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선고 받던 날!

2007. 12. 10. 11:18신앙간증

암 선고 받던 날!

글/김봉규

올해(2006년) 들어 봉규씨 손 잡고 새벽기도에 갈 때면, 좋은 남편 주심을 감사합니다. 좋은 아들 진욱 주심을 감사합니다. 좋은 아들 진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좋은 며느리 지은 석연 주심을 감사합니다. 좋은 손자 정연, 재연, 좋은 손녀 유연 한 사람, 한 사람 이름 부르면서 감사하게 하신다. 감사 기도하다 보면, 감사할 것이 끝이 없이 생각난다.

수개월 전부터 소화가 잘 안되다가 지난 2월 초부터 더 심하다. 그래도 운동을 하고 나면, 좀 나아 지는 듯 해서, 그냥 지내다가 보건소에서 진찰하니 약을 처방 해 주면서 “이것 먹고 효과 없으면 큰 병원에 가보라”고 한다. 낫지는 않았으나 별일 있겠나 싶어 당회 수련회 차 백령도에 다녀왔다. 계속 위가 아픈데, 건강에 자신이 있던 터라 그대로 며칠 보냈다. 평소 체중이 54kg인데 잘 먹지 못하니 눈에 띄게 체중이 줄어든다. 나는 큰 아들 비만 때문에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름을 잘못 들으셨나 보다'고 농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3월에 들어서니 물만 먹어도 아프고 문지르면 위가 딱딱하게 뭉쳐있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린다. 밥을 못 먹고 살이 자꾸 빠지는 나를 보고 병원에 가보라고 남편이 걱정한다. 양재동에 있는    <김영 내과>를 소개 받아 3월 27일 봉규씨랑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여러 가지 약을 주시면서, 일주일 동안 먹고 효과가 없으면 다시 오라고 한다. 아무 효과도 없다. 다시 갔더니 오늘 저녁 먹지말고 내일 일찍 와서 내시경과 초음파 진단을 하란다.

다음날 검사를 하던 병원장이 진찰실로 내려오라고 한다. 진찰실로 들어가는데 원장님 얼굴이 굳어있다. 그러면서 가족 데리고 오라고 하신다. 순간 암이구나! 그간 위가 뭉쳐있다고 생각한 것이 암 덩어리였구나! ‘이미 자각 증상이 나타났으니 말기인가?’싶다. “선생님 제가 63살이고 크리스챤입니다. 말씀해주셔도 됩니다.” 그랬더니 내 얼굴을 보시면서 “가족 없어요?” “있는데요” “그러면 남편 모시고 오세요” 그러신다. 진찰실을 나오는데, ‘63살이 뭐 많다고’ 혼자 말처럼 하시더니 “위 계양이 심해서 그래요” 하신다.

병원문을 나오며 제일 먼저 나오는 소리가 “하나님 아버지 63살까지 건강하게 살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좋은 남편하고 살게 해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좋은 아들, 며느리, 손주, 좋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게 해주셨슴을 감사합니다. 나 그간 고생시켰다고 자책하고 괴로워할 봉규씨 위로해 주세요. 또 둘째 나 닮아서 예민한데 이런 병 걸리지 않도록 건강 주시고, 목회하는 큰 아들 하나님 사랑하고, 성도 사랑하는 주의 종 되게 하시옵소서. 그간 제가 건강에 자신하고 교만했다면 용서하시고 정말로 내가 사랑하고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고 싶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인해 마음 아파할 텐데 주님 위로하시고, 신령한 복을 내려주시옵소서. <라파> 되신 주님! 우리 큰 며느리 주부 습진,        유연이와 재연 아토피, 재연이 축농증 주님께 맡깁니다. 저로 인해 마음에 상처 받은 사람 위로 하시고, 몇 년을 괴롭히고 있는 이 분노를 제가 풀 수 있을 까요? 정말 풀어야 될 텐데, 제 마음을 주장해 주시옵소서.”기도하면서도 내 마음속에는 ‘내가 위암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버스 타고 집에 오는 길가에 개나리가 활짝 피었는데 황사로 흐려 보인다. 그 때에 “저 밝고도 묘한 시온성 향하여 가세, 내 주의 찬란한 성에 찬송하며 올라가세” 찬송을 조용히 불렀다. 그 순간 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영혼 깊은 곳에서 감격이 넘쳐 흘러나와 ,주체 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듯 한다. 나는 속으로 크게 외치며 몸이 들썩들썩 하도록 부르고 또 불렀다.

