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3. 2. 10:23ㆍ좋은 글, 이야기
나는 사형수였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이곳 미국 땅 인디언 부족마을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정의롭고 사랑이 많은 추장이 다스리는 평화스러운 인디언의 한 부족 마을에서 어느 날부터 밤마다 닭을 잃어버리는 도난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습니다. 이 부족의 추장은 범인이 잡히면 태형 열 대에 처할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에게 공고했습니다.
여러분 태형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태형에 대한 공포로 인해 범죄율이 낮은 국가로 잘 알려진 싱가포르 에서는 아직도 공공에게 심각한 위협을 주는 악의적인 행위를 한 사람이나 파렴치한 행위를 한 사람을 태형에 처한다고 합니다. 태형 집행에 사용하는 도구는 등나무로 만든 길이 1.2m, 두께 약 3cm 정도의 회초리인데 제자리에 서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3명이 교대로 서너 발자국 뒤쪽에서 달려 나오면서 체중을 매에 실어 힘껏 내리치는 데 이 태형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세대만 맞으면 거의 기절하여 병원으로 실려 간답니다. 그리고 병원에 실려 가서도 무시무시한 태형의 공포와 고통으로 계속 헛소리를 한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리고 그날 밤 닭을 또 도둑맞았을 까요? 안 맞았을 까요? 그렇습니다. 그 날 밤에도 닭을 또 도둑맞았습니다. 그러자 추장은 도둑에게 내릴 태형을 스무 대로 올렸습니다. 그래도 닭은 여전히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화가 난 추장은 태형 백 대를 선언 하였는데 이는 사형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태형 백 대를 맞고 살아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까요. 그런데 마침내 그날 밤 범인이 잡혔습니다. 그러나 막상 범인을 잡게 된 추장은 곧 곤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추장의 화난 엄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밤마다 닭을 훔친 도둑은 다름이 아니고 바로 추장의 어머니였기 때문입니다. 형을 집행하는 날이 되자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고, 이들은 이곳저곳에서 과연 추장이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수군대고 있었습니다. ‘추장이 부족들에게 한 약속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평소 어머니에 대한 지극한 효성을 보아온 부족들은 추장이 절대 어머니를 처벌하지 못할 것이라 하였고 또 한편 에선 늘 정의롭게 부족을 이끌던 추장이었기에 추장이 정말 자기 어머니에게 태형 백 대를 내릴까 궁금해 하였습니다. 형장에 끌려와 아들에 대한 미안함에 조용히 흐느끼며 떨고 있는 어머니의 작은 어깨를 바라보던 추장의 마음은 과연 어떠했을 까요? 드디어 결심을 굳힌 듯 추장은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를 기둥에 묶으라고 명령을 내렸고,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추장은 위엄 있게 깃털로 장식된 옷을 벗고 건장한 몸매를 드러내며 채찍을 들어서 자기 곁에 서 있던 젊고 용감한 사람에게 채찍을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곤 추장은 천천히 자기 어머니가 묶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서 자신의 우람한 팔로 자신을 그토록 사랑하는 어머니의 몸을 꼭 껴안았습니다. 그런 다음 채찍을 들고 서 있는 젊은이를 향하여 명령하였습니다. “태형 백 대를 때려라”
예수님께서 나를 만나주시기 전 나는 처절한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집 떠난 탕자였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을 알기 전, 내 삶의 모습은 처절한 방황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처절한 알코올중독자 였습니다. 기도원장이시던 나의 어머니, 다른 지방으로 집회 가셨을 때 이 못난 자식을 위해 그토록 처절히 눈물로 기도하시던 바로 그 기도실 에서…… 어머니의 처절한 눈물로 얼룩진 정결한 그 기도실 에서…… 술에 잔뜩 취해 친구들과 아무 생각 없이 잠을 자기도 했던 부끄럽고 추한 탕자 였습니다. 성도의 피땀 어린 예물로 술과 담배를 즐겼던 죄인 중에 죄인이었습니다. 젊은 세월 수 없이 어머니를 절망케 했던 불효자 중에 불효자였습니다.……그렇습니다. 나는 사형수였습니다. 사형집행 날짜만을 기다리며 죽음의 공포에 떨어야 했던 흉악한 사형수였습니다. 그런데...그런데...이 처절한 삶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수 없이 자살을 결심하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몸소 그 참혹한 사형 틀... 나를 대신하여 그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그 언덕길 오르셨기에...예수님 나를 대신하여 그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에... 나의 죄는 용서받았고 나의 사형을 집행하기위해 발부되었던 사형집행영장은 취소되어 예수님의 십자가에 함께 못 박혔습니다. 롬 3:23-24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멘 할렐루야!!!그렇습니다. 100% 죄인이었던 나는 100%의인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것이나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수 없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시몬 베드로가 묻습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선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나의 '가는 곳' 그곳은 바로 십자가 사랑의 곳 입니다. 내가 죽고 너를 살리는 곳, 즉 골고다 그 언덕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께선 십자가 위에서 그 처절한 고통가운데 죽어 가시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 자신을 못 박고 그토록 경멸하고 조롱하고 학대하는 바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눅 23:34말씀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 이다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위대하신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베드로가 의욕적으로 말합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나를 따라오기는커녕 새벽닭이 울기 전 나를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기 힘으로 이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나도 그 사랑 받았으니, 이제 나도 새 생명 받았으니 나도 예수님 내게 주신 그 사랑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나도 예수님의 이 아름다운 사랑 받았기에 목숨 바쳐 하나님 사랑하고 목숨 바쳐 내 이웃 사랑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마음뿐 늘 무너져 내리는 부족한 나를 발견하며 늘 하나님 앞에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당연히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랑할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서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이웃 한 사람 한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귀한 존재입니다. 