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26. 08:50ㆍ신앙간증
*** 하나님이 주신 장학금 ***
1988년 무렵부터 우리 집안은 서서히 무너져 갔습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습니다.
유치원을 새로 사려다가 계약 사기 당하고 얼마후 엎친데 덮친격 잘 운영되던 아버지의 학원이 연쇄부도 당하고 믿었던 가까운 이들에게서 실컷 이용당하고...
그들이 부모님이 투자했던 소중한 돈을 빼서 달아나서 또 한번 배신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는 와중에 인천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 줄만한 부모님이 소유했었던 큰 학원 세 개를 잃고 또 이어서 세 채의 집이 빚 청산에 날아가고...
부모님이 평생 땀흘려 벌었던 수중에 있는 돈 다 사라지고 나서야 수억원의 빛과 함께 길바닥에 나 앉아야 될 정도로 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2년여의 시간동안 우리 가족 모두는 가난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져 들고 있었고 그무렵 나는 대학 입시를 치루게 되었습니다.
나는 처음에는 고려대 영문과에 지원하려고 했습니다. 학력고사 예비시험 전국성적에서도 항상 10위권 안에 있었기에 더욱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집안은 급격히 기울어가고 있었고, 밤늦게 야간학습까지 끝나고 1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올때면 어머니는 불꺼진 방에서 혼자 대학입시를 앞둔 둘째 아들 이었던 날 위해 기도하고 계시곤 했습니다.
일부러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우연치 않게 어머니의 기도소리를 몇 번 듣게 되었는데 내가 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주의 종이 되기를 울며 기도 하셨습니다.
3월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기도가 응답 되었는지 11월이 지나고 있을무렵 나는 신학대학교를 가겠다고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인천 부평동에 있는 부광 감리교회를 온 가족이 다니고 있었는데 이왕 신학대학교를 가려면 감리교를 가자고 생각해서 감리교 신학대학교에 대입 응시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1990년 12월 중순의 어느날 감리교 신학대학교의 입시를 치르기 전날이었습니다.
홍제동 서울 외삼촌 댁에서 시험 전날 하루를 신세 지내며 내일 치루어야 할 대입 학력고사 시험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신학대학교 입학시험은 당일 고사장에서 치루는 학력고사, 성경시험, 그리고 면접시험으로 치루어졌습니다.
신학대학교 앞에서 선배들이 팔던 예상 문제집을 사서 신구약 성경시험 문제를 풀다가 저녁늦게 잠이든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캄캄하고 어두운 곳이 보였습니다. 습하고 눅눅한 끝이 안보이는 깊은 동굴 같았습니다.
그곳에 내가 커다란 구렁이 네 마리에 엉켜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혀를 낼름거리며 내 몸뚱이에 또아리를 틀며 칭칭 감더니 곧 숨이 막힐 듯이 조여오는...
그 엄청난 힘에 의해 내장이 터져나갈 듯 뼈가 으스러질 듯 형용하기 힘든 통증을 느끼며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목사가 되겠다고 신학대학교 입시 치르러 와서 신학대학교 문턱도 못 밟아보고 허망하게 죽게 생겼습니다.
비록 꿈의 상황이었지만 현실속의 실제상황처럼 느껴졌고 이대로 죽기엔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 때 번득 머리에서 지혜로운 생각이 번개치듯 떠올랐습니다.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하는 음성이 귀가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네 마리의 구렁이들에 칭칭 감긴채로 소금 절여진 배추처럼 축 늘어져 정신이 가물가물 했는데 눈이 반짝 뜨이고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강한 의지가 되살아 났습니다.
주변을 살펴보니 구렁이가 날 감고 있는 동굴 바닥엔 가느다랗고 볼품없이 작은 나뭇가지 하나가 놓여 있습니다.
있는 힘껏 죽을힘을 다해 손을 뻗어 그 나뭇가지를 움켜쥐었습니다.
그리고선 내가 지금 부여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검으로 변하기를 기도했습니다.
기도가 끝나자마자 눈을 뜨니 나뭇가지에서 모든 어둠을 사를만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날센 검으로 변했습니다.
