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호목사님 천국간증

2006. 8. 24. 10:21신앙간증

충북 청원군 낭성면 이목리 따뜻한 산자락 밑에 이목순복음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장년 191명, 장로4명, 집사 30명, 권찰 3명, 유년주일학교 학생 170명으로 총교인수가 396명인 이 교회는 성령이 역사 하는 교회이다. 이 교회는 77년의(1923년) 역사를 가진 오래된 교회이며 그 누구도 전도하지 않고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청주순복음교회, 무성교회, 상촌교회, 백운교회, 중앙순복음교회, 삼산교회가 이목순복음교회를 통해 세워졌으며 이와 같은 역사가 ‘한 알의 밀 알이 썩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묵묵히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는 선지자 하나님 사람이 있어서 인도하였기 때문이다. 이목교회에 김상호 목사님이 14세때 교회에 나오셨고 지금 오산리 최자실목사님 기념 기도원의 원로 목사님으로 시무 하시고 계시며 전국교회는 물론 외국에서도 신앙상담을 계속 원하여 기도해주시고 있다. 바로 충청북도 기하성에 뿌리가 이 교회이다.

지금부터 필자는 이 교회가 부흥이 되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계속 임하여 주후 1923년부터 아무런 사고 없이 부흥되는 원인을 하나님의 사람의 간증을 기초로 하여 기록함으로써 많은 분들에게 은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1. ‘처음 믿음’ - 어머니의 전도
1924년이라면 우리나라에 교회가 몇 개 없었으며 청주에는 제일장로교회 밖에 없을 때이다. 그 당시 낭성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며 우상만 섬기던 때였는데 정씨 가문에 무남독녀로 고이자라는 한 처녀가 있었다. 정면이라고 하는 처녀로 바로 그이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 먹을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처지였으나 외동딸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며 어머니의 가르침으로 가정에서 한글을 공부하여 소설을 곧잘 읽어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곤 하였다. 19세 때 이목으로 출가하여 생활을 했으나 불행하게 병이 들어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구역을 하며 괴로움을 참지 못해 온방을 무릎으로 헤매면 무릎이 턱턱 헤어지곤 했다. 그 뿐 아니라 집안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어 삼동을 지내면 먹지 못해 몸이 퉁퉁 붇는 생활이 계속 되었다.

  홀로 계신 어머니가 의지할 곳 없어 출가한 딸의 집에 오셔서 계셨다. 딸과 어머니가 서로 의지하고 살던 집에는 또 큰 환란이 닥쳐오기 시작하였으니 사랑하시는 어머니께서 신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형편인지라 약 한 첩 쓰지 못하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속 앓이 병을 앓고 있는 딸을 외롭게 두고 세상을 떠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 들으니 예수를 해야(믿어야) 병도 낫고 집안 일도 잘된다더라. 너는 예수를 해야(믿어야) 그 병(속 앓이)이 낫는다. 꼭 예수를 해야 한다.”

  “그럼 어머니, 어떻게 예수를 해야 해요?”

  “미원학교 학생 학교 안가는 날이 예수 하는 날이라고 하드라. 또 예수를 믿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고 물 함박도 하지 않고 새벽 닭 울면 일어나 기도하고 시간시간 말씀 보는 것이란다.”

  이 말씀 한마디 남기시고 숨을 거두시니 슬픔에 쌓인 그녀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2. 은잔을 받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로서 1월을 보내는데 하루는 이승정네 집을 찾아간 꿈을 꾸었다고 한다. 이정승네 집에 갔는데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라 가보니 이불 감에 물을 들여서 널어놓았기에 보니 체(얼룩)가 져 있었다.

  “어찌 이불 감에 체가 졌을까?”(오늘날에는 물감도 좋고 천도 고급이지만 당시에는 목화를 자아서 베틀에 짜 그것을 검정 물감을 들이는 것이 아니고 도토리를 가지고 무명에 물감을 들이는 때이므로 많은 여인들이 모인 자리면 이런 이야기들을 하곤 하였다.)라고 말하자 키가 큰 더벅머리 총각이 “남의 이불에 체가 졌거나 말았거나 무슨 상관이냐?”하면서 잡으려고 한다.

  이리하여 겁나고 질린 정명희는 뛰어 올라 책상다리를 하고 공중으로, 즉 하늘로 둥둥 떠올라 갔다. 높이 하늘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더벅머리 총각은 발돋움을 하며 소리소리 지르며 그녀를 잡으려고 했다. 그 때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 새우는 소리, 외치는 소리 등 각종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몸은 자꾸 하늘로 오르니 겁에 질린 그녀는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 하나님 저 좀 살려주세요. 땅에 떨어지면 저는 영원히 죽고 맙니다.”하고 외치니 하늘 문이 열리고 새로운 밧줄이 내려와 그것을 잡고 바른 손으로 힘껏 당기고 왼손으로는 사려 힘을 다하여 오르니 이 세상에서는 보지 못한 밝고 맑은 새 천지가 보였다.