비록 잠시 나 자신과 불편한 관계에 있는 이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도 아름답고 소중한 귀한 존재인 것입니다. 가난한 이웃 소외받는 이웃 한 심령 한 심령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가장 아름답고 존귀한 이웃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셨는데... 원수를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복을 빌라 하셨는데...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0-21)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자신을 못 박는 저들을 위해 기도하셨듯이... 정녕 매일 예수님의 그 고난을 묵상하며 무릎 꿇어 드리는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삶의 내용은 과연 일치할 수 는 없는 것인지요? 기도와 말씀 그리고 찬양의 내용대로 실천하는 삶, 용기 있는 삶! 정녕 우리는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이웃들은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인지요? 정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수는 없는 것인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힘으로 그런 사랑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듯이 말입니다. 십자가 사랑은 우리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사랑은 주고받는 사랑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니까 나도 사랑한다. 네가 나를 미워하면 나도 미워한다. 동일보상법 차원의 사랑입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입니다. 이것은 율법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늘 말씀하시는 사랑은 복음적 사랑입니다. 너는 나를 미워하지만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사랑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우리의 의지만으론 할 수 없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십자가 사랑입니다. 자기가 죽어야 가능한 사랑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그런데 자기가 죽는 것은 스스로 할 수 없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야 죽을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해야 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하신 말씀도 바로 성령 충만해야 예수님을 따라 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 능력이 바로 사랑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위대한 능력! 사랑의 능력을 사모하라고 명하십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고전 12:31)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아 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믿는 자의 증표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크기가 믿음의 크기입니다. 예수님 우리를 생명 바쳐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생명 바쳐 예수님 사랑하고 생명 바쳐 내 이웃 사랑해야 합니다. 전 세계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선포합니다. 가장 큰 기적은 바로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능력의 삶을 살라고 부르시고 계십니다. 하늘에서 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한 사랑의 능력을 덧입으십시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자 우리의 소망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은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과 딸 된 우리에게 능력의 삶! 사랑의 삶! 창조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하나님 우릴 통해 예수님의 모습이 표현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랑의 능력이 기적을 일으키고,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적어도 하루에 한사람 씩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이웃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필요를 찾아 실제로 사랑합시다. 복음을 어렵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늘 말씀드리듯이 복음은 모두 사랑에 관한 것이고 목숨 바쳐 하나님 사랑하고 목숨 바쳐 내 이웃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이고 바로 우리 앞에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내 옆에 있는 사랑하는 이웃들의 손에 손을 맞잡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 상한 영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로 인해, 내 이웃들을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내 자신과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육신의 질병으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사랑하는 내 이웃들을 위해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약 3:13-18). 아 멘 할렐루야!!! 엘리야가 어떻게 기도했다고요? 그렇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사랑하는 우리 이웃을 위해 간절히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할렐루야!!!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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