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7. 15:37ㆍ좋은 글, 이야기
무화과 잎으로 만든 치마를 입지 마세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다양하게 패션 감각에 따라 옷을 입는다. 최신유행의 패션으로 옷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패션을 맞이하게 된다.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느냐? 에 따라서 그 사람의 품위가 나타나고 권위가 세워지고 권세가 나타나게 된다.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직업도 알 수 있다.
인간은 두 가지 옷이 있다. 한 가지는 사람이 만들어 입은 옷이 있고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만들어 입히신 옷이 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한 후에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무화과 잎으로 부끄러운 부분만 가릴 수 있는 옷을 만들어 입은 사건이 있었다.
그들이 만든 무화과 잎 치마는 오래 가지 못했다. 줄기에서 벗어난 무화과 잎은 햇볕에 의해 말라 비틀어져 옷의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 있었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동산나무 사이에 숨어서 침을 뱉어 무화과 잎 치마를 다림질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문책하신 후 뱀에게 저주하셨다. 하와와 아담에게 각각 죄의 결과를 내리신 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그냥 벌거벗은 채로 보내지 않고 가죽옷을 지어 입혀서 보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구속하시겠다는 상징이며 계속 책임을 지시겠다는 약속이다.
범죄로 인해 생겨진 옷의 산물은 수세기를 지나 오늘날 인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중요한 문화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 또 다른 옷을 만들어 입어야 하므로 수고에 수고를 계속해서 만들어 입고 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손에 의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옷이 만들어져 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겉옷만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중간 옷도 있고 속옷도 있다. 얼마나 다양한 옷을 만들어 입고 왔는지 옷에 대한 변천사를 언급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여성분들 가운데 일부는 옷장에 옷이 그렇게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입을 옷이 없다고 할 만큼 유행이 지난 옷은 처지 곤란할 정도로 쌓여가고 있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런 옷만 입고 있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자신의 어떠한 행위를 가지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가리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고 살아간다. 자신의 미덕을 쌓기도 하고 일생동안 수고하고 애써 모은 것을 가지고 선행을 하기도 하고 많이 배운 것을 가지고 교양을 내세우기도 한다.
특히 교인들은 오랜 기독교 집안이라는 신앙의 경력과 전통을 자랑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화려한 전적을 갖고 있는 간증의 사람도 있다. 신학교를 거쳐 일반대학교의 학사, 석사, 박사를 내세우며 자신의 경력을 입증하기도 한다. 또한 노회장, 총회장, 대표회장, 총재 등으로 다양한 모습의 옷을 입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언제 가는 그 모든 것들을 모두 벗어버리고 알몸인 부끄러운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을 때가 있다. 기독교라는 미명아래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입고 있는 무화과 치마를 자랑하고 있다. 부끄러운 모습들이 계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해서 무화과 치마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다.
논문 표절, 허위학력, 헌금횡령, 칠 계명 위반 등 부정부조리가 드러나면서 목사가 그럴 수가 있냐? 라고 손가락질과 비판의 소리가 그치지 않고 있다. 이런 부정부패보다 더 나쁘고 악한 것이 바로 위선의 옷을 입고 있다. 우리 목사님은 사례를 받지 않고 있으며 자가용도 없고 통장이나 부동산도 없다고 전도 아닌 전도를 하고 있다.
우리가 절약해야 되며 청렴결백해야 되는 것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그런 분들이 얼마나 많으며 흉내도 낼 수 없을 만큼 훌륭한 분들이 많이 있다. 단호하게 잘라서 말한다면 그 교회의 자랑이지 그것은 전도가 아니다. 투명한 재정을 선전하고 민주적인 교회로 운영된다고 포장하고 있다면 무화과 잎으로 치장한 옷에 불과하다.
이렇게 표현하면 그래도 다른 교회보다 낫지 않느냐며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요구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 오늘날 일부 교회 가운데 건전한 교회를 요구하는 세상과 타협하고 있다. 과연 교회다운 교회라고 자부할 수 있는지
또 한 가지 옷은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옷이 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옷은 희생이 따른 옷이다. 이 옷은 가죽 옷이기에 해가 빛나고 비가와도 망가지지 않고 부끄러운 부분뿐만 아니라 우리의 온 몸을 가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 옷은 인간들의 수고가 전혀 없는 하나님께서 직접 만들어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이 옷을 입어야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상처도 입지 않고 어디든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다.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옷은 어떤 사람이 입을 수 있을까? 이 옷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사람만이 입을 수 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들어나자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숨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 오셔서 질문을 하신다.
하나님께서 “네가 벌거벗은 것을 누가 네게 알려 주었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령한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네가 먹었으냐? ”하시니 그 남자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으라고 주신 여자 곧 그 여자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매”(창3:11-12) 아담이 죄를 범했음을 실토했다.
또한 하와도 주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어찌하여 이 일을 행하였느냐?” 하니 여자가 이르되“뱀이 나를 속이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매” 비록 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했지만 죄를 숨기지 않고 자백을 했다. 이런 두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직접 짐승을 잡아서 가죽옷을 입혀 주셨던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려면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여야 만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수 있다. 또한 이 옷을 입은 자만이 부끄러움이 가려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내가 진정으로 죄인임을 고백하고 내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위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무덤 속에 장사지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만이 그리스도 옷을 입을 수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유행에 따라 화려하고 멋진 옷에 관심을 갖고 있듯이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분들 가운데 일부는 세상과 발맞춰 가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그와 편승한 교회는 세상과 결탁하는 교회로 전락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종교가 우리의 부끄러운 부분들을 전혀 가려 줄 수가 없다.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있는가? 아직도 내가 만든 옷을 입고 있는가? 그러면 그 옷을 하루 속히 벗어버리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그리스도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세상과 사람들이 원하는 옷을 입고 있다면 과감히 벗어버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날에 부끄러움을 당하고 어둠속으로 쫓겨나 영원히 슬피 울며 후회하실 날이 있다.
오직 그리스도 옷을 입은 자만이 부끄러운 부분들이 가려지고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된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하루속히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생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신다. 서서히 말라비틀어지는 무화과 잎으로 만든 옷으로 치장하지 말고 생명이 드러나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가자.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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