집에서 봉규씨에게 “제가 위암인 것 같아요” 하는 내 말에 숨도 쉬지 않고 쳐다 보는데 얼굴이 구릿빛으로 변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잠시 후에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제가 지금 63살! 늙지도 젊지도 않는 나이인데,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면 이해하시겠어요?” 한참 생각하더니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하나님 앞에 너무 부족해서 죄송하고, 당신께도 해드린 것이 너무 없어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당신을 두고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부탁인데요! 지금까지 해오던 데로 교회 생활이나, 봉사활동이나, 운동하는 것을 변함없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말씀 드렸더니 “당신 마음 잘 알았어요.그런데 우리가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부' 할 때나 '가난' 할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 같이 하겠다고 서약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제부터 온종일 24시간을 같이 있겠다”고 하신다. “당신 없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나 혼자 두지 않으실 겁니다. 또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고 예뻐하는 두 며느리에게 내가 얼마나 부담이 되겠느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사라진다고 한들 부담이 안되겠느냐? 그러니 같이 천국에 불러주시도록 기도하자”고 하신다.  ‘아 정말 같이 천국에 불러주시라고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나도 해본다. 그리고 내 손을 꼭 잡으시면서 “앞으로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잠잠히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바라볼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소식을 듣고 급히 온 둘째 얼굴이 창백하다. “어머니 보험 든 것 있어요?” 물어본다. “형하고 나 그리고 며느리들 다 들어주시고 어머니는 보험도 없으시다"고 중얼거린다. 지난해 11월 경에 그렇게 보험 들려는 마음이 간절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들었다 취소하고 그랬는데, 그것이 후회가 된다. 병원에 아들과 가는데 나도 원장님께 개인적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 동행했다. 가는 길에 앞으로 제 병에 관한 것은 무엇이든지 숨기지 말고, 말씀해 달라고 부탁 드렸다.

두 사람이 병원에서 원장님 만나고 한 참 후에 나온다. 그 사이 나는 살짝 들어갔더니 원장님이 나를 보고 “아 오셨군요” 하신다. “원장님 전 하늘나라에 소망이 있으니 다른 병원에 가는 것 보다 이곳에서 치료 받다가 하늘 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내 말에 원장이 한참 쳐다 본다. “그 나이가 뭐 많다고 그러세요? 우리 병원에 오는 환자가 하루에 300명 정도이고, 그 환자들이 다 나를 믿고 오는데, 내가 다른 병원에 보낼 때는 그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수술하면 나을 수 있는데, 왜 미리 그러세요? 가족들 위해서도 그러시면 안됩니다. 가족들 생각을 안 하세요?”하신다.

집에 오면서 가장 가까운 삼성병원에 4월 12일 14시 45분에 진찰 받기로 예약했다. 아무래도 교구 목사님께는 말씀 드려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로 “목사님 저 천국에 빨리 가게 생겼어요” “권사님! 천국은 다 가지요. 언제 가느냐가 문제지요.” 그리고 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직접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기도하면서 이곳 저곳 전화했다.

다음날 금요일 구역장 성경공부 시간에 당회장 목사님 성경공부 시작하시려다가 나를 보고 내려오신다. 오시더니 안수하시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하신다. 나는 이미 말기라 생각하고 ‘젊지도 늙지도 않은 딱 좋은 시기에 어떻게 봉규씨랑 같이 불러주시라고 기도하나?’ 하는 생각에 가득 차 있는데 “아멘” 하라고 하신다. 아무 말도 안 하니 안타까워하시면서 “아멘” 해야 한다고 다시 기도하신다. 그래도 가만있었더니 이번에는 노발대발 하신다. 그제야 그렇게 기도하시는데 대접으로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되겠다 싶어 “아멘! 아멘!”했더니 “옳지 됐어” 하신다. “목사님 살만큼 살았어요” 했더니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신다. “환갑 진갑 다 지났다”고 하니 김 장로는 어떻게 할 거냐고 하신다.

냉정히 앉아있던 내 눈에서 목사님의 "김장로는... ..." 이 말에 눈물이 폭포수 같이 쏟아진다. 성경공부 시작 전에 목사님께서 “송신자 권사가 암인데 살만큼 살았다”고 했다고 하시면서 “125세까지 살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혼자 남은 남편들 보기가 얼마나 안타까운지 아느냐?”고 하신다. 나는 왜 이리도 편안한지 걱정을 하래도 되야 하지 ‘이것이 참으로 주님께서 주신평안이신가? 만일 살려주시면 봉규씨랑 살 테니 좋고, 죽으면 하늘나라에 가니 더~ 좋고’ 이러나 저러나 나에게 주신 하나님 은혜는 넓고 깊으시다.