  한 천사의 영접을 받고 방문을 열고 들어가 앉으니, 눈은 샛별같이 빛나고 얼굴에는 광채가 나는 인자하신 분이 “세상 재미가 어떠하시던가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 책을 한 권 펴 들고 그녀의 어려서부터 행한 모든 사실을 다 읽어 주시는 것이었다. 들려주시는 말씀이 너무나도 소상히 기록되어 영화 필름 돌아가듯 하였다. 다 말씀하시고 나서는 “시간이 많이 갔구나”하시고는 벽장문을 여시고 뽀얀 은잔에 찰찰 넘게 담긴 잔을 두 손으로 받쳐서 주셨다. “저는 지상에서 천국에 온 것도 황송한데 은잔까지 주시니 감사합니다.”하며 은잔을 받아 마시고 나서 꿈에서 깨었다. 묵시였던 것이다.

  이 꿈을 깨고 나서 그녀는 근심에 쌓였다. 하늘에서 깨었으니 죽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안근이 댁이라는 분이 꿈 해석을 잘 한다고 해서 찾아갔더니 “참 좋은 꿈꾸었소. 예수를 믿으면 큰 일을 할 꿈을 꾸이오.”하면서 예수를 믿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믿어지지 않고 걱정만 되었다고 한다.
3. 천국씨앗
하늘나라에 가서 천국의 은잔을 받은 꿈을 꾼 얼마 뒤, 밤하늘에 무지개와 같이 찬란한 광채와 함께 세마포를 입으신 구주께서 지팡이 2개를 가지고 들어오사 광채 나는 흰 손으로 오이씨와 같이 생긴 씨앗 한 웅큼을 반으로 나누셔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주시며 “천국 씨니 골고루 잘 뿌리라”하시며 주셨는데 손에는 못 자욱이 확실하게 나 있었다. 그런데 씨앗 가운데는 검은깨와 같은 씨앗이 간혹 보였다. 그것은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씨앗인 것을 알았다. 이 씨앗을 받아  품에 넣고 보니 구주께서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깨어 보니 묵시였다. 그 후로는 예수를 잘 믿어야 되겠다는 불같은 생각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들었고 미원 학생 학교 안가는 날(주일)에 꼭 교회에 가겠다고 다짐하였다.
4. 교회를 찾다
어머니의 마지막 전도 유언을 생각하니 더욱 어머니가 보고싶은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마침 주일날이 찾아와서 미원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기도 드리는 자세와 태도를 배우고 나서 음식 먹을 때는 어떻게 하나 생각하고는 온 길에 배워 가지고 가자 생각하고 예배 인도하시는 분들 집으로 같이 갔다. 그런데 14?5세 가량 되어 보이는 그 집 아들이 양팔을 벌이고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섰다. 그러나 ‘오늘은 천하에 없어도 음식 먹을 때 어떻게 하나 배워야겠다’고 결심하고 피하여 방에 들어가니 또 문고리를 꽉 잡고 문을 안 열어 주기에 두어 번 확 잡아당기니 놓아서 방에 들어가서 앉았다. 그러나 식사 상을 차려 가지고 들어와서 식사합시다 하고 말씀하시는 순간 그 아들이 발로 밥상을 차서 밥상이 쏟아졌다. 아이는 도망을 갔고 어머니는 다시 나가서 밥상을 차려 가지고 들어오셔서 식사를 하라고 권하셨다. 그래서 식사 기도하는 것을 보고 배웠다.

  점심 두어 숟가락 떠먹고는 숟가락을 놓고 밥상이 난 다음 성경 찬송 파는 곳을 가리켜 달라고 했더니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성경 찬송을 60전주고 사서 미리 준비해서 끊어 간 한 자의 오열베에 싸가지고 집으로 왔다. 성경 찬송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니 함부로 가져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는 식기도 하고, 저녁이면 등잔불을 돋우어 성경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첫닭이 울면 세수하고 기도하여야 하는데 기도할 줄 몰라서 “하나님 저와 같이 계시옵소서! 예수님 저와 같이 계시옵소서!”하는 기도만 반복하였다.

  하루는 성경을 보는데 주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가 있었다. 그 후부터는 주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어머니가 보고 싶은 생각은 다 씻어지고 기쁨이 충만하며, 그 후 3개월 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속병이 깨끗이 나았고 몸은 점점 튼튼해져 갔다. 그런 신기한 사실을 안 동네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복음의 귀한 씨는 움트기 시작하였다.
5. 하나님을 대접하려고
황무지 같은 땅에서 어머니의 전도를 받고 미원 교회에 다니면서 새벽이면 기도하고 성경보고 찬송하였으며, 어머니께서 ‘예수 믿으면 성경 찬송만 보지 신소설 책은 안 본단다’는 말씀을 하셨기에 고담 책, 신소설 책은 다 불살라 버렸다. 또한 ‘닭울면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고 자라는 말씀은 하시지 않았기에 날에 샐 때까지 기도하였다. 그러나 지루한 줄도 모르고 기쁨만이 충만하였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도 감사한데 하나님을 무엇으로 잡수시게 하여 대접할꼬 하는 생각이 났다.

  집 앞 텃밭에 감자 심어 놓은 것이 생각이 났다. 골골이 포기마다 한 개씩 따내서 정성을 다하여 씻고 씻고 또 씻어서 쪄 가지고 깨끗한 새 그릇에 담아서 하나님을 대접하려고 미원교회를 찾아갔다.

  예배당을 들어서니 몇 사람이 있었다.

  “어찌 오셨소?”

  “하나님 좀 잡수시게 하려고 감자를 쪄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웃으면서,

  “하나님은 잡숫지 않으셔요. 우리가 기도하고 먹는 것이어요.”

