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정 축복의 통로입니까?(1)

2011. 4. 27. 10:26좋은 글, 이야기

당신은 진정 축복의 통로입니까?(1)

 

 

 

      복음송가 중에 <축복의 통로(이인섭 작사 곡)>가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예배하게 되리태초에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 인간에게 만물을 사랑으로, 섬김으로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다. 인간을 축복의 통로로 삼아 만물을 축복하신 것이다.

 

    하지만 인류는 하나님을 떠남으로써 그 권세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인간은 이제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권위 아래 있던 자연이 오히려 인간을 대적하는 등 인간 자신은 물론 만물 또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고통으로 신음하게 되었다. 각종 질병이며, 홍수, 지진, 해일 등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과 짐승 그리고 각종 초목까지도 고통을 당하는 것을 요즘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있지 않는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사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잃어버린 권세를 회복시켜주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잃어버린 권세를 회복하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셨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28:18)그러고선 자신의 권세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셨다.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만물로 하여금 에덴동산에서처럼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딤전1:1)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표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너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기쁜 소리를 발하여 함께 노래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구속하였음이라.”(사52:7-9)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여러 직분자들을 교회에 파송하셨다. 성도를 바로 세워 하나님의 안식 속에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완전한 안식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 임할 것이지만.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1-12)

 

     교회의 안식 여부는 전적으로 축복의 통로자들에게 달려있다. 축복의 통로자가 위임받은 권세를 하나님의 뜻을 좆아 행사하면 하나님께서 그 통로를 통해 교회에 복을 내려 교회가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고 위임권세를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위해 행사하면 성도들은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바울은 위임받은 권세를 이렇게 행사했노라고 고백한다.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 하시느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를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살전2: 5-8)

 

   솔로몬은 왕이 된 후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지혜를 구했다. 그 지혜란 다름 아닌 자신은 연약하고 무능하니 백성들을 잘 돌볼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온전한 마음을 보시고 지혜도 주시고 부와 수도 주셨다. 그리고 백성들은 진정한 축복의 통로자 솔로몬으로 인하여 복을 누리며 살아갔다.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왕상 4:25)

 

    하지만 솔로몬은 수년 후 받은 은혜를 잊고서 하나님을 떠났다. 이방의 왕비들로 인해 우상숭배에 빠졌을 뿐 아니라 백성을 향한 첫 마음을 잃어버리는 등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갔다. 솔로몬은 그의 생애 중반기에는 성도들의 축복의 통로자로 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신하인 여로보암이 반역을 일으켰고 아들 르호보암왕 때에는 국가가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백성들 역시 축복의 통로자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함으로써 도탄에 빠지게 되었다.

 

   얼마 전 미국의 대형교회의 몇몇 목사들이 “숫자로는 성공했어도 예수 제자를 만들지 못했다. 우리는 실패했다.”고 고백했다. 우리 한국교회의 양심 있는 목회자들 중에도 지금까지 도전에 도전을 거듭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서였다는 양심고백이 늘어가고 있다.

 

     나 역시도 좀 더 편하게 그리고 때론 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일한 점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목회경력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바울처럼 고난을 자처하며 진정한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자꾸만 요령만 생긴다. 더 늦기 전에 녹슬고 흠집 난 통로를 보수해야겠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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