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해야만 하는 목회자?

2010. 3. 15. 10:34좋은 글, 이야기

자립해야만 하는 목회자?  

  아내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지하철에서 앉아 있는데 앞에 두 분이 서있셨습니다. 두 분이서 대화를 하시는데 한 분은 장로님 같고 한 분은 교회 교역자(전도사) 같아 보였다고 합니다.대화 내용인즉..... " 자기 교회에서는 담임목사의 신수비를 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 신수비로 더 많은 구제를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담임목사 뿐 아니라 다른 교역자들도 마찬가지다.

 

   우린 처음 청빙을 할 때부터 이것을 조건으로 말한다. 쓸데없이 건물을 키우고 신수비로 물질을 쓸 것이 아니라 이것을 구제하는데 더 잘 사용하는 것이 좋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그 대화에서 장로님에게서 알 수 없는 당당함과 떳떳함이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대화 내용으로 보면 설득력이 있어서 그런 것 처럼 보이는데 뭔가 좀 그랬다는 것입니다.

 

   "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 (느 13장 10~11절)

 

   위 말씀은 느헤미아가 성벽을 봉헌하고 개혁을 하고 잠시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에게 다녀 온 후에(6절) 일어난 일을 보고 한 말입니다. 구약의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께서 주의 성전에서 봉사하도록 구별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기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성전 제사를 드리고 난 후 백성들이 드린 예물 중에서 그들의 분깃을 주셨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이 직분을 목회자가 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드렸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예배를 드립니다.

 

  바울은 자신이 마땅이 누려야 할 것이 있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누려야 할 것을 누리지 않았습니다.(고전 9장 1~14절) 사도행전에서는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 ( 행 6장 2~4)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말씀 사역에 더욱 힘을 들였을 때 "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 (7절)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목회자가 구약의 선지자와 레위인과 신약의 사도와 똑 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들이 맡은 사명을 많은 부분 감당하고 있다고 봤을 때 이 문제는 생각을 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위 말씀과 같이 바울 같이 스스로 택한 것이라면 괜찮겠지만 사도행전 말씀 처럼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 부흥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물질이 많은 가치 중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물질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고 혹 그렇지 않더라도 물질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교회에서도 이 물질을 가지고 많은 선한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지만 영혼의 구원의 문제와 구제의 문제는 다른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고 주님은 그들에게 떡을 주시고 그들의 병을 고치셨지만 그들의 영혼의 구원과는 또 다른 것이었습니다. 병 치료를 받는 것(현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영혼구원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자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으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눅 17장 11~19절)

 

   분명 열 명이 나음을 받았지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감사한 한 사람에게만 예수님께서는 그 영혼의 구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은 분명 표적에서 나오는 것이나, 배고픔이 해결됨이나, 병이 나음이나, 현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바라보는 믿음 가운데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롬10:17)

 

   목회자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하여 선포하는 말씀을 듣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은혜 중에 큰 은혜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교회를 통해서 많은 말씀을 주시며 넘치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지만 교회가 먼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교역자들에게 이런 저런 계약을 적용한다는 것은 스스로 더욱 깊고 더욱 은혜롭고 더욱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 듣기에 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말미암는 부흥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목회자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직업의 하나가 아닙니다. 그들은  매 주일 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대언하는 자요,  험한 세상 속에서 힘들어 하는 어린 양들을 말씀으로 보살피고 먹이고 치라고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이 때때로 하나님을 보지 못할 때 말씀으로 주님을 바라보도록, 주님의 뜻을 전하기도, 권면하고, 사랑하도록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분명 목회를 하면서 다른 직업처럼 월급을 받고 있지만 그들과 다른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이 이유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가운데 오히려 제 자신을 많이 돌아 보게 됩니다. 난 얼마나 설교단에서 선포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전 2장 13절) " 아멘" 하였는지..... 고개가 숙여 집니다. 이번 일과 깨닿게 하신 모든 말씀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제게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모든 은혜를 허락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칼  럼  필  자

미래와 희망

부산 사하구 하단2동

testament76@hanmail.net

흐  르  는  곡

  십자가의 전달자

 

칼럼보내주실곳

창골산 봉서방카페

b0356 @hanmail.net

 전체메일에서 찬양을 들으시려면 전체메일 상단 혹은 하단에 표시하기  를 누르시면 원본과 함께 찬양을 들으실수 있습니다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 첨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