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誤解)

2009. 6. 24. 14:53좋은 글, 이야기

오해(誤解)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언제쯤 될까결혼 했을 것을 전제로, 태어나서 30년쯤 되고부터 조금씩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을 알아 가게 될 것이다.부모의 심정을 좀더 이해하려면 그로부터도 몇 십 년을 스스로 자녀를 낳아서 기르고 수 많은 눈물과 열정을 쏟아 부으면서조금씩 그리고 실감 있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남 금성여로 만난 부부가  (* 화성남 : 화성에서 온 남자  * 금성여 : 금성에서 온 여자) 대체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산다고 하더라도  숨겨져 있는 생각과 습관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목욕할 때 이태리 타올을 꼭 사용해야 하는 아내가 있다고 할때  이런 습관에 펄쩍 뛰던 남편도 이를 두고 공방을 거듭한 지 30년쯤 된 후
어느 때부터 인가는 서로 용인하며 조용히 지내는 관계가 된다.

 

    이해(理解)라는 영어 단어에는 “ 밑에서다(Understanding)” 라는 뜻과  지식이나 명철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잠언).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철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밑에 서는 낮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예수님의 죽음은 무지한 군중들의 억지와 소신 없는 권력자의 
민중 눈치보기가 빚은 비극이었다고 할 수 있다.
거기에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오해와
  시기와 질투가 섞인 잘못된 판결이 낳은 결과였다.

 

   역사와 독일 국가에 뼈저린 교훈을 남긴 히틀러는  민족에 대한 우월주의, 타 인종에 대한 편견과  인간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의 결핍, 오만과 독선으로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를 선동(煽動)하여 오도(誤導)한다는 것과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목을 뒤집어 쓰고   엉터리 재판으로 독배를 마시고 희생되었다. 그는 산파술이라는 독특한 화술(話術)로 청년들에게 지혜를 깨우쳤을 뿐이며, 신을 믿는다고 주장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이해되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오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인간의 연약한 부분을 통해서 일어난다고 볼 수 있다.

 

   무지(無知)는 오해를 부른다. “하나님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들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하고 있나이다”
라고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알지 못하는 가운데 메시아를 죽였던 것이다. 선입관(先入觀)은 사고의 유연성을 떨어뜨리고, 오해의 원인이 된다. 자연이나 동물에 대한 선입관까지도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돼지가 불결하고 미련하다던가
곰이 둔하다던가 하는 생각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선입관과 오해 일 뿐이다.
모든 동물은 나름의 존재의미와 생존의 법칙을 가지고 있다
. 동물이나 식물은 인간을 위한 하위체계가 아니라
우주질서의 한 조화로운 부분으로 이해해야 될 것이다
.

 

   자신이 지으신 피조물에 대해 “ 보기에 좋은 “ 창조주의 눈은 이 모든 존재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존재로 보이실까? 편견(偏見)은 오해를 불러오는 지름길이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 만을 본다고 한다. 편향된 시각이 판단을 그르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것이다. 출신에 따라, 지역이나 직업에 따라
경험이나 능력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려고 한다면 큰 잘못을 범하게 된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의 죄로 막힌 관계를  아주 극적이고 특별한 방법으로 화해를 이루셨다. 성경의 가르침은 예수님이 화해를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만일 누가 예물을 드리러 성전에 들어 가다가 형제와 불화한 일이 생각나거든  그 예물을 거기 놓아두고 가서 화해를 한 후에 와서 드리라”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화해 하지 않은 채 주님 앞에 나아 가는 지 모른다.  

 

    세상사람들의 화해의 방식은 간단하다. 술잔 앞에 마주앉아 약간의 알코올에 의지하여  서로 터 놓고 얘기하다 보면 쉽게  화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불화한 일이 있으면, 예수님을 중재자로 모셔놓고  마주 않아 화해 해 보자. 내가 먼저 손을 내어 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원수 갚는 것은 나의 몫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무엇이 그리 억울한가 곰곰 생각해 보라. 예수님만큼은 억울할 수 없지 않은가? '너희 관용을 모든사람에게 알게 하라’- 바울 사도의 부탁이다.인내를 가지고 관용을 연습하자.

 

    처음에 어려운 것을 하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오해를 불식하고 하나님과 이웃과 화해를 이루기 위해서 이와 같이 기도 드립니다.

 

주여

내가 깨닫지 못한 가운데 누구를 오해하고 있었던 일들을
생각나게 하소서


나를 오해하고 있는 이웃에 대하여는
항상 이해와 관용으로 너그럽게 하시고


무지와 편견, 선입관과 단견(短見)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시며
사람과 사물을 널리 이해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판단함으로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않게 하소서
자연과의 화해로 미래 환경과도 조화를 이를 수 있게 하시며

하나님과의 화해를 먼저 구하게 하소서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오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칼  럼  필  자

오인섭

서울 도봉구 

oiskore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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