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의 역할

2011. 12. 13. 17:22좋은 글, 이야기

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의 역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 중에서 “천국은 마치 가루 서 말 속에 넣은 누룩과 같다.”는 말씀을 읽을 때에 내게는 나의 가족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된 사연이 생각나 은혜가 되었다. 적은 누룩이 많은 가루 속에 들어가서 온 가루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나의 가족은 대가족인데 처음에 나로부터 시작한 신앙이 40여년이 지나는 가운데 거의 모두가 신자들이 되었다. 지금은 모두 결혼을 하여 자녀를 낳으니 이제 모두 합하여 32명이라는 대가족을 이루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

 

    나의 어머니는 정읍 산외 마을의 대목(한옥을 짓는 목수)의 큰 딸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3대 독자셨다. 원래 독자 가문에 손이 귀한 것처럼 나의 외가도 손이 귀하여 4대 독자였던 외삼촌이 고등학생시절에 교통사고로 죽자, 두 딸만 남게 되어 대가 끊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외할아버지께서는 제주도에서 전주에 있는 35사단에 와서 군생활을 하는 나의 아버지를 데릴사위로 삼으셨다.

 

    어머니는 자식 욕심이 많아 9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나 2명은 어려서 죽고 7명의 자식을 갖게 되었다. 특히 아들 욕심이 많았다. 5남 2녀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들들을 편애하였으며 특히 큰아들을 편애하여 딸인 나를 천대하셨다. 그리하여 나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와 불편한 관계를 갖고 살았다. 그것이 내가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부모님을 전도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이유가 되었다.

 

     우리의 친가와 외가 양쪽 다 기독교 집안이 아니어서 복음이 우리 가문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제일 마지막으로 나의 부모님이 교회에 나오시게 된 것은 겨우 3년 전이다. 지금은 나의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좀 더 일찍 교회를 다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렇게 좋은 걸 그 때는 모르고 이제야 하나님을 알고 나니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라고 하신다.

 

    나의 부모님은 전주의 한 아파트에서 사셨는데, 3년 전에 교회를 다니기로 작정하고 아파트 주변에 있는 교회를 몇 군데 나가 보았으나 늙은이들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천대를 받는 것 같아서 못 다니겠노라고 하시면서 아파트를 세를 놓고 내가 사는 시골로 이사를 오셨다. 우리 교회는 대부분이 나의 부모님 또래라서 금방 교회생활에 적응을 하셔서 마치 교회에 다닌 지 수 십 년 된 분들 같다.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음을 늘 잊지 않는다. 형제자매들 중에서 가장 고집불통이고 성질도 괴팍했던 나를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정의 복음의 씨앗으로 택하셔서 맨 처음 나를 부르셨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쯤, 옆집에 사는 언니가 주일날이면 교회를 가면서, “◯◯야, 교회 가자.” 하고 고함을 질러 나를 불러내므로 그녀를 따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 언니는 나보다 5~6살 위인데 아기 때 약을 잘못 먹여서 한 쪽이 불구가 되어 다리를 절룩이고 한 쪽 손도 구부러졌으며, 두뇌는 5살 정도 되는 지능을 갖고 있어서 늦게 학교를 입학하여 나하고 같은 반이었다. 그녀는 공부는 못했으나 집안일이며 농사일은 잘했으며, 또한 찬송가는 어찌나 잘 부르는지 나의 손을 잡고 껑충껑충 뛰며 교회를 가는 동안 큰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며 갔다. 그리하여 초등학생 시절에는 멋모르고 그 언니를 따라 다녔는데, 공과공부를 통해 나도 모르는 새 나의 마음속에 복음이 들어왔다. 그 언니네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 서울로 이사를 갔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두 분의 선생님들께서 새로 전근을 오셨는데, 두 분은 각자 자기 교회에서 집사님들이셨다. 그 분들은 공부도 열심히 가르치실 뿐만 아니라 기독학생동아리를 만들어 목요일마다 방과 후에 예배를 드리고 복음을 들려 주셨다. 그런데 그 때부터 나의 집에서는 핍박이 있었다. 나는 장녀로서 위로는 오빠 한 명과 아래로는 동생들이 5명이나 되었고 그 중에는 갓난아기도 있었다. 농촌이라서 방과 후에는 빨리 귀가하여 아기를 보던지 집안일을 도와야 하는데 목요일마다 캄캄해져서야 집에 오니 몇 번 그냥 지나치다가 드디어 아버지의 엄명이 떨어졌다.

