020. 5. 25. 12:52

말에 책임을 지자                  

 

글쓴이/봉민근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드릴 때 성도가 서로 교통 하는 것이란 대목이 나온다.

새로 번역한 사도신경에는 성도의 교제라고 되어 있다.

성도가 교제하고 교통하는 것이 신앙고백으로 드려지고 있는 것이다.

 

왠지 양심이 찔린다.

매주 성도의 교제와 사귐을 고백하면서 그렇게 살고 있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 고백 되어지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거짓 고백을 매주 하게 된 셈이다.

어떤 때에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차라리 그런 고백 하지나 말 것이지 거짓으로 고백되는 나의 신앙고백이 하나님을

놀리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다.

 

만나는 성도가 어떤 삶을 살든 상관하지 않는 우리의 무관심한 신앙생활이 너무나 형식에 치우쳐 있다. 

과연 교제 없는 관계속에서 사랑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 여기서 무너진다.

서로 짐을 나누어 지는 삶이 있을 수 없다.

 

결국 나 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믿으니 천국가면 됐지! 하는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신경을 한 줄 한 줄 묵상해 보면 나는 그것과 관계없는 신앙생활을 할 때가 더 많다.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더 의지 할 때가 많다.

 

이것은 결코 신앙이라 말할 수 없다.

본질은 외면한 채 외식만 살아 남아서 나 자신 스스로 속이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차라리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죄는 되지 않았을 것을 결국 하나님을 우습게 보는 허언을 한 것이다.

 

인생은 이어 달리기를 하는 선수와 같다는 말이 있다.

씨 뿌리는 자가 있고 거두는 자가 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다.

 

하나님이 허락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인데 넘치게 하여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려는

바벨탑을 쌓는 것이 문제다.

부르심에 합당하고 주어진 사명만 잘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말로만 남발하는 신앙은 반드시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책망받을 것이 분명하다.

모든 것 다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욕심이다.

맡겨주신 만큼만 충성을 다하면 된다.

고백하고 말한 것에 대하여 책임 질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하다.

그러다가 스데반처럼 일찍 부르시면 가는 것이 인생이다.

 

신앙고백도 충성도 헌신도 좋은 것이다.

그러나 함부로 남발하는 신앙고백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 드릴 수도 있다.

 

나 자신을 성령이 이끌고 가지 않으면 마귀가 나의 운전대를 잡을 수도 있다.

나를 내려놓고 부족함을 주님으로부터 채움을 받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말에 책임을 지자.

그것이 신뢰받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법이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