그 간 249장 찬송 계속 불렀는데, 오늘부터는 353장 3절 “주 예수께 빚진 것이 한 없건만, 나 주 위해 갚은 것은 참 적으니. 주 예수여 너그럽게 보옵소서.” 손을 높이 들고 부르고 또 불렀다.

주일날 찬양 예배 드리러 가는 길에 꽃 구경 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나갔다. 마침 꽃 구경 하려고 딸하고 나온 권사 한 분을 만났다. 인사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뒤에서 “권사님!”하고 부른다. “삼성병원에 아는 의사 계세요?” 없다고 하니 “내가 아는 분이 위암 전문의 인데 말씀해 드릴까요?” 부탁 드렸다. 밤에 전화가 왔는데, “내일 모레 화요일 9시까지 가셔서 과천교회 송 권사라고 간호사에게 말하면 된다”고 한다.

요 며칠 동안 얼굴이 흙빛인 남편! 자면서도 눈물 흘리며 어쩔 줄 몰라 하시는 봉규씨 모습을 훔쳐보는 내 마음은 통곡하고 싶다. 한 3일이 지났을까? 얼굴이 편안해 진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듯 하다. 화요일 병원에 가면서 “내가 죽으면 빨리 장기기증 기관에 연락하면, 혹 각막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부탁 드리고 “두 며느리 상복 입히지 말고 검정평상복 입히세요” 라고 부탁 드렸다.

노재형 선생님 진찰하시더니 “일기는 넘었고” 하시더니 간호사 불러 “이 환자 목요일에 수술해야 하니 검사 바로 받을 수 있도록 힘 좀 쓰라”고 하시면서 바로 전화를 든다. “방 없지요? 목요일 수술해야 하는 환자가 있어서 그날 안 하면 5월 말에 수술해야 하는데 부탁합니다” 라고 하신다. 둘째 며느리 도움 받아 바삐 이것저것 검사 받으면서 나름대로 병실 알아보니 전혀 없단다. 나는 피곤했다. 봉규씨에게 기대어 앉아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간섭하시는지 우리는 잠잠히 볼 뿐이다” 고 다시 말씀하시면서, “기다릴 뿐이다”라고 하신다.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이 그간 공부하던 <한우리독서지도사> 수료식 날이라 잠시 다녀오시라고 등 떠밀어 보내드리고 있으니, 석연이 에게 전화 왔다. 병원에서 입원실이 비었다고 5시까지 오라고 연락 왔단다.

급히 병원에 가니 1인 실이란다. 바로 옮겨달라고 부탁하고 집에 전화했더니 봉규씨 벌써 오셔서 걱정하고 계신다. 급히 오느라고 몇 자 적어 놓고 오는 것을 잊어버렸으니 오죽 걱정하셨을까? 과천 교회 교역자님, 성도님들, 형제들, 친구들, 평택제일교회 기도 팀, 지구촌 제일교회 기도 팀등 여러분들의 기도가 있었다.

큰 며느리가 전화해서 "어머니!" 부르고 가만히 있다. “내가 지은아! 괜찮아!” 내 말에 아무 말도 못한다. 울고 있는 것 같다. 나한테는 아무 말도 못하더니 친정에 전화해서 "우리 시어머니 돌아가시면 나는 못산다"고 하도 울어, 놀랜 친정어머니 그 날부터 계속 철야 기도 하신단다.

둘째 며느리는 나를 꼭 끌어안고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줄줄 흘린다. 둘째 아들은 삼일 동안 꼼짝 못하게 아팠다고 하고, 큰 아들은 “우리 어머니 위암을 통해 하나님 영광 나타내 주시옵소서” 기도한단다. 내가 부족해서 이런 병에 걸려 여러 사람 마음 아프게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

4월 13일 수술했다. 병원에서는 놀랍도록 경과가 좋다고 한다.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하나님 품에 있는 것 같이 참으로 포근하고 편안했다. 퇴원 하는 날 간호원이 와서 둘째며느리가 병원비 지불 했다고 전해준다. 아직 집도 없는데, 마음이 무겁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 아버지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말씀이 바로 내게 주신 말씀이었다. 또한 기도로 물질로 도와주신 여러분께 하늘이 신령한 복, 땅에 기름진 복이 넘치시기를 기도 드린다. 특별히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과 그들의 가족을 구원해 주시라고 날마다 가정예배 드릴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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