 

    그 놈의 기독학생횐지 뭔지 참석하지 말고 바로 집으로 오라고. 그러나 나는 그 시절에 철이 없었고 지혜도 없었다. 나는 아버지와 대립을 하기 시작했다. 종국에는 기독학생회를 빠지라 하면 내가 학교에 가지 않겠노라고 어처구니없는 폭탄선언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한동안 집안이 살얼음판이었다. 어찌어찌하여 서로 조금씩 양보하여 학교는 다니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그것이 나중에까지 나의 아버지를 전도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순모임을 통해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고, 4영리라는 책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전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리하여 집에 왔을 때, 마침 2살 아래의 여동생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왔다. 나는 위로 2살 터울의 오빠와 아래로 2살 터울의 여동생 사이에 끼어 있었는데, 특히 여동생과는 경쟁관계가 되어 늘 티격태격 싸우며 자랐으므로 동생에게는 전도를 할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어쩐지 동생은 나의 전도를 거부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동생 친구를 붙잡고 4영리로 전도 실습을 하는데, 오히려 내 동생이 복음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나서 몇 주 후에 다시 집에 갔더니 동생이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의 생각을 알리요? 에서는 버리고 야곱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으리요? 그 동생은 여전도사 생활도 좀 하였는데, 지금은 권사로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어쨌든, 지금은 모두 성인이 되어 서울에, 전주에, 경기도에 흩어져 살고 있으나 장로, 권사, 집사의 직분을 갖고 모두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오빠는 모태신앙을 가진 아내를 만나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 중에서 맏딸인 나는 사모가 되어 우리 가족들의 신앙생활의 기둥 역할을 하고 있다. 7명의 형제자매들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나 마지막까지 부모님이 교회를 나오시지 않으므로 사모인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 앞에서 담대하게 전도하라고 말하지 못했다.

 

     부모님도 전도하지 못한 내가 동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위선적인 나의 모습을 감추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친정에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전도를 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 거슬렸던 나의 삶이 전도를 가로막아서 예수 믿으시라는 말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친정에 갔다 돌아올 때마다 주님께 죄송스럽고 여전히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마음을 낮추지 못함으로 인하여 애통해하였다. 알고 보니 자식들이 모두 그런 마음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부모님을 전도하지 못하는 자식의 마음을 하나님 외에는 누가 알아주겠는가?

 

    어느 날 전주에 사는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께서 예수병원에 입원하셨다고.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돌아가실 뻔 했다고 했다. 급성 당뇨병이란다. 처음 들어본 병명이다. 부랴부랴 병원에 가보니 응급실에 누워계신 아버지의 모습이 이제는 늙으셔서 초라해 보이셨고, 연약해 보이셨다. 울컥 눈물이 흘러 내렸다. 덜컥 겁이 났다. 우리 아버지가 예수 안 믿고 돌아가시면 지옥에 가실 텐데, 불쌍해서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통곡을 했다. 아버지께서는 “울지 마라. 왜 우냐?” 고 하시면서도 눈 속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라도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면 누구든지 연약해지는가 보다. 아버지는 예수병원에서 남동생네 교회의 장로님에게서 전도를 받고 퇴원하면 교회에 나가겠노라는 약속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치료가 빨리 되어서 곧 퇴원을 하게 되었고, 도시 교회는 늙은이들에게 안 맞는다고 하시면서 아파트를 세놓고 지금은 우리 교회가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오셔서 우리 교회 성도가 되셨다. 나의 어머니는 처음부터 양처이신지라, 남편을 따라 당연히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믿음은 어머니께서 더 좋아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사시면서 믿음이 쑥쑥 자라는 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이시다. 그리하여 부모님 생신 때에나 명절 때에 30여명 되는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할 때에는 목사인 큰사위가 기도를 하고 어머니께서는 아멘, 아멘을 잘 하신다. 어머니는 자녀들이 주는 용돈에서 십일조와 감사헌금을 꼬박꼬박 하신다. 그리고 우리 교회 집사님이시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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