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12. 27. 13:09ㆍ신앙간증
그만두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부장검사는 좌천성 인사든, 그만 두라는 압력이든 개념치 않고 부임지를 옮겼다.
그리고 부임한 현장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능력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 주인공은 김인호 광주고등검찰청 김인호 수석부장 검사( 50세, 서울 명성교회 장로).
사람들에게 건네는 명함은 검사 명함이 아니라 명성교회(김삼환 목사) 장로 명함이다.
명함 뒷면에는 고린도전서 13장 ‘사랑’ 성경구절이 기재되어 있다.
광주성시화운동 기관장 기도회 및 성경공부 모임에서 만난 김인호 검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겠다는 생각으로 충만해 있었다. “또 다시 지방으로 발령을 낸 것은, 그만두라는 말과 같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면서 고난 중에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광주로 왔습니다.”
김 검사는 믿음의 고백대로 광주고등검찰청에 부임하자마자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했다.
2월 법원 인사에서 광주고등법원장으로 부임한 박송하 법원장을 도와
고등법원 신우회를 창립한 것이다.
“광주 고등검찰청은 6년 전에 신우회가 창립되었어요.
그러나 법원은 몇몇 크리스천 직원들이 눈물로 기도하고 있었지만,
창립을 못하고 있다가 크리스천인 박송하 법원장님 부임하면서 강하게 권면을 했지요”
검찰이나 법원에서 신우회를 창립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춘천, 인천, 대구지검장을 지낸 전용태 장로(로고스로펌 고문, 한국기독법조인회 회장)는
“종파간 견제가 심하기 때문에, 직원들 중에서도 자신이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일하는
직원들이 많다”고 말한다.

▲ 검찰 선배인 전용태 장로와 함께 한 김인호 검사. 전 장로의 간증을 들으며 눈을 감고 묵상하고 있다.
결국 박 법원장 부임 한 달 만에 신우회를 창립했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창립예배는 검찰청 신우회
멤버들과 함께 드렸다. 법원 신우회가 창립되자, 그동안 크리스천 신분을 숨기고 지냈던 직원들이
꾸역꾸역 신우회 모임에 나오기 시작했다.
창립 2개월 째 되는 지난 4월 17일에는 검찰청에서 법원신우회와 함께 예배를 드렸다.
“검사가 피의자를 전도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직원들한테 전도하기란 더 어렵습니다.
영적 전쟁이 무척 치열합니다”. 현재 검찰청과 법원 신우회 멤버는 각각 50여명이다.
다음 달부터는 재야 법조회와 법무사회 소속 크리스천들도 참여하기로 했다.
김 검사는 가는 곳마다 직원들을 전도하는 일을 사명으로 여기고 ,눈물로 기도하면서 실천에 옳기고
있다. 광주고등검찰청 수석부장 검사로 부임해서 산하 검찰청 출장을 복음 전도의 계기로 활용했다.
김 검사는 제주, 전북, 전남의 검찰청 직원들을 전도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김 검사는 그동안 재임했던 곳마다 열성적으로 전도하여 50퍼센트 가까운 직원들이 예수를 믿기도
했다. 대구검찰청에서 재직할 때는 각 지역을 다니면서 한달에 한번씩 기도모임과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사나 죽으나 오직 내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히 여김을 받기를 소원했던 사도 바울처럼,
김 검사 역시 바울처럼 그러한 삶을 설고 싶어한다. 검사직을 그만둘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오직 예수님만 붙잡고 서 있는 김 검사는 5․31지방선거가 끝나면 광주광역시장 등 기관단체장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기로 했다.
'돼지머리 고사' 대신 '봉헌예배'를!
김 검사에게 검사생활을 해오는 동안 가장 고통스런 기억은 언제였을까.
2003년 서울지검 고양지청장 재직시절이라고 말한다.
서울법대 재학시절인 1977년 19회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한 김 검사는 1980년 육군 법무관과
1983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거쳐 서독 뮌헨대 형사법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그 후 대검찰청 환경과장,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1과장, 대전지검 천안지청장,
서울고검 부장검사를 거쳐 2003년 3월 서울지검 고양지청장으로 내정될 때까지는 잘 나가는 검사였다.
2003년 3월 서울지검 고양지청장에 부임하기 전 내정자로 6개월 동안 근무하면서 청사 준공 현장을
진두지휘했던 김 검사는, 청사 준공식을 돼지머리 고사 대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다.
이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혁신중에서도 최대의 혁신이었다. 개혁이라면 최고의 개혁이었다.
그러나 불신자나 타종교를 가진 직원들과 주민들의 반발도 예상외로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검사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말씀을 붙잡고 밀고나갔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서 터졌다. 참여정부 초대 장관이인 법무부 장관이 초도순시를 왔고,
장관으로부터 격려와 칭찬도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날 밤 회식에서 장관이 김 검사에게 술잔을 권했다.
김 검사는 “죄송합니다.” 라는 말로 술잔을 사양했다.
그후 김 검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역시나 2004년 2월 대구고검
부장검사로 발령을 받았다. 승진에서 탈락된 채 중앙에서 지방으로 밀려나는 좌천성 인사였다.
김 검사는 심한 고통 중에 오히려 더 깊이 하나님께 매달렸다. 깊은 밤 하나님은 김 검사에게 말씀을
통해 위로와 격려를 주셨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앞서 보내셨나니”(창 45:7) .
하나님께 콕 찍힌 순회전도자
약속을 붙들고 대구로 내려간 김 검사는 2년 동안 150여 교회에서 전도·간증집회를 가졌다.
택시 및 버스기사, 타 종교 지도자 등 모두 1000여명을 전도했다.
믿기지 않은 기적 같은 사도행전 29장을 온 몸으로 기록해간 것이다.
그리고 지난 2월 20일, 광주고검 수석부장검사로 발령을 받고 부임하자마 광주고등법원 신우회
창립을 도왔고, 산하 검찰청 출장시 직원들에게 성경을 나눠주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대학시절 최연소 사법시험 합격 기록을 세웠던 김 검사는 2002년 2월 명성교회에서 최연소 장로로
장립을 받았다. '독일검찰제도 소고' '통일독일과 동구 제국의 몰수재산처리 개관' 등의
논문과 저서를 내기했다.
“ ‘나는 이미 찍힌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 검사직에 있게 하셨다는
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충성할 것입니다”.
김 검사는 동역자들과 함께한 합심기도에서 북한의 실상을 고발하는 연극 '요덕스토리'가 대성황을
이룬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루속히 북한에 인권의 자유가 꽃피고,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도했다.
‘이름 없이 빛 없이’ 처한 환경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제2의 사도바울 ’
김인호 검사와의 만남을 가지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다.
복음 전도를 위해 하나님께서 콕 찍어 지명하여 부르셔서 '가라 하면 가는'
순회전도자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광주고등검찰청 김인호 수석부장검사(명성교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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