  하고는 기도하고 한 개 먹어 보란 말없이 사택으로 가지고 가서 다먹어 버렸다. 세상에 이렇게 무안할 데가!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이 아기 같았음을 느꼈으나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대접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대접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6. 육년된 병자 고침
이목순복음교회에서 800m 떨어진 곳에 양달이라고 하는 동네가 있다. 이 동네에 안근이 댁(신수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 시어머니가 병들어 몸이 집통같이 붇고 잘 먹지도 못하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좋다는 약은 다 써보고 해볼 것은 다 해보았으나 고치지 못하고 앓아 누워 있었다. 하루는 꿈에 전도부인이 나타나 전도지를 주면서 “네 병을 고치려면 예수를 믿어야 하니 허망한 짓을 하지말고 예수를 믿으라”는 말을 하고 갔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며느리가 장마철이라 냇물이 많이 불어 있었지만 깊은 물을 건너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왔다.

  신수남씨는 꿈 이야기를 하며 기도를 해 줄 것을 간절히 간청하였고 하나님의 사람은 그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었다.  “나 같은 못난 죄인이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며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걱정이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고 그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고 한다.

  “편찮으신 분은 교회에 나오시지 못할 것이니 누워서라도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당신도 열심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는 무조건 순종하기로 하고 집으로 갔고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환자의 가정을 찾아갔다.  병자는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이불을 두르고 앉아 누울 수 없도록 몸이 불어 있었다. 병자는 반가워서 눈물을 흘리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기도해 줄 것을 바라고 있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연약한 제가 무엇을 구하며 어떻게 중한 병을 고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한 후, 주기도문을 크게 써 주고 읽으라고 하고 같이 한번 주기도문을 외운 후 집으로 돌아왔다.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겠다고 애원하며 병 낫기를 바라는 환자를 맡았으니 걱정이 되어 삼일 금식기도를 하기로 작정하였다. 하루 밤낮을 철야하며 기도하고 병자를 찾아가 보았으나 병자는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근심 중에 또 계속 기도하기 시작하여 이틀째 기도를 마치고 찾아갔다. 여전히 환자는 차도가 없었다. 삼일째 마지막 철야 기도를 마치고 또 찾아갔다. 몸이 붓고 그렇게 중한 병을 앓고 있어야 할 환자는 집에 있지를 않고 며느리가 반갑게 좇아 나오며 나의 손을 붙잡고 말하기를 “아주머니께서 기도해 주시어 우리 어머님 병환이 깨끗이 나아 작은 아들네 집으로 마실을 갔어요.”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너무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드린 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환자가 보고 싶었다. 그러자 환자가 곧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날 살리셨어요. 아주머니 고맙소’하면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이 광경이야말로 하나님 외에는 그 기쁨을 알 자 없으며 체험자가 아니고는 알 자 없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 앞에 큰 영광이 나타났으니 그 후 낭성 안근이댁 시모는 예수 믿고 병 나았다는 소식이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여 병자들이 고침을 받기 위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로 인하여 교회가 부흥되자 장년 50명이 모여서 방 두칸을 털어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다.
7. 성령 강림
서기 1923년 동지 달, 교회에 나간지 3개월만에 50명 성도를 하나님이 모아 주셨으나 찬송을 책 읽듯이 볼 수밖에 없었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마침 1924년 2월에 손학금이라는 전도부인이 찾아왔다. 그래서 무한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천사를 맞이하듯이 맞이하여 우리 교인들에게 하나님 말씀과 찬송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손학금 전도부인은 ‘혼자서 예수 믿고 50명이라는 많은 교인을 모으다니! 참 놀라운 일이다.’라고 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곳이야말로 성전 세울 곳이라고 하면서 이목교회에 있기로 작정하고 이삿짐을 가지러 청주로 갔다.

  그 날 저녁예배 시간이었다. 기도 중 하늘에서 비행기가 10대는 우르렁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뜨겁고 밝은 빛 가운데 서 있는데 옷섶이 흔들리다가 손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온 몸 전체가 흔들리고  한치 두치, 한뼘 두뼘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감당할 길이 없었다. 얼마나 높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지 다른 사람이 놀랄까 봐서 두 손을 꼭 잡고 두 다리를 쭉 뻗고 길다랗게 드러누웠는데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되자 모든 성도들은 우리 선생님 죽는다고 울고불고 소동이 벌어졌다. 이런 놀라운 역사를 처음 보는 것이므로 성도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얼마를 그렇게 놀라운 역사가 있은 뒤 3시간 후 밤 자정이 되어서야 절제가 되면서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어른으로 아이들에 이르기까지 죄없는 자가 누구겠느냐? 네 앞으로 불러다가 죄를 씻고 축복하라.”시는 것이었다. 그래서 눈을 감고 앉아 50명 교인 얼굴도 다 알지 못하는데 이름을 한사람 한사람씩 불러서 머리에 손을 얹고 죄를 씻으시며 축복하여 내보내게 하시고 다시 주의 음성이 나리시기를,

  “이 귀한 시간에 김상호는 도망갔다.”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받아,

  “이 귀한 시간에 김상호는 도망갔다. 이 시간을 놓치면 영영 불쌍한 자가 된다고 하신다.” 하고 말씀을 전하니 성도들이

  “김상호는 윗방에 있습니다.”고 하였다. 그때 다시 주의 음성이 나리시기를,

  “도망갔다. 가 보아라” 하셔서 말씀을 받아 “가 보아라” 하니 성도들이 가보고서는,

  “도망갔어요. 김상호 없어요” 하였다. 성도들이 찾아보니 자기 집 헛간에 숨어서 벌벌 떨고 있었다. ‘왜 여기 와서 있냐’고 하니 무서워서 그랬다고 한다.

