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중풍 병이 더 안타깝고 불쌍하다

2013. 3. 25. 10:56좋은 글, 이야기

마음의 중풍 병이 더 안타깝고 불쌍하다

 

성경 말씀 중에 풍을 맞아 수족이 마비되어 몸을 가눌 수도 없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한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우정 어린 도움으로 예수님을 만나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게 된다는 한편의 사랑의 드라마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기독교적 사랑이 무엇이며,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돈젤 교수(Joseph R. Dongell·애즈베리대 신약학)는 “기독교인의 삶에서 사랑의 핵심을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기독교의 사랑을 정확하게 정의해야 하고, 다음으로 기독교인들의 경험 안에서 사랑의 역동성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요즘 들어‘사랑’은 단순히‘자선’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웃을 기독교적으로 사랑하는 것과 그들을 좋아하거나 그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은 아주 다른 일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나 애정이 절로 생기는 사람을 사랑하기는 비교적 쉽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는 마음 자체가 사랑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마음이 사랑에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만 친절하게 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친절하게 대하려고 애쓰며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을-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게 되리라 상상조차 못했던 사람들까지 포함해서-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행동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억지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래서 떠오르는 일을 가서 하십시오.

요즈음은 유난히도 자살을 많이 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연예인들이 거의 한달 간격으로 자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몇 해 전에는 전직대통령이 자살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목사님까지 자살을 하는 시대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 미시건대학교에서 전 세계인의 행복지수를 체크해보니, 80여개국에서 한국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49위였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래도 80여개국에서는 생활수준이나, 잘사는 빈도가 아마도 10위 안쪽에 있지만, 살아가는 느낌은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불행하다 .라고 생각하는 면에서는 49등을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를 있게 하셨을 때는 행복하고, 기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셨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찾고, 행복을 찾고 기쁨을 찾으며 살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아파합니다. 괴로워합니다. 삶에 대하여 지쳐합니다.

현대처럼 배부르고, 누릴 수 있는 시대에는 마음에 병들이 인간을 아프게 만듭니다.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듭니다.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것은 육신의 중풍 병보다도, 마음의 중풍 병이 더 안타깝고 불쌍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은 마음의 중풍 병에 걸려 있는 시대입니다. 현대는 육신의 병보다도 마음의 병을 고쳐야하는 시대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음이 아프고, 고통 속에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보리 고개가 있던 시절에는 배가 고팠지만, 새벽기도에 나가서 간절히 부르짖었습니다. 부흥회를 할 때도 북을 치며 간절히 찬양을 하고, 은혜를 사모하며, 목이 새도록 기도를 하며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배부른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굶는 사람이 없어진 시대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통신이 발달하고, 핸드폰이 발달하고, TV가 발달을 했습니다. TV를 켜면 엄청난 부자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 나의 삶을 비교하며,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을 똑바로 뜨고, 나는 행복하다고 외쳐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당당하게 침상을 들고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중풍 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누가복음 5장 24절>

어느 목사님이 어느 할머니 집사님 댁에 심방을 갔습니다. 마루 가에 정말 귀중하고 멋진 이조백자가 있는 것입니다. 너무너무 감탄하여서, 그 이조백자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할머니 집사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왜 자꾸 부끄럽게 저희 집 요강을 쳐다보는 거예유〜” 정말 진귀한 보배가 오줌 담는 요강으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항아리에 꿀을 담아두면 꿀단지, 사탕을 담아두면 사탕단지, 보물을 담아두면 보물단지, 그런데 아무리 귀한항아리여도 오줌을 담아두면 요강입니다.

우리의 육신이라는 항아리에 무엇을 담아두고 있습니까? 부정적인 생각, 아픔, 불행하다는 생각,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 고통의 생각을 담아두고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속이는 존재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항아리에 믿음을 담아둔다면, 우리의 항아리에 예수님을 담는다면, 바로 우리의 몸은 거룩한 성전인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담아두느냐가 문제해결의 열쇠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담아두고, 긍정적이고, 밝고 즐겁고, 감사하고 행복함을 가득 채워나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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