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맛에 길들여 가는 우리들의 혀처럼

2008. 5. 16. 21:13좋은 글, 이야기

쓴 맛에 길들여 가는 우리들의 혀처럼

 

      


   호주에 사는 교민치고 월남 쌈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호주에 다니러 왔던 사람들도 한번 월남 쌈을 먹어 보면 그 맛에 빠져 한국에 가서도 월남 쌈을 그리워한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도 월남 쌈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생겼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월남 쌈을 집에서도 해 먹는 집이 있다고 합니다.


   월남 쌈은 쌀국수, 숙주, 당근, 미나리, 팽이버섯, 깻잎, 달걀, 토마토, 사과, 쇠고기, 파인애플, 새우, 양파 등을 먹는 라이스페이퍼로 싸먹는 것입니다. 라이스페이퍼를 더운 물에 잠시 담아 꺼낸 뒤 그 위에 속 재료를 올려 둥글게 말아 소스를 찍어 먹으면 그 맛은 일품입니다. 그리고 싱싱한 채소들을 한 번에 먹기 때문에 건강식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웰빙 음식이 호주에서는 오래전부터 유행했던 것입니다. 


   어느 분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먹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월남 쌈을 준비해서 먹으면 두세 끼는 기본으로 재료가 다 떨어질 때까지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다 남은 재료는 고기 국물에 넣어 즉석 월남 국수를 만들어 먹습니다.


   월남 쌈은 월남 음식이 변형된 것 같습니다. 단지 월남전에 참여했던 한국 사람들이 호주로 와 월남에서 먹던 음식을 그리워하여 월남 쌈이라는 새로운 음식을 한국 사람들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 냈다는 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월남 쌈이 언제,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마다 월남 쌈에 대한 이야기는 다 틀립니다. 또한 월남 쌈의 재료가 무엇이라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또 먹는 격식도 집집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월남 쌈을 먹을 때 사람들은 꼭 박하와 고수를 넣어서 먹어야 월남 쌈을 먹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고수와 박하를 넣지 않고 지금까지 내 방식대로 먹고 있습니다. 고수와 박하를 넣지 않고 먹는 나를 보고 어떤 분은 월남 쌈을 먹을 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입안이 얼마나 개운하고 좋은지 딱 한번만 잡셔 보라고, 한번만 먹어 보면 없어서 못 먹을 정도가 된다고 말하며 강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매운탕을 먹을 때 미나리가 들어가야 제 맛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부터 미나리를 먹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미나리의 향과 쓴맛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월남 쌈을 먹을 때 박하와 고수를 넣지 않습니다. 나는 그 향과 쓴맛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실 미나리, 고수, 박하들은 향도 향이지만 사실 이것들은 쓴맛을 냅니다. 또 호주에서 먹기 힘든 씀바귀 김치도 사실 쓴맛을 냅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씀바귀 김치를 안 먹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씀바귀 김치가 없어서 못 먹습니다.


   커피, 차, 술등 사람들이 즐기는 기호식품의 상당수는 쓴맛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커피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어른들이지만 아이들은 돈을 주고 먹으라고 해도 왜 이 쓴 것을 먹느냐고 어른들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맛의 법칙으로만 말한다면 쓴 것을 안 먹는 아이들이 정상이고 쓴 것을 먹는 어른들은 비정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모든 동물들은 단것을 찾고 쓴 것은 피합니다. 그러나 유일한 예외가 사람입니다. 


   노스웨스턴대학의 심리학자 도널드 노먼 교수는 사람들이 쓴맛을 즐기는 것은 문화가 본능을 정복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식품의 관능평가 연구를 담당하는 서동순 박사는 나물들이 혀에 주는 쓴맛의 자극은 상큼한 향과 어우러져 작용하기 때문에 몇 번 먹어 보면 부정적인 느낌이 극복돼 거기에 맛을 들이게 된다고 합니다. 쓴 걸 먹고도 몸에 별 탈이 없기 때문에 거부반응이 점차 약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수들에 의해 체포된 예수님은 매 맞으시고, 조롱받으시고 이 법정에서 저 법정으로 끌려 다녔습니다. 그 흑암의 저녁에 베드로는 멀찍이서 예수님을 따르다 원수들의 숯불 가에서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조그만 계집종 아이가 베드로에게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합니다. 얼떨결에 베드로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다”고 부인합니다.

 

   앞문까지 나아갔을 때 또 다른 비자가 베드로를 보고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때 베드로는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며 맹세까지 했습니다. 잠시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네 말소리를 들어보니 네가 맞는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며 맹세하여 “내가 예수를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습니다.


   쓴맛에 길들이는 것처럼 우리들은 죄에 길들여 사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를 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예수를 부인하는 죄를 지었던 베드로가 죄에 길들여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부인한 것 뿐 아니라 맹세까지 하는 죄를 추가했습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예수님을 맹세하여 부인하는 것 뿐 아니라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다가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야 자신의 죄악성을 깨닫게 됩니다.


   점점 죄에 만연되어 가는 베드로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쓴맛에 길들여져 가는 우리들의 혀처럼 죄에 길들여져 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새삼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욥기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나 봅니다. “네 손에 죄악이 있거든 멀리 버리라 불의로 네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하라”(욥11:14)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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