  “이 귀한 시간 놓치면 영영 불쌍한 자 된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는데 가자.”고 하여 데려왔다. 마지막으로 김상호에게 축복기도하고 나서 기도를 필하니, 밝은 광채 속에 있었는데 눈을 뜨고 보니 방안에 등불이 가물거리며 방안은 사람을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나니 마음속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고 새로운 용기와 담력이 생겼다. 이러한 성령의 체험은 하나님의 사람 혼자만이 한 것이다.
8. 무서운 핍박
성신의 놀라운 역사가 있은 뒤 손학금 전도부인이 이삿짐을 챙겨 가지고 왔다. 성도들은 성령님이 강림하신 놀라운 사실을 전도부인에게 말하였다. 저가

  “형님 오시느라 수고하셨소!” 하니

  “속아서 왔어! 속아서 왔어! 뛰고 떠는 것은 마귀의 신이요 하나님 신을 그럴 수 없어! 옛날 사도 시절에만 떨고 뛰고 했지 그런데 지금은 그런 법이 없어 교회에 나올 때에 성신을 받은 것이지 그런 법이 어디에 있어 마귀 들렀어!” 하는 것이 아닌가. 이 땅에 성신이 오신 것을 알지 못하고 마귀 들렸다고 하니 원통하기가 한이 없고 삼천리 금수 물결이 목이 매일 지경이다.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다 전도부인에게 “선생님 저와 같이 일주일 금식기도 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알 수 있을 테니 금식기도 합시다.”

  “아니! 저게! 마귀 들린 것이 누구더러 금식기도하라고 해!! 내가 제일교회에서 하루 금식기도 할 때 사과가 왔다갔다하고 밥사발이 왔다갔다해서 금식기도 못했어!”

  “그럼 삼일만 합시다”

  “흥 죄인이나 금식하지 아무나 하는 줄 알아” 하고 갖은 포악을 다하여도 말대꾸 한마디 못하고 그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는데 손학금 전도부인은 “내가 어제 밤에 꿈을 꾸었는데 많은 교인들을 모으고 찬송을 부르려고 할 때 교회 등이 꺼져서 찬송을 못 불렀어! 여기는 교회 세울 곳이 못돼!” 하고 아침 식사를 하고는 나가 문박, 호정, 하촌, 상촌, 양촌 등지로 성전 세울 곳을 물색했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 왔다.

  “마귀 들린 것 때문에 여기는 성전 못 세워!”라고 하면서 마귀 물 묻을까 봐 무섭다고 하니 50명 교인들이 다 나를 보고는 슬금슬금 다 피하고 도망갔다.

  50명 성도들 가운데 신태근 할머니 이봉순씨 한 분만이 남아서 “선생님, 하나님이 빼신 주의 종을 알지 못하고 막들하니 원통하고 원통합니다.” 하였고 하나님의 사람은 “내가 욕 먹은 것은 좋으나 말세에 오신 성신을 알지 못하고 성신을 모독하고 훼방하는 것이 분하고 원통하다” 하면서 이봉순씨와 같이 울면서 나날을 보내는데 안근이댁(신수남권사) 시모님과 신수남씨는 손학금 전도사가 하는 말을 듣고 “우리 아주머니가 성신 받고 병고친 게 아니고 마귀로 병 고친데야!! 글쎄 마귀로 병고친데야!” 하면서 앞장서서 핍박하기 시작하였고 “배나무징이 우리 아주머니는 마귀들렸데요 가지 말아요.” 이렇게 길을 막기 시작하여 50명 교인이 다 물러가서 손학금 전도부인과 짜고 핍박을 하는데 “왜 고추가루 두번 얻으러 갔어! 왜 깨소금 두번 얻으러 갔어!!” 하면서 소리소리 질러댔다. 과연 그랬다. 없기는 한데 청주에서 목사님들 높은 손님들은 오시니 한 집에 가서는 고추가루, 한 집에 가서는 깨소금을 얻어다 대접한 사실이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대답하지 못하고 당하고만 있었다.

  “없으면 없는대로 대접하지 왜 이집 저집 꾸러다녀! 마귀들린 것은 썩나가 죽어!! 죽어!!”하고 외쳤다. “선생님! 성신을 어찌 마귀라고 하십니까? 성신 받은 몸 죽으라고하면 죽겠습니다.” 하니 “조것이 또, 조런 조것이 들린소리 하네” 한다.

  그 곳을 물러나와 생각하니 입에 든 것도 나눠 먹던 성도들이 마귀 물 묻을까봐 두려워하며 죽을 죄인으로 취급하고 선생님께 다 일러 바쳐서 핍박을 받으며 업수이 보임을 당하고 손가락질을 당했었어야 했다.

