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하향의 한 원인

2017. 4. 2. 16:13좋은 글, 이야기

기독교의 하향의 한 원인                  


 

한국 기독교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그러한 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기독교 자체 내에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그렇다면 기독교 자체 내에 있는 어떤 요인들이 그 문제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가? 그 요인들은 아주 다양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 다양한 요인들을 모두 살필 수는 없고 다양성 뒤에 숨겨져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것은 종교의 제도화와 관련된 것이다. 토마스 오디라는 종교 사회학자는 종교의 제도화에 의한 딜레마를 다섯 가지로 논하였다. 다섯 형태로 나타나는 딜레마를 압축한다면 그것은 어떤 종교든 그것이 제도화됨으로 필연적으로 세속적인 요소가 개재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래의 역동적 종교성에서 이탈하여 제도의 틀에 묶어 놓게 됨으로 이익 집단이 조직 내에 생겨난다는 말이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을 오늘의 우리의 기독교 기관들에 적용시켜 살펴보면 여러 곳에서 나타나는 작금의 행태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최근에 기독교 기관 내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하게 된다. 예를 들면, 기독교계를 한참 떠들썩하게 했던 소위 대물림의 문제, 기독교 신문사와 관련된 어느 교회 내의 시끄러운 문제,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어느 기독교 방송사의 문제, 몇 개의 기독교 대학에서 생겨난 갈등의 소리 등이 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세속적인 TV 매체들에게서도 공명되어 소리를 내게 되었다.

 

그러한 시끄러운 소리들이 타에 의해서 생겨난 것들이 아님은 자명하다. 문제는 그 소리의 근원은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세력과 그것을 저지하려는 세력의 마찰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 마찰음을 내는 누구도 자신의 소리들이 너무나 정당하다고 하며 반대자들의 소리는 정당하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소리들은 기독교 기관 내에서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들 아닌가? 그러한 소리들이 이미 이 사회의 이익 집단들 속에 얼마나 시끄럽게 들리고 있는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시끄러운 소리에 식상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 내에서는 그러한 소리가 아닌 관용과, 양보와, 자기희생과, 겸양의 모습이 보이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기대가 때로는 적극적인 비판의 표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체가 비판을 수용 못하고 있듯이 기독교 내에서도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힘을 상실하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태도는 성숙한 사람의 태도가 아닌 소아기적 태도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우주계의 블랙홀이 모든 빛과 소리를 빨아드려 자취를 감추게 하듯이 그러한 적극적인 비판의 소리가 블랙홀과 같은 기독교의 제도권 속에 흡입되어 자취를 감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자성의 빛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이 사회는 기독교를 아주 소아기적인 단체로 치부하거나 또는 기독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어떤 단체와 비교될 수 없는 고상한 세계관과 윤리를 가진 본질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즉 이 사회는 자신들과 차별성 없는 기독교를 존중하지도 않으며 자신들이 본 받아야 할 모범적인 존재로 인정하지도 않는 다는 것이다.

 

이 사회 속에서 기대감이 사라지고 존경심이 사라지고 차별성이 사라진 기독교계를 향하여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기독교인들 중에도 의식 있는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실망하며 생명의 복음의 능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사회에 신앙적 지도적 역할을 잃어가고 있다는데 있다. 기독교인 수가 하향하고 있는 이유가 자명해진다.


자료/ⓒ창골산 봉서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