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3. 10:56ㆍ좋은 글, 이야기
네 이름이 무엇이냐
루마니아의 작가 게오르규가 1949년에 발표해 베스트셀러가 된 ‘25시’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저는 이 소설을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1967년에 앙리 베르뇌유 감독에 의하여 만들어진 안소니 퀸이 주인공으로 열연을 했던 영화를 본 적은 있습니다. 아마 40대 중반 이후의 사람들 중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쾌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루마니아의 산골 폰타나의 순박한 농부 요한은 아내 스잔나의 미모를 탐낸 경찰서장의 계략으로 인해 유태인이라고 상부에 거짓 보고됩니다. 그로 인해 그는 강제노동소로 보내지고 그의 인생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기가 막힌 삶을 살게 됩니다. 그는 유대인으로 오해를 받아 강제로 여러 해 동안 끌려 다니면서 나치스에게 시달리다가 연합군에게 체포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연합군에게 오히려 나치스로 오해를 받으면서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마침내 요한은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전범자로서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때 재판정에서 요한은 “네가 누구냐?”라는 질문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요한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선뜻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장면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당시 그 영화를 보고 있던 어린 나이였던 나도 나에게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졌기 때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서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들이 그 당시 사춘기였던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졌기 때문입니다.
앨빈 토플러가 쓴 ‘제 3의 물결’이라는 저서에서 산업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기계화, 전산화되고 그럴수록 힘과 조직과 명령의 물결이 더 거세게 파도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 속에서 사람은 주체가 되지 못하고 거대한 공장의 기계 부속품처럼 조작될 뿐이고, 몇몇 엘리트의 조작대상이 된 대중은 힘과 조직과 명령의 사고틀 속에서 모두 제정신을 잃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정체성을 잃어 버린 채 자신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를 건너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거라사’라고 하는 지방에 가셨습니다. 그곳은 유대인들도 발을 들여 놓기를 꺼려하는 마을이었습니다. 이 마을에 들어서자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과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은 동네에 너무나 큰 소란을 벌여 동네의 사람들에 의해 손, 발에 쇠고랑이 채워졌습니다. 그리고 공동묘지에 따로 격리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귀신들린 사람은 쇠고랑을 다 깨뜨리며 공동묘지를 뛰쳐나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갔습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을 예수님께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그리고 물어 보십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나 이 귀신들린 사람은 이미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엉뚱하게 자신의 이름이 군대라고 자신의 귀신들림을 주님 앞에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의 불행은 자신을 잃어버린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신을 상실한 채 자신에 의한 삶이 아니라 귀신에 의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잃어 버린 사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사람, 바로 이러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 불행하게도 이것은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며 또한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내가 200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최전방 GP에서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었습니다. 한 병사가 생사를 함께 하며 죽음의 사선을 함께 지키던 자신의 전우들에게, 그것도 곤히 잠자고 있는 고요한 밤에, 수류탄을 던지고 그것도 부족해 적군에게 향해야 하는 총부리를 전우들을 향하여 돌려 무차별하게 쏴버리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한 군인이 자신이 군인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저지른 끔찍한 사건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일들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정신 질서가 파괴돼 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한 채, 삶의 이유와 목적을 잃어버린 채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상한 인격과 가치지향적인 삶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동물적인 수준이하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우리 기독교인들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갈대처럼 살아가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얍복 강가에서 씨름하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사람이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야곱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리저리 흔들리는 야곱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새 이름 ‘이스라엘’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우리들을 향하여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고 계십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새로 주신 그리스도인이란 이름. 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이 이름에 맞는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고 있냐고 우리들에게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 주