  며칠 후 성전에 들어가니 “마귀들린 것이 왜 못죽고 또와! 왜 또와!” 할 때 그 시간 성신의 위로가 충만히 내리시며 바른 손을 높이 들며 “회개하가! 회개하라! 말세에 오신 성신을 알지 못하고 마귀라 하느냐? 종시 회개치 않으면 벌 앞에 떨어지리라.” 하시며 손 전도부인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서 두어번 후려치고는 그 길로는 중령 태산을 넘어 청주제일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제일교회도 가면 여기저기서 손가락질을 해댔다. 이목교회 마귀들린 여자 저기왔네 하고들 수근수근 거렸다.

  오나가나 핍박이요, 비수요, 조롱이며 보고 피하니 하염없는 슬픔의 눈물로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9. 잃은 양 다시 찾으신 주님
손학금 전도부인이 와서 인도한 지 5개월되는 그 해 7월에 성도들은 다 흩어져 성전은 텅비게 되었고, 손 전도부인은 떠났다. 그때는 청주제일교회로 예배보러 다닐 때였다.

  서기 1924년 12월(섣달 음력)에 주의 음성이 내리시기를

  “너는 어찌하여 성전을 비워 놓고 하나님 앞에 기도 정성이 없느냐?” 하시면서 청주제일교회에서 일주일간 금식기도를 하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받고 신태근 할머니, 즉 이봉순씨께

  “형님, 청주제일교회에 가서 일주일 금식기도 하라고 명령받았어요” 하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 나도 같이 가겠소”다고 하였다.

  “형님, 선생님이라고 하지 마세요. 주님도 영화롭게 하지 못한 몸이 감히 선생님이란 말을 어떻게 들을 수 있겠어요?”하니, 선생님 별 말씀을 다 하신다면서 막무가내였다.

  “형님도 가시려거든 찹쌀 가루를 만들어 가지고 가십시다.”

  눈은 쌓이고 혹독하게 추운 날씨에 말구피재를 넘어서 청주를 향해 가는 길은 산길이 험준하며 30리 길이다. 그때는 낭성에 차가 없어서 걸어서 다닐 때였는데 길가는 행인들의 수염이 얼어서 고드름이 달렸다. 이봉순씨는 덥저고리에 배자를 쓰고 나왔건만 세상에서 가난하기도 그렇게 가난할 수가 없었다. 지금 같으면 내의가 있을테지만 내의는 생각도 못하고 광당목 치마 저고리를 입고 먹지도 못하고 낭성 땅에서는 제일 가난하게 살았으니 짚신 짝을 신고 가는데, 발꿈치와 발가락이 얼어서 딱딱하게 되었다.

  청주제일교회가 지금은 큰 건물이지만 그때는 천막으로 벽을 가린 작은 성전이었다. 들어가서 기도하려고 하니 눈바람이 휘휘 불어 칠 때마다 성전 벽 가린 천막이 들썩일 때마다 찬바람은 휘몰아쳐 들어 왔다.

  “형님! 형님은 집안 댁에 가셔요.” 하니 같이 있겠다고 한다.

  “그러시면 형님도 성신 거스르는 줄 아시오” 하니, “그럼 갈래요”하고 갔다.

  그 길로 혼자서 기도를 시작하였는데 슬픔이 앞을 가리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다 젖은 치마폭 하나가 얼어버려 덜거덕거렸다. 얼어버린 치마폭은 뒤로 돌리고 뒤쪽을 앞으로 돌려 성전 바닥에 눈물이 떨어지지 않게 펴놓고 울면서 기도하다 보니 혀도 얼어 움직이지 않는데 주님께서는 잠을 잠깐 재우셨나보다. 얼마를 잤는지! 깜짝 놀라 잠을 깨어 ‘주여! 죄인이 잤습니다. 주님도 영화롭게 못하는 종이, 성전은 비워 놓고 있는 죄인이 정성없이 잠을 자서 어떻게 하나’ 깜짝 놀라 “주여!!” 손을 펴들고 소리를 지르니 붙었던 혀가 풀리고 오금이 떨어지며 말을 할 수 있었고 기동할 수 있어 주님 앞에 하염없는 눈물의 감사를 드리고 앉았던 자리를 만져보니 불 땐 온돌방과 같아 주님께 찬송을 부르며 또다시 눈물의 감사 기도를 드리는데 교회 안은 흰 구름으로 가득 차고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길이 트이곤 하였다. 얼마 동안 이렇게 구름 속을 뛰어다니며 찬송하고 기도하다가 다시 기도하던 자리에 가서 앉아 있게 되었을 때 이봉순씨가 와서 “선생님 얼마나 추우셨어요? 저는 따뜻한 방에서도 춥던데, 얼마나 추우셨을까?” 하며 손을 잡았다. “손이 따뜻하다. 기도하시는 자리도 따뜻하다. 이럴 수가? 불 땐 방안 같군요. 하나님 은혜 감사 하

라”.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산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칠일 금식 기도를 마지막 드리는 새벽에 주님께서 모습을 나타내셨다. 치맛자락을 스치시며 우렁찬 주의 음성으로 “오죽이나 수고했느냐?” 하시고 충만한 성신 위로를 내리시며 활활 타는 불 화로를 주셨다. 받아서 옆에 놓으니 뜨거워서 땀이 막 흘렀다. 그때 또 큰 거울을 주시는데 보니, 두 눈이 딱 박힌 거울을 주셨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 안은 후에 “많은 사람의 죄와 허물을 밝혀 주어라.” 하시는 주의 명령을 받고 기도를 폐하였다.

