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 21. 11:54ㆍ좋은 글, 이야기
계급장 떼고 신앙생활 하기
글쓴이/봉민근
교회에 직분의 서열이 없다고 한다.
그렇게 배우고 그렇게 가르쳤다.
직분은 섬기는 직책이지 계급이 아니라고 강변들을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보자.
이것은 거짓이요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다.
교회에는 엄연히 서열이 있고 직분에 권세도 존재한다.
크리스챤은 좀더 솔직해야 한다.
권찰이 서리집사가 되고 서리집사가 안수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며 그 다음에 장로가 된다.
전도사가 강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고 감독이 된다.
임시목사가 담임목사가 되고 위임목사가 된다.
장로가 집사가되는 일은 세상에 없다.
권사가 권찰이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타교회에서 장로이면 어디를 가나 장로 대접을 받는다.
집사가 장로를 가르치는 일은 교만이고 목사가 아닌 사람이 축도도 할 수 없다.
목사가 집사에게 순종한다는 말은 들어 볼수 없고
목사에 말에 집사가 순종해야 옳은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 작금의 교회들은 교회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 가려고 열심을 다한다.
집사의 목표는 장로가 되는 것이요
전도사는 목사가 되는 것이다.
평생전도사로 있으면 배움이 짧거나 어딘가 모자라는 목회자 취급을 받는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도 장로가 못 되면 믿음없는 사람 취급 받는다.
장로는 집사를 훈계하되 집사는 장로에게 감히 훈계하지 못한다.
바울은 수제자 베드로도 책망하였다.
그러나 잘못 보이면 중직이 되는 일에 지장이 있고 지나치면 치리당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 이 모든것은 아니요 거짓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현실이요 거짓이 아니다.
중직이 되지 못하는 교인들은 가난 하거나 못 배웠거나 열심히 섬기지 않은 결과로 나타나는게 현실이다.
옛날 직분자는 믿음있는 자가 중직자였지만 지금은 힘있는 자가 중직을 맡는 흐름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교회에 와서 쉼과 평안함을 얻으려 하나 직분에 기죽고 가난에 기죽고 못 배운것에 기죽어서야 될소냐?
군대든 학교든 동기가 좋은것은 계급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직분 남발을 줄이고 평신도가 살아 일하는 평등한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에서 목에 힘주지 않고 고개 숙여 섬기는 이들이 아쉬운 세상이 되었다.
직분을 받은 날로부터 하인처럼 섬기는 자는 존재 할수 없는 것일까?
장로도 목사도 마대걸래 들고 청소하고 평교인들에게 커피 심부름하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물론 겸손히 잘 섬기는 분들도 교회안에는 많이 계신다.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것이 아니요 오히려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버려 대속물로 주신 주님처럼
우리는 낮아지고 낮아져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계급장 떼고 종의 모습으로 섬기셨는데
교회에서는 왜 직분의 계급장을 못 떼고 오만 방자히 대접만 받으려 하는가?
중직자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
☆자료/ⓒ창골산 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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