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2. 12:46ㆍ좋은 글, 이야기
‘낳고’와 ‘죽고’까지 밖에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책꽂이에 꽃혀 있는 앨범을 무심코 보게 되었습니다. 그 앨범 속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때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 중 어떤 분들은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닌 분들도 계셨습니다. 탱탱하고도 고운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지금은 얼굴에 각이 진 주름을 갖고 있습니다. 까만 머리카락을 자랑하던 사람이 머리에 흰 눈을 덮은 채 살고 있습니다. 유난히도 머리숱이 많아서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사람이 몇 올 남겨지지 않은 머리카락을 사수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습니다.
앨범 한 쪽에는 색 바랜 누런 봉투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봉투는 어머니께서 나에게 주신 것인데 그 봉투 안에는 아무렇게나 헝클어져있는 아주 오래된 빛바랜 흑백 사진들이 가득했습니다. 그 안의 사진들은 부모님과 관련되어진 분들의 사진들이었고 그 사진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던 분들 중 거의 모든 분들은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나에게 주신 어머니도 사진을 통해서만 뵐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어머니께서는 손녀들을 무릎에 앉히셨습니다. 그리고 누런 봉투 안에서 아주 오래되어 빛바랜 흑백 사진들을 꺼내어 손녀들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한 장 한 장씩 그 사진의 주인공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데 마치 자신이 알고 계시는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손녀들에게 알려 주시기라도 하시는 것처럼 진지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나는 사진들 가운데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자 문득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할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린 기억이 납니다. 할아버지께서 뜨거운 탕에 들어가셔서 하나도 안 뜨거우니 너도 들어오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믿고 탕에 들어갔다가 뜨거워 혼비백산하여 탕에서 뛰어나왔던 기억도 납니다. 할머니는 이북에 두시고 전쟁이 끝나면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을 남기시고 아버지와 고모의 손을 꼭 잡고 월남하셔서 그런지 특히 장손인 나에게 많은 사랑을 보이셨던 여러 기억들이 납니다. 그리고 스물이 넘는 나이에 장로로 봉사하시기 시작하여 근 50년을 교회에 충성 봉사하시면서 나에게 기독교의 산 역사를 전해 주신 기억들도 떠올랐습니다.
나는 할아버지와 함께 식사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 이유는 늘 식사하시면서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밥을 적게 먹느냐고 야단을 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나는 적게 먹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칠십이 넘으신 할아버지께서는 나보다 더 큰 밥그릇에 많은 양의 식사를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할아버지는 건강하시고 식사도 잘하시기 때문에 백세도 넘게 장수하실 것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렇게 정정하시던 할아버지께서 갑자기 직장암 수술을 받으시더니 두 달을 넘기지 못하시고 그만 77세에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사진들 가운데 증조부의 사진도 보였습니다. 그리고 9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진들은 나의 눈을 그곳에서 떼지 못하게 했습니다. 나는 그 많은 사진들을 보면서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죽는 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사진들을 보면서 “이 분은 누구세요?”라고 물어 오는 아이들이 있는 것처럼 또 계속에서 이 땅에 누군가는 태어난다는 단순한 진리의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날까지 말입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칼 럼 필 자 |
김해찬목사 호주 시드니 하나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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