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6. 10:53ㆍ좋은 글, 이야기
"하나님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얼마 전, 모 교회 주일 설교 때 화폐개혁으로 절단 난 북한의 시장경제에 불씨를 집히기 위한 쌀 구매자금 모금운동을 위한 설교 2탄으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란 설교 제목으로 다음의 말씀이 인용되었습니다,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눅7:31이하) "To what, then, can I compare the people of this generation? What are they like? They are like children sitting in the marketplace and calling out to each other: "We played the flute for you, and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and you did not cry.' ...............
이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위해 많이 인용되는 구절입니다,그러나 위 영어성경 상 this generation=they=children =we=you 를 동일 지칭으로 본다면, “피리를 부는 사람”도 “춤추지 않는 사람”도 다 장터에 앉아 놀고 있는 아이들이요, 오직 자기중심적 신앙에 사로잡혀 상대에 대한 이해나 배려 없는 당시의 <자칭 유대인>들로, 그들이 즐거워 먹고 마실 때 “세례 요한은 와서 떡도 포도주도 마시지 않음에 귀신이 들렸다 하고, 인자는 와서(안식일에도) 먹고 마시자 그들은,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눅7:33-34) 라고 비난하는 바, 결국 자기들의 유전에 벗어난 언행을 하는 예수나 세례요한은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잘못된 지식을 가진 가짜가 진짜에게 “우리를 따르지 않는 너희는 가짜요 거짓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형국으로, 그들이 부는 피리소리란 한마디로 “우리랑 같이 놀자”란 세상의 속삭임이요, 자기들의 유전을 따라 유유상종하자는 유혹의 가락입니다,이에 대해 주님은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하여,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 결과, 어쨌든, 단2~3주 만에 모금목표액 3억을 넘어 5억 이상이 모였고, 그 교회 교인 뿐 만아니라 전국의 많은 타 교인들도 너도 나도 경쟁하듯 동참하여, 모금에 동참하는 교인들의 댓글로 그 교회 게시판이 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이 모금 운동에서 설교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목사님이 피리를 부셨고, 교인들은 춤을 추었습니다, 그 결과 북한 돕기 운동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믿는 자의 삶에서 믿음은 이렇듯 <순종>으로 반응함이 아름답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시작하시고 반드시 이루심이 놀랍습니다,.. 할렐루야!
“당(堂)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이것은 이 모금운동의 수혜자인 북한 체제를 대표하는 구호입니다, “하나님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이것은 이 모금운동을 보여준 믿는 자의 행동지침 같아, 청지기의 삶을 사는 믿는 자의 구호로 하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이 두 구호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공산당의 결심에 복종하는 것은 신념에 대한 태도요, 이는 비 인격체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러한 복종이나 맹종에는 그것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지식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따라하면 될 뿐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이 결심하신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복종이나 맹종이 아닌 <순종>이어야합니다,순종은 상대에 대한 인격적 신뢰가 먼저 있어야하며, 이러한 신뢰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상대에 대한 정보(지식)이 있어야합니다,
믿는 자로 예수에 정신없이 미친 것 까지는 참 좋아 보이나, 자칫 말씀에 무식하여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비인격적 <신념>에 머물다 보면 제사보다 나은 순종은 맹종이 되고 복종이 되어, 단지 비난이나 왕따를 면하기 위해, 나아가 자기의 신앙심을 과시하기위한 방편이나, <자칭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자기기만에 빠져<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걷지나 않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도 갖게 됩니다,
외식(연극)하는 믿음을 주님이 미워하심은 바로 그들 속에 진리(리어리티)가 없기 때문이요 (마23;27) 하나님의 이름으로 진리 없이 행함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속이고 멸시하기 때문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4;12이하)하십니다,
태산(泰山)은 잘 넘어갔으나 돌 뿌리에 걸려 넘어지는 소탐대실(小貪大失)하는 신앙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진정 하나님과 화목하고, 말씀과 뜻 속에서 자유하고 기뻐하는 믿음의 삶을 살기위한 성숙된 신앙을 책임질 자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흔히 유명 목사님이나 강사의 감동적인 설교나 간증을 즐겨하고, 교회가 시키는대로 봉사하고 구제하고 나누고 섬기고 그렇게 교회생할 하다보면, 어떻게 영적인 성숙이 오겠지 하는 안일한 매너리즘에 빠집니다,
이러한 웰빙신앙을 추구하는 신앙생활이 과연 나의 온전한 영적인 성숙을 가져 올까요? 나의 신앙생할을 목사님이나 강사님에게 위임하여도 별 문제 없는 것일까요? 피리를 분다고 무조건 춤만 추면되는 게 신앙생활일까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요10;3이하)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뜻)을 알아듣는 분별력이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분별력은 정확한 지식을 요(要)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엡6 13~17)하십니다,
그리하여, 믿는 자의 삶이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끊임없는 간증이 되기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무시로 하나님께 주목(집중)함으로, 점점 주님을 닮아 가며, 나아가 주님의 일에 동참하게 되고, 하나님의 계획에 있어 나의 역할을 알게 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심정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요?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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