검으로 변한 나뭇가지를 구렁이들의 몸에 갖다 대기만 했는데...
그 어떤 칼보다 예리하고 날카로운지 구렁이 몸뚱이가 스으윽 베어지며 날이 시퍼런 칼에 무우가 댕강 싹둑 두동강나듯이 구렁이들의 몸통이 잘려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 나뭇가지로 구렁이들을 모두 토막을 내어 죽였습니다.
토막난 구렁이는 잠시 꿈틀꿈틀 하다가 도깨비 사라지듯 펑하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습니다. 식은땀과 놀란 가슴으로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새벽 5시경이었습니다.
이러한 꿈을 꾸고 출발한 입시 길은 전체 응시생중 4등으로 합격이라는 영광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런 멋진 꿈을 꾸었지만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학교 입학 등록금을 마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려웠던 터라 등록 마감 전날까지 아무 희망적인 소식이 없었습니다.
가까운 친척들에게도 등록금을 구하려고 어머니가 전화를 수차례 걸어보셨지만 모두들 사는게 힘들다고 거절을 하셨습니다.
내일까지 등록을 하지 않으면 입학취소가 됩니다. 도무지 길이 없었습니다.
그날저녁 사실상 입학을 포기한 나는 등록마감 전날 밤 이렇게 눈물흘려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의 가정 형편과 제가 무능력함을 용서해 주세요,"
"저희 가정이 가난함으로 인해 학교에 들어가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1년동안 다시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아르바이트도 해서 등록금 마련해서 내년에 다시 도전하겠습니다."
"하나님 저의 부족함을 용서해주세요." 하고 기도를 드리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쓰리고 아프던지요. 기도하며 울다가 가슴을 치며 통곡하며 울다가 지쳐 쓰러지듯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토요일 아침 오전 9시경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습니다. ㅂ 교회 박 장로님이셨습니다.
어제 저녁 꿈속에서 하나님이 나타나 저희 가정에 어려움이 있으니 도와주라고 하셨다고 말씀하시며 무슨 일이냐고 하셨습니다.
꿈을 꾸신 당사자인 장로님도 신앙생활 하다가 너무 신기한 꿈인지라 본인도 적지않이 놀라셨다고 하십니다. 하도 꿈이 기이해서 긴가 민가 하다가 혹시나 해서 이렇게 우리 집에 전화를 넣었다고 하십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저는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꿈 속에서 전화번호를 알려주신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밤 그 장로님의 꿈에 하나님이 똑같이 세 번이나 나타나셔서 도와주라고 했다는 겁니다.
특별한 신앙체험이 없었던 나는 하나님이 그런 것도 꿈으로 가르쳐 주시나 하며 반신 반의 하며 잘 믿어지지 않았지만...
어머니와 같이 그분 장로님 댁으로 가서 입학 등록금으로 현금 120만원을 손에 받아 들고나서야 꿈이 아닌 현실로 받아 들여졌습니다.
요즈음은 아무은행에나 가서 온라인으로 등록금을 입금하면 입학 등록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대학교에서 가까운 지정된 은행에만 등록을 해야 등록이 인정되던 때입니다.
그때가 10시30분쯤이었고 곧바로 서울로 출발하여 토요일 12시 정각쯤 서울 서대문 지점 상업은행에 입학 등록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내가 허겁지겁 달음박질해서 은행에 도착했을 때에는...
은행 셔터문이 내려져 있었고 몇몇 은행 업무를 마치지 못한 고객들을 위해 뒷문이 살짝 열려져 있었고 은행 안은 막 문닫으려고 마감준비가 한창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도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추시는 분이셨습니다. 지금도 ㅂ 장로님과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주신 장학금으로 감리교 신학대학교 1학년 신학생이 되었습니다.
이런 기적이 육개월후 또 한번 일어났는데, 제가 13년전 신학대학 1학년 2학기때 당시의 일입니다.
집안이 어려워져 아버지는 빚쟁이들을 피해 도피중이셨고 동생은 어린 중학생이었고, 위로 두 살 위의 형님은 군 생활 중이셨습니다.
