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5. 3. 15:37ㆍ좋은 글, 이야기
|
장로회신학대학을 다닐 때 일 년에 두 차례씩 부흥사경회를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흥사경회가 끝나면 교수님들과 함께 모든 신학생들이 여러 지역으로 전도를 나갑니다. 한번은 강남터미널로 나가서 전도를 하는데 한 대학생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은 대학에서 경제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이었고 어렸을 적에 교회를 다녀본 적은 있으나 지금은 교회와 담을 쌓고 사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에게 시간을 좀 내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학생이 먼저말문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 학생은 어렸을 때 교회에 가서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지금까지도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 학생의 궁금증은 이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후 왜 그 귀신을 돼지 이천 마리에게 들어가게 해서 그 많은 돼지들을 바다에 몰사시켰냐는 것입니다. 그냥 말씀만으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지 왜 아깝게 그 많은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시켰냐는 것입니다. 그 학생은 경제를 공부하는 학생답게 그 돼지의 값어치가 지금으로 따져도 많은 돈일 텐데, 그리고 예수님이 남의 재산을 이렇게 손해를 입혀도 되는 것이냐고 열변을 토해가며 나에게 따지듯이 물어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신 일은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렀을 때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은 무덤 사이에서 거주하며 사람들이 쇠사슬로 묶어도 그 사슬을 깨뜨리고 다니며 돌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귀신들린 사람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귀신들은 자신들을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 귀신들이 돼지에게 들어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바다로 내려가 몰사당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께 와 그 지역에서 떠나 주실 것을 간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이 돼지 몰사 사건이 난 다음 돼지 주인은 돼지 이천 마리에 대한 보상을 예수님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돼지 이천 마리보다 한 사람의 고침이 더 소중했다고 생각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 그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도리어 돼지 주인보다 더 흥분해서 몰사당한 돼지들에 대해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실 돈 몇 푼에 게거품을 물고 싸우는 현대인들에게, 그리고 돼지 한두 마리에 더 관심을 갖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왜 사느냐고 물어 보면 그들은 돼지 치는 재미에 산다고 말을 합니다. 현대인들의 관심은 오직 돼지에만 있습니다. 돼지 한 마리라도 더 소유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돼지 몇 마리를 가졌느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이 달라집니다. 돼지를 많이 소유한사람이 큰소리치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돼지 한두 마리 더 치는 일에 목숨을 겁니다. 그래서 결국 돼지가 인간을 지배하는 사회가 되어 버렸습니다.
돼지 치는 재미에 푹 빠져 사는 현대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죽을 때 돼지새끼 한 마리라도 가지고 갈 수 있냐고?
예수님은 한 생명을 얻기 위해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한 영혼을 구하시기 위해 그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 참혹한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까지 자신을 희생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돼지 이천 마리보다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셨고 온 천하보다 나의 한 영혼을 더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돼지 한 마리를 얻기 위해 사람의 목숨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천하를 얻기 위해 수십만의 사람도 희생시키려 합니다. 마치 돼지를 얻기 위해 강대국이 약소국가를 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들은 돼지새끼에 대한 욕심보다 한 영혼에 더 관심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우리의 교회는 예수님보다 더 많은 돼지를 소유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어가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나는 주님께서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나의 영혼보다 돼지 치는 것에 더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원본보기
칼 럼 필 자 |
김해찬목사 호주 시드니 하나교회 |
|
흐 르 는 곡 |
| |
칼럼보내주실곳 |
창골산 봉서방카페 |
'좋은 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찍일어나면 세가지가 득 (0) | 2008.05.03 |
---|---|
주님을 경험하는 100가지 방법 (0) | 2008.05.03 |
행복한 가정이란 (0) | 2008.05.03 |
서로 존중하며 살게 하소서 (0) | 2008.05.03 |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라 (0) | 2008.05.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