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6. 21:02ㆍ좋은 글, 이야기
고난의 의미 11가지
1. 고난 속에 복이 온다.
☞ 하나님은 고난만을 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좋으신 아버지이시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시려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님도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하여 고난을 통해 훈련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고난은 복을 포함하고 있다. 고난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고난 뒤에 찾아오는 영광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다가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말씀은 고난받는 자에게 희망을 주는 말씀이다.
2. 고난은 궤도 수정의 신호이다.
☞ 그래서 고난이 찾아오면 자기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깨닫게 된다. 승승장구하는 자에게는 자기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실패와 실수를 통한 아픔이 있는 자가 자기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살피게 되는 것이다.
3. 고난은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한다.
☞ 깊은 고난을 받게 되면 주변에 사람은 떠나게 된다. 심지어 배신하는 일도 생기게 된다. 원래 사람은 힘이 있으면 모여 들고 힘이 없으면 떠나게 된다. 그래서 돈이 있으면 친구를 금방 사귀게 된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친구들은 이 핑계 저 핑계로 도움의 손기를 거부한다. 그래서 진정한 친구는 어려운 일을 당해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영원한 친구가 있다. 그는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참 친구이시기 때문에 시련과 고난 속에도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고난 받을 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라. 고난은 사람을 바라보는 생각을 죽이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라는 신호이다.
4. 고난은 땅의 문이 닫히고 하늘 문이 열리는 시간이다.
☞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이 깊은 밤중인가? 그러면 밝은 새벽이 가까웠다. 고난은 땅의 문을 닫게 만든다.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게 만든다. 이는 곧 하나님의 도우심이 시작된다는 징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진퇴양난의 위기를 겪었을 때가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고난 중에 있는 자는 환경을 탓하지도 말고 환경을 의지하지도 말고 하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라. 고난만큼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기 쉬운 때도 없다.
5. 고난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밥이다.
☞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성을 타고 나기 때문에 시련과 고난의 밥을 먹지 않고서는 결코 고집과 아집과 교만이 꺾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종들은 모두다 고난의 밥을 먹고 자란 자들이다. 왜냐하면 인본주의적 삶에서 신본주의적 삶으로 바꾸는 데 있어서 고난만큼 효과 있는 특효약이 없기 때문이다. 칭찬과 격려가 인간을 성장시키는 것이라면 시련과 고난은 인간을 성숙시키는 도구이다.
6. 고난에는 반드시 끝이 있다.
☞ 모든 고난은 끝이 있다. 이것은 터널과 같다. 동굴은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다. 그러나 터널은 시작도 있고 끝도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한 고난은 암흑의 동굴이 아니라 밝은 빛이 보이는 터널이다. 그러므로 고난 받을 때는 종착지를 믿고 인내해야 한다. 중도에 하차하면 영원히 동굴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7. 고난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게 한다.
☞ 인간이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게 되는 것은 학문도 아니요 재물도 아니요 권력도 아니다. 고난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고난을 받은 만큼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게 된다. 예수님은 고난의 종이셨다.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예표이다. 그래서 믿음 생활이 깊어지면 질수록 늘 고난은 삶속에 숨어 있다. 왜냐하면 고난 받지 않고는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도록 하기 위하여 때때로 그의 백성들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
8. 고난은 믿음의 진위를 가르는 시금석이다.
☞ 참된 믿음은 무엇을 통해 알 수 있는가? 고난을 통해서 알 수 있다. 고난 받기 전의 기도, 고난 받기 전의 고백, 고난 받기 전의 찬양은 반만 받으신다. 왜냐? 고난 받기 전의 인간의 모습은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 없는 신앙은 뿌리가 약하다. 조금만 비바람이 몰아쳐도 쉽게 넘어진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훈련받은 사람은 더 큰 고난이 와도 잘 견딘다. 따라서 고난 받지 않은 상태에서 가지고 있는 믿음이란 포장된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진짜 믿음은 고난을 통해 알 수 있다.
9. 고난이 없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
☞ 욥기의 말씀대로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다”. 이 세상에 고난 받지 않는 인생은 하나도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고난 없는 인생은 없다. 왜냐? 인간은 모두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써 가시와 엉겅퀴의 저주가 들어오게 되었고 인생은 더더욱 힘들어졌다. 따라서 인간은 죄를 의식하는 나이가 되면 누구든지 고난도 의식하게 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고난 받을 때에 남과 비교해서 신세 한탄을 하거나 환경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 고난은 나 혼자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난이 오면 그 원인을 자기한테로 먼저 돌려라. 남한테로 돌리기 시작하면 서로의 관계만 힘들어진다. 왜냐? 고난 없는 인생은 없기 때문이다.
10. 고난은 피한다고 해서 비켜가는 것이 아니다.
☞ 많은 사람들은 고난이 오면 고난을 피할 생각만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고난에 대한 태도가 아니다. 모든 시련과 고난은 다 뜻이 있기 때문에 고난의 의미를 발견하고 고난을 순순히 받아들여라. 하나님이 그 고난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시는가를 빨리 깨닫는 것이 고난의 파장을 줄이는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 무조건 고난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다가는 오히려 고난의 파장이 더 커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빚이 늘어난다고 해서 자꾸만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거나 명분 없이 직장을 자주 바꾸는 것은 오히려 그 신상에 해가 될 확률이 높다. 왜냐? 모든 고난은 하나님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찾아오면 팔자거니 하고 고난을 받아들여서 연단 받아야 하는 것이다.
11. 고난의 목적은 변화이지 고난 그 자체가 아니다.
☞ 고난이 오면 변화하면 고난은 끝이 난다. 고난의 화두는 변화이다. 변화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고난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이 오면 고난 자체를 놓고 기도하지 말라. 고난의 목적인 변화를 깨닫고 먼저 변화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변화하기 위해 회개하고 변화하기 기도해야 한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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