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2. 22. 21:36ㆍ좋은 글, 이야기
성경으로 돌아가자(2)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대통령이나 수상에게 있다고 답하는 사람은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럼 교회의 교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이 역시 당연히 교인에게 있다. 당회장이나 장로에게 있다고 답하는 사람은 무식을 넘어 아예 무뇌라고 할 수 있다.물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지만 현실적인 교회 정치나 운영의 차원에서 본다면 최종 의사 결정권은 회중에게 있다. 당회나 제직회 등 여러 기관들은 단지 교인 총회(공동의회)의 선출이나 위임을 받아 제한된 직무와 권한을 수행할 뿐이다. 담임 목사가 되는 위임투표나 장로, 권사, 안수집사 선출도 공동의회에 있다.
본래 개신교에는 교권이란 없다. 이를 부인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차라리 개신교를 떠나 다시 중세 로마 교회로 돌아가는 게 좋다. 국가의 정치 지도자가 군부와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의 주권을 우롱하면 독재자라고 한다. 그렇듯이 교회 안에도 강단과 교인의 주권을 우롱하는 독재형 목사들이 많이 있다. 교회 역사를 보면 금전을 만지거나 관리한 성직자들이 부패하지 않은 시대가 극히 드물다. 물론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성경대로 살려는 신실한 목회자가 적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보면 교회정치나 재정 관리 시스템이 점차 변질하여 결국엔 총체적인 부패를 막기 어렵도록 교회법이 만들어져 있다.
심지어 어떤 교단은 아예 목회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조합같이 변질되어 누가 보아도 죄질이 좋지않는 헌금 횡령 목사, 성추행 목사, 이단과 결탁한 목사를 노회에서 징계나 출교 등 강력한 징계를 주어 교회 스스로 정화를 해야 하는데도 그들을 보호하는데 방관 또는 방조하고 그들을 지켜내는데 거수기 역활을 한다. 겉으로는 공의를 말하지만 뒤로는 개인의 권력과 금권에 굴종하는 목사,장로들이 너무 많다. 교단 스스로 자정 능력을 상실하다보니 교회의 분열과 신학교문제,총회문제는 십여년씩 가도 해결이 요원한 상태다.,
박해 시대에는 교회가 부패한 적은 없다.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면 생명의 위험이 배척간두에 서있던 시대에도 오히려 성도들의 신앙은 청결하고 담대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거나 부흥하여 세력이 커지고 곡간이 차게되고, 그것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직분이 늘어날때 항상 타락했다. 기독교 신문에 보면 기독교단체처럼 회장이 많은 단체도 없다, 수십가지 되는 회장.부회장마다 수십명씩 이름을 올리고 있다,나는 이것을 볼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넘치는 헌금으로 자기 세력 확장을 위한 예배당 증축,투자식 학교나 재단 설립 후 사유화, 담임목사의 명예나 영향력 확대를 위한 부적절한 지출, 고액 연봉 등에 사용되니 교회가 부패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구제비는 고작 전체 헌금의 4~5%도 안 된다. 교회가 해마다 외형에 치중하여 자기 배만 채우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스템이 삯꾼을 조장하며 키워주는 고질적인 구조가 된다. 그리고 신도들의 맹신과 맹종이 이런 제도적 토양이 된다.
작은 교회에는 무슨 대단한 권력이나 무엇하나 내세울 것이 없지만 세상의 권력을 추구하는 목회자들은 반드시 교회 대형화를 추구한다. 삯꾼들은 교회가 커져도 분립 안한다. 그들에게 교회 성장, 성전 건축, 전도, 선교는 그냥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일 뿐이다. 그들의 애타는 마음은 언제나 돈과 명예, 권력에 있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 건물을 짓고 관리목사를 두고 대형 스크린으로 자기 설교를 들으며 예배를 드리게 한다. 일명 스크린교회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는 교회에는 "목회자"가 있고 " 목회업자"가 있다. 목회자는 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나, 목회업자는 자신을 위해 양을 희생시킨다. 목회자는 자신을 바쳐 산 제사를 드리고, 목회업자는 양을 바쳐 죽은 제사를 드린다. 주인의 양을 알고 사랑하는 것은 목회자이고, 자기 양의 양털과 우유.가죽이 필요한 자는 목회업자이다.
그나마 세상의 목축 업자는 자기 양을 거의 다 구분하여 잘 안다. 심지어 어떤 유목민은 양이 아프면 자기 방으로 데려와 함께 자면서 돌본다. 신실한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인도하여 낸다고 했다.(요10:3) 성경학자나 뇌 신경학자의 연구발표에 의하면 사람이 주변 사람의 얼굴을 확실히 알고 가족관계를 파악하여 이름을 외우는 한계가 최고 400명정도라고 한다,그래서 성인 교인수가 그 이상이면 목회가 아니고 목축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대형 교회의 목사란 위인들은 자기 교인의 이름은 커녕 얼굴조차 모른다. 그러니 대형 교회 목회는 양을 기르는 목축만도 못 하다 .이런 부류의 목사들이 자기 재산을 털어 다른 사람들을 전심으로 돕는 걸 본 적이 별로 없다. 어쩌다 남을 돕는다 해도 그들은 주로 교회 돈으로 생색을 낸다. 후배 목사나 선교사들이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면 자기 개인 돈으로 후원하는 목사는 극소수이고. 대부분 교회 돈을 내주고 어께를 펴고 목에 힘을 준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새도 깃들곳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거할곳이 없다는 그런 설교는 결코 안 한다. 기껏 한다는 말이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이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었으니 여러분은 부자가 되야 한다"고 고 떠벌인다. 하지만 그건 기만이며 말장난이다. 우리에게 재물을 주시려고 주님께서 죽으신게 아니라 사망에 매여 고통받으며 죽을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위하여 죽으심으로 생명이라는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 위함이었다,
늘상 말로는 성경대로 살자고 하면서 ' 자신은 그런 삶을 살지 않는다.너절한 핑계를 대며 교회 장부를 공개하지 않는 목사나 무슨 명목이든 교회가 허락한 합당한 이유없이
교회 돈을 쓰는 목사나 주님 주신 은사를 밖에 나가 부흥회를 하고 돈을 챙기는 목사.스크린 목사들로 부터 도망하기 바란다,그런 목사에게 구태여
신학이나 교리, 설교를 들을 필요없이 그들은 무조건 성도를 돈으로 보는 목축업자,즉 목회업자라는 사실을 알고 진실한 마음으로
목양을 하는 목회자를 찾고 그와함께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해 힘쓰는 여러분들이 되길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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