  이목으로 돌아와서 이봉순 형님을 보내어 성도들을 다 모으라고 하며 다 모으니 “선생님 방안에 물 사발이 다 얼었는데 얼마나 고생이 되었소?” 하고들 인사를 하였다. “나는 하나님 은혜로 잘 있다 왔소” 대답하였다. 일주일 금식기도 마치고 처음 맞이하는 수요일 삼일 예배를 맞이하여 예배를 마치고 나서 다들 앉았을 때 “1시까지만 우리 찬송하고 기도를 합시다.” 하니 모두 앉았다.

  그리하여 찬송 89장. 현재 사용하는 찬송가 177장 ‘성령이여 강림 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하는 찬송을 힘있게 부르고 기도하는데 천지 우레 소리와 광명한 천지와 불 가운데 천지가 움직이는 것 같은 역사, 마가 다락방에 내렸던 강하고 바람 같은 불길 같은 성령이 임하여 저마다 이 땅에 말세 성도들에게 오신 성신을 모르고 의심하고 주의 종을 없수이 보았다고 자복하며 불매 맞기들 시작하여, 자복하고 회개를 하며 방언들을 말하며 놀라운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나 30명 성도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그 당시 성전은 구들로 된 온돌방이었는데 엄동설한인 섣달에 구들이 두 곳이나 턱 내려앉았다.

  이러한 성령의 강한 역사가 있은 다음주에 50명 교인이 다 주님 앞에 돌아 나와서 성신 충만 받고 보니 잃은 양을 주님이 다시 찾아 주시고 흩은 양을 주님께서 다시 모으셔서 영광 받으심에 주님 앞에 감사를 드리고 이어서 성령 인도하시는 데로 하나님 사람께서 교회를 받들고 성도들을 인도하시고 1937년에 대한 기독교장로회 이목교회를 설립하셨다.
10. 대한 기독교장로회에서 제명되다.
그 동안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자택을 교회로 헌납하고 하나님사람 (정면)이 교역자로 봉직하시게 되었으며 “길르앗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고하되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여기서 떠나 동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을 명하여 거기서 먹이게 하리라 저가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하여 곧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머물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 왔고 저가 시내를 마셨더니 땅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므로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르니라.” 엘리야처럼 할머니에게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명하기를 대구. 부산으로 가라하면 순종하여 가셨고 집으로 가라하시면 집으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셨으며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오 당신의 입에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고 고백한 사르밧 과부의 말데로 할머니에게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르시며 동행하시는 분으로 여호께서 너는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셨으며 그 후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러왔으며 항상 성령 충만 가운데 강단에서 말씀을 성경 그대로 전하셨습니다.

이렇게 13년을 목회를 하시는 동안 많은 환자의 고침과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중 하루는 하나님께서 “성령이 오셨네”라는 글귀를 써서 제일교회 벽에다 붙이라는 명령을 받고 계속 기도하시며 번뇌를 하시다가 현재 오산리 기도원에 계신 김 상호 목사님과 소천 하신 채 진도 장로님께 붉은 글씨로 써서 제일교회 앞 벽 게다 붙이고 오라고 명하여 두 젊은 청년들이 밤에 몰래 같다가 붙이고 오므로 그때부터 환난이 오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목사님들께서 확인을 하고 그  당시 성령 받고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마귀 들린 짓이라고 오해하여 대한 기독교장로회에서 이목교회가 제명이 되었습니다.
11. 기독교대한 하나님의 성회가입
한국 오순절(五旬節,Pentecost)의 전래는 1928년 봄 미스 럼시(Miss Mary C. Rumsey)가 서울에 도착함과 동시에 시작된다. 럼시 선교사는 원래 뉴욕시 근교에 있는 감리교회 성가대원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목수요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던 관계로 그녀는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나 성장해서 간호원으로 일했고 1906년부터 1907년까지의 로스엔젤레스 대부흥때 은혜를 받아 감리교계통 신학을 공부했다. 1906년 4월 로스엔젤레스 한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그는 “한국으로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당시 로스엔젤레스 부흥은 ‘늦은 비’성령역사의 지속이었다.예수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 마가의 다락방에 떨어졌던 성령의 불길은 중세 암흑시대를 거치는 동안 사그라져 깜박이는 등불처럼 그 명맥만 유지해오다가 루터의 종교개혁에 의하여 잃었던 복음주의 신앙을 되찾기는 하였으나 여전히 늦은비 성령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엘리야시대에 3년6개월간 기근이 있었던 것같이 마가의 다락방에 쏟아졌던 이른 비성령의 역사가 근 1900년간 지우현상이 보였으나 1901년1월1일, 20세기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미국 켄사스주 토페카시에 있는 벧엘 성서 신학교에  늦은 비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성령의 세례는 요원의 불길처럼 미국 전역을 횝쓸었고 로스엔젤레스 대부흥때, 럼시는 그 자리에 있었으며 성령체험을 하고 사명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가난했기 때문에 도저히 선교비를 마련 할 길이 없어 근심하며 기도하던 중에 성령께서 같은 교회의 덴버드라는 사람을 감동시켜 선교비를 지원해주도록 하셨다. 덴버드라는 사람은 감리교인이었으나 어려서부터 뜨거운 신앙의 소유자였고 명절 때 선물받은 물건까지 팔아서 헌금하던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덴버드의 후원으로 한국땅에 도착한 럼시 선교사는 하디목사가 기거하던 감리교의 최초병원 시병원(施病院)에 여장을 풀었다. 한편 한국정세는 이미 일본이 음모와 무력과 잔인한 수법으로 한국을 합병했으며 1919년 3.1운동을 치루고 난 뒤 민족적 차원에서 볼 때 독립운동의 여명기요 .교회 적으로는 크나큰 수난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럼시 선교사는 정동 시 병원 숙소에서 꿇어 엎디어 “하나님이시어 당신의 명령에 따라 무조건 코리아에 왔습니다. 저로 하여금 이 땅에서 이루시고자하는 당신의 뜻을 부족함 없이 이루게 하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 드린 후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서 구세군 조선번영 사무실로 갔다. 여기에서 럼시 선교사는 사무원으로 일하고 있던 청년 허 홍을 만나 “조선에 조순절신앙을 전교하러 왔는데 전혀 생소한 곳 이어서 구체적인 방안이 서질 않으니 허 선생께서 좀 도와 주시오” 라고 간청했다.  럼시선교사는 미국 하나님성회와는 관계없이 하나님의 절박한 음성을 듣고 달려온 개인 자격의 선교사였다.그러나 그녀는 조선인에게 동족 이상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왔으며 조선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한국의 땅에 렘시 선교사가 경험한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시골 부인에게 임했으니 바로 그분이 하나님의 사람 할머니였으며 김상호 목사님께 말씀을 듣고 오순절 교단으로 가입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로 가입하게 되었다.
12. 교회를 신축 및 개축함
하나님사람이 교회 교역자로 봉직하시며 날마다 하나님과 성령의인도로 대화를 하시며 말씀을 전하시는데 동서 사방에서 구름처럼 많은 성도들이 모이기 시작했으므로 1955년 4월6일 성전을 10평 기와집으로 신축하게 되었고 1958년에 20평 스레트 지붕으로 증 개축하였으며 믿음이 좋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집사로 일하도록 하였고 한 분애 이 옥순 이 태춘 집사님께서 중심이 되어 환자나 문제를 가지고온 사람을 위해 함께 마귀와 대적하여

