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함께하는 신앙
예수님과 함께하는 신앙
글쓴이/봉민근
지금은 장로님이 되셨지만 오래전에 친하게 지내던 집사님이 계셨다.
지혜롭고 하시는 모든 일들을 잘 해내시는 능력 있는 집사님이셨다.
만날 때마다 그분의 능력에 부러움이 있었다.
그분에게 가끔 하는 농담이 있었다.
"능력 많으시고 죄는 더 많으신 집사님"하고 부르면서 서로 웃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사람이 능력도 있고 지혜도 많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 모두가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것뿐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능력보다 하나님 앞에 죄는 크고 더욱 많다.
스스로 씻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죄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죄를 씻으실 수 있다.
교회에 가는 것에 급급해하면서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온전한 죄 씻음의 경험을 하지 못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교회 다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그 자리에 머물러 서서 구원받았다고 착각하면 큰 오산이다.
설교 잘하려고 급급해서 열심히 준비를 하나
정작 예수님의 복음이 빠진 설교를 하는 목회자도 많다.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
예수님이 보이는 설교를 하지 못한다면 그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증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역사의 중심이요 믿음의 초점이다.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선교사들이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왜 죽어야만 했는가?
생명의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강단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 보면 복음은 거의 없고
윤리와 복 받는 것에만 치중되어 있어서 예수님이 보이 지를 않는 메시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예수님 만날 기대와 소망이 없이는 교회에 나갈 이유도 필요도 없다.
본질인 예수님을 빼놓고 핵심 잃은 신앙생활은 오히려 시간 낭비일 뿐이다.
장작을 피워 물만 끓인다고 밥이 될 리가 없다.
교회에 모이고 설교를 한다고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다.
교회라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복음을 말하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다.
설교 내내 예수님의 "예"자도 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예수님의 증인 된 교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해야 한다.
앙꼬 없는 찐빵을 언제까지 계속해서 양들에게 일용할 양식이라고 먹일 것인가?
생명력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이 보이는 설교와 예수님을 만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예수님이 드러나지 않는 찬양과 외침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직 예수님을 말하고, 예수님을 전하고, 예수님을 찬양하고, 예수님으로 살아야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