2학기가 되었는데 등록금을 낼 길이 없더군요. 입학할 때도 그랬는데 2억원이 넘는 빚과 그 빚에 대한 이자 감당은 그동안 내가 땀흘려 번 아르바이트 월급 저축한 것...
성적장학금, 교회에서 주는 장학금, 모두 이자 갚는데에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으로 들어가버리고 내 손엔 한푼 남아 있지 못했습니다. 그래 밤새 서럽게 울다가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꿈에 천국을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 세상으로 내려가기 싫다고 그곳에 가면 빚쟁이가 와서 어린 내 빰도 때리고...
은행에서도, 고리대금업자들도, 빚 독촉쟁이들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네 아버지 어디 계시냐" 하며 내 멱살을 잡고 빚 독촉을 하고, 이 모든 겪어 내야만 하는...
인생의 쓰디쓴 고난이 도무지 어린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인지라 예수님 세마포 옷자락 붙들고 울며 불며 떼를 썼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내가 인간의 몸을 입고 낮고 천한 헐벗은 이들의 세상으로 내려간 이유를 모르느냐" 말씀 하셨습니다.
"바로 그들을 위해 나 또한 사명이 있다" 하시며
"가라 세상으로" 하실 때 꿈이 깨었지요. 꿈을 통해 큰 위로를 받기는 했지만 오늘까지 등록금 마감일인데 아무런 해결 방법이 없었습니다. 꿈과 현실의 벽이 너무 크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때 갑자기 요란한 전화벨소리가 울립니다.
부천 어디인가에 사시는 분인데 느닷없이 우리 가정에 무슨 어려운 문제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누군지 모르는 분이 이른 아침에 전화해서 무슨 어려운 일이 없냐고 대뜸 물으시니 얼마나 어이없고 황당하기는 했지만 그 분이 하도 진지하게 물어보시니까 대답을 해드렸습니다.
저는 신학생인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등록금을 못내 걱정하고 있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분은 얼마가 필요하냐고 묻습니다. "나는 등록금 100만원이 필요합니다" 했습니다.
저의 은행 계좌번호를 두어번씩 재차 확인하며 물어 적으시고 그제서야 그분은 자신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어느 집(우리 집)에 어려운 일이 있으니 도와주라고 전화번호를 크게 불러 주시며 자기 머리맡에 주님의 손이 나타나 전화번호를 큰 글씨로 적더라는 것입니다.
그날저녁 그분은 똑같은 꿈을 세번이나 반복해서 꾸시고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하시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혹시나 해서 머리맡에 적어둔 전화번호 메모지를 보며 이렇게 전화를 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니까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면서 돈을 보내주신다고 신신당부 약속을 하시며 걱정 말라고 하십니다.
한 시간 후 제가 말씀드린 100만원에서 30만원이 더 보태져 130만원이라는 큰 돈이 제 통장에 현금으로 입금되었고 저는 그것으로 2학기 등록금을 내고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과의 통화가 끝나기까지 부천 어느 교회의 집사님이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밝히지 않으신 그분은 저에게 학교 잘 다니고 훗날 좋은 목사님이 되라고 하시며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저는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분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전혀 나와 연고가 없는 분을 통하여 꿈에 나타나 우리 집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신 하나님의 도우심, 그저 감사하고 감격스러울 따름입니다. 기적이란 이런걸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 꿈 속에서 나타나셔서 우리 집 전화번호도 알려주시는 너무나 세미하시고 자상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주님에게 그리고 이름을 밝히지 않으신 그분에게 갚을 수 없는 너무나 큰 사랑의 빚을 졌습니다.
평생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내게 맡겨주신 양떼들을 위해 헌신하고 주님의 사랑을 나누어주며 섬기는 그런 참 행복을 전하는 목회자가 되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나에게 하늘나라 장학금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성을 초월하시고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으시는 분...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
각 사람의 머리털 하나까지 세심하게 헤아리시는 세미하신 하나님, 우리의 필요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그분은 여호와 주 하나님이십니다.
선한목자 고한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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