 기도하고 목회에 협력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13. 성령이 인도하시는 부흥회
모여드는 교인을 수용하기 위해 하나님의 은혜로 1963년에 이목리 173번지 대지 103평을 구입하고 계속 성령님이함께 하시는 가운데 부흥되기 시작하여 피박 하고 믿지 않든 사람들이 속속 교회에 나오고있으며 하나님의 사람(정면)께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양을 치셨으며 만약 부족하고 하나님 앞에 잘못하면 양이 죽어 가는 일이 종종 있었으며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고 한번은 버스를 타시고 청주를 다녀오시다가 버스가 전복되어 허리를 많이 다쳤으나 치료를 거부하고 집으로 오시어 하나님께 기도하시므로 고침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등이 굽게되어 그 후로 사람들이 볼 때 등이굽어 곱추로 오인하기도 하였다.

낭성면, 낭성초등학교 근무하는 공무원  그리고 호정골에 사시는 분중에 장로교회를 다니든 분들이  교통이 불편하여 청주에 가기가 어렵기 때문에 교회를 가지 못하니 장로교회를 호정골 회관에 세우자고  1차모임을 하였으며 이목교회는 울고 떠는 교회로 알고 나가지를 않았다. 그 당시만 해도 성령이 역사 하시는 것을 아무도 모르고 모든 교단에서 이단으로 여기고 접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대로 두지 않았으며 성령님의 인도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한 가정에 환란이 오기시작 하는데 아기를 난산하여 잃고 큰아기가 앓기 시작하는데 하루에도 몇 번씩 경기를 하므로 죽는 일이 있었다. 그 부모들이 약을 쓰고 병원에 가도 소용이 없으므로 깨닫기를 우리가 믿음이 없어 그러니 이목교회를 나가기로 내외가 협의를 한 뒤 이 태춘 집사님께 이야기를 하였다.

집사님이 너무 좋아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가서 이번 수요일부터 선생님이 교회에 오시겠다는 말을 전하자 하나님과 늘 동행하시는 분이 기도를 하시고 근심하시며 죄인이 나온다니 반갑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지 걱정이 된다고 금식하시며 기다렸다.

 수요일 예배에 참석 했드니 성령이어 강림하사 찬송가177장을 부르시고 하나님의 사람이 강단에 서서 지금까지 지내온 믿음의 간증을 하시는데 정말로 참 믿음을 가지고 전하시는 참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게 되었고 그 자리에 업드려 죄를 회계하고 하나님의 사람에 말씀을 들었다.

 그 동안 성령을 의심한 죄가 많으니 금식을 하고 다시 나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울며 회계하고 물도 마시지 않고 내외가 삼일을 금식하고 교회를 갔드니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 하시는 말씀이 죄가 많이 벗어 졌다고 하시며 이틀만 금식을 더하라고 하시므로 3일을 더하여 일주일 금식 후 다시 기도를 하니 죄를 모두 사하시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종이 되었다고 하나님의 사람께서 말씀하시고 기뻐하시며 이제는 의심하지말고 신앙생활 잘 하라고 말씀하실 때  마음의 변화가 오기 시작하는데 하늘로 날아갈 듯  기쁘고 이제는 살았다는 확신이 올 때 어린 딸의 병이 깨끗이 낫고 온 집안이 늘 기쁜 날로 변하였으며 성령 받기를 원하여 계속 기도를 할 때 주일학교 학생 중 초등학교 4학년 어린이

정 신자 노 재남 둘이 우리도 어른들이 받는 성령을 받자고 금식을 하며 기도를 일주일 이상 했다는 것이다. 그 기도를 응답하시어 오순절 다락방에 내린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임하므로 한 달 동안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부흥회를 하는데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성령 받고 두 어린이가 입신을 하여 하늘 나라에 다녀와서 보고 온 것을 이야기하는데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놀라며 은혜를 받고 두려움에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제재를 하며 모든 병마가 떠나는 역사가 일어났다.

