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

2013. 4. 4. 09:10좋은 글, 이야기

상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

 

올림픽에 나가는 선수들이 모두 가슴에 이름표와 국기를 달고 나갑니다. 그 이름표 안에는 그가 대표하는 나라 이름도 분명히 기록됩니다. 그가 개인으로 출전하는 것이 아니고, 소속한 나라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나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로 우리의 신분이 세상 사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태어났어도 하나님의 나라로 귀화한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귀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놀 때도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기업은 한 해 동안 얼마의 이익을 냈는지 년 말에 정산합니다. 각 개인도 자신의 삶에 어떤 열매와 실패가 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인생은 결코 후회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정산과 관련된 유명한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자기 재산을 맡겼습니다. 주인은 종들의 능력에 따라, 어떤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또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은 얼른 가서, 그것으로 장사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두 달란트를 받은 종도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나가서 땅을 파고 그 곳에 주인의 은돈을 숨겼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집에 돌아와서 종들과 셈을 하였습니다.

달란트는 누구에게나 주어집니다. 마치 우리 옛말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라는 말처럼 말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하고 한 달란트를 받아서 한 달란트를 남긴 사람을 똑같이 여기십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입니다.

미국 스탠다드 석유 회사의 점원이었던 아치볼드라는 사람은 유난히도 그의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심지어는 호텔에서 숙박계를 쓸 때에도 자기의 이름을 쓰지 않고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자기 회사의 석유 가격과 이름을 적곤 했습니다. 그리고 누구와 대화할 때에도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는 말을 먼저 한 후 용건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한 통에 4달러 스탠다드 석유”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소문을 들은 사장 록펠러가 이 아치볼드라는 사원을 불렀습니다. 록펠러는 이 평사원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면서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겨 있는 애사심(愛社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그가 얼마나 회사를 위해서 열심으로 충성하는지 알고는 마음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록펠러는 아치볼드야말로 스탠다드 석유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아치볼드는 후에 록펠러의 뒤를 이어 세계 최대의 석유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일이 어떤 종류의 일이든지 충성된 청지기로서 맡겨진 일들을 최선을 다하여 감당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믿으시고 더 많은 일을 맡기십니다.

벤저민 리턴버그는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자신의 잠재능력을 개발하지 않고 그냥 편하게만 살아가 는 것은 실상 일종의 자살이다.” 한번 주어진 삶을 무의미하게 살아버리는 것은 부끄러운 삶입니다, 자신의 가능성을 개발하지 않고 사는 것은 무책임한 삶입니다.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두 가지 스타일로 나눌 수 있습니다.자기의 삶을 ‘최고로’ 살아가는 사람과 ‘최소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누가 최고인가’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는가?’입니다. ‘최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밤잠도 안자고 건강에 무리가 올만큼 죽어라 공부하거나 일하는 모습입니까? 최선의 삶은 단번에 큰일과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작은 일부터 한 걸음 한 걸음, 그때그때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입니다.하루의 삶에 충실한 자만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공부하는 것이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성공을 추구함이 우리 인생의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무엇을 위하여 돈을 버는지, 무엇을 위하여 성공하는지 그 “무엇을 위하여”가 있어야 합니다. 가 인생의 목적이고 사명입니다.

그 “무엇을 위하여” 가장 좋은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최선의 삶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구주요,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최선을 지향하는 삶이란 말 그대로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삶입니다.

인생은 한판승부요, 일방통행입니다. 육상선수들의 출발점은 같습니다. 그러나 영광을 받는 사람은 종착점에 일등으로 들어오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시작보다 아름다운 끝을 선택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과거에 했던 공적만을 생각하고 오늘을 등한히 한다면 이 사람의 말로는 자살하는 사람입니다.

내일부터 무엇을 하겠노라고 하면서 오늘은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의 장래는 자살하는 사람입니다. 내게 있어서 오늘의 삶은 어제의 삶의 결과요, 오늘의 삶은 내일의 삶의 됩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든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의의 면류관을 받는 영광스러운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예수님께 붙잡히고 성령으로 사는 최선의 삶을 살려면 세월을 아껴 사는 지혜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뜻입니다.(엡5:16, 골4:5).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간을 황금보다 더 귀히 여기며 최선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서의 권리를 포기해 버립니다. 본래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면서도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허상을 쫒아 하나님의 법과 도를 저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매일 뜀박질을 해도 제자리걸음 뿐, 우리는 쉽게 군중 속에 묻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빛을 잃어버립니다.

이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의 이름을 따라 최선을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물결 속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가치를 따라 본래 우리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최선을 삶을 꿈꾸고, 그 길을 따라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경기장에서 경주자들이 모두 힘껏 달리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인 것을 여러분이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상을 받기 위해 달리십시오. 경기에 참가하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절제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얻으려고 절제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절제합니다.<고린도전서 9장 24~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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