 그 자리에서 은혜를 받은 한 분은 너무 은혜가 감사해서 학교에 앰프를 통해 매일 아침마다 찬송을 틀어 주며  기쁨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을 때 학교당국에서 왜 아침마다 교회도 아닌데 찬송을 들주느냐고  항의이가 있어 중단하였다. 그 당시는 앰프가 학교에 만 있고 유선 방송으로 선을 가설하여 각 가정으로 방송하는 시설이 있었다.(현 신 광수 장로님이 운영함) 이렇게 성령의 부흥회가 있은 뒤 동서사방에서 교인이 모이기 시작했으며 장로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든 모든 분들이 이목교회로 모두 나오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그 넓은 뜻을 사람들이 알지 못 한다.
14. 각 곳에 성령의 역사로 교회를 세우다
1)청천 순복음교회

  1953년 5월 15일 대한 예수교 장로회 청천교회에서 낭성 이목리 하나님의 사람 앞에 다니면서 성령 충만한 집사 일곱 명이 교회에서 성령세례 받은 것을 공중예배도 참석하지 못하게 하므로 창리 신 계원 댁에서 시작하여 예배를 드린 것이 시작이 되어  교회 설립이 되었고 계속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도를 받으며 교회를 부흥시켰다.

  2)상신 순 복음교회

  1955년 7월15일 청천 순 복음교회 황 해석 집사님 중심으로 청천면 상신리 117번지에 9평의            목재기와를 지어 예배를 드림으로 교회가 세워 졌고 낭성 하나님의 사람 기도를 받았다.

  3)청주 순복음교회

  1957년 2월5일 제일교회 출석하던 오 종호, 박 노순, 우 준수, 김 광산 김 광옥 청주시 모충동에서 첫 예배를 드리므로 교회가 시작이 되었고 낭성 이목교회 하나님의 사람 기도를 받으며 많은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오늘낭 큰 교회로 성장되었다.

  4)무성 순 복음교회

  1956년 3월 박 정근 장로님이 처음 예배를 드리며 낭성 이목교회에 다니던 분들이 합세하여 성령 받고 은혜로 교회가 부흥 발전하였으며 은혜로운 교회로 소문난 교회다.

  5)백운 순 복음교회, 삼산 순 복음교회 ,상징말 교회 등이 성령이 충만한 분들의 기도와 하나님사람의 기도로 교회가 성립되어 오늘까지 은혜로운 교회로 발전하고있다. 

  6)중앙 순 복음교회

  성령 충만하신 김 간난 권사님의 눈물의 기도와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의 기도로 오늘날 충북의 제일교회로 성장 발전하고 있다.

  7) 남문 순 복음교회

  남 상문 목사가 개척하므로 교회가 세워 졌으며 낭성 이목교회 선지자 하나님의 사람 기도로 성장 발전하는 기틀이 되었다.
15. 하나님의 사람 73세로 교역자 은퇴
하나님과 동행사시는 하나님 사람(정면) 은 73세로 강단에서 더 이상 말씀을 전하기 어려우므로 하나님께 기도하시던 중 장손을 주님의 종으로 세우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순종하지 않으므로 다시 금식하며 기도할 때 어머니를 모시고 사시는 이 원영 집사님을 강단에 세우라는 명을 받고 2대 교역자로 추대하고 눈물로 기도하시며 교역자로 말씀을 전 하시는 집사님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전하고 전국 각처에서 찾아오는 분들의 기도를 하고 언제나 겸손히 신앙 상담을 하시며 성령 운동을 계속하셨으니 우리 기독교 대한 하나님의 성회에 원조가 되시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 후 양을 치시며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시는  목회자와 성도들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으니 오늘날 한국에 믿음의 어머니요 성령이 함께 하신 무명의 선지자이시다.
16. 이 원영 변상기 장로 장립
1967년 2월 하나님 사람 기도 중 하나님께서 이원영 , 변상기 집사를 장로로 세우라는 명을 받아 장로 장립으로 이목교회 초대 장로님이 탄생되었다.
17. 교회 신축
1977년 4월17일 이목리 173번지 대지 103평에 건평 45평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였으며 장년191명 유년주일학교 학생 170명 계 361명 성도와 장로2명 집사30명 권찰 3명으로 성령의 역사가 강한 교회로 발전하였다.
18. 교역자 이동
계속 하나님과 대화하시는 선지자하나님 사람 기도로 하나님의 명령 따라 이 원영 장로님이 65세로 1981년 12월 30일 교역자 은퇴를 하시고 1982년 1월 3일 이 문근 전도사 가 3대 교역자로 취임하게 되었다.

 

출처: 이목순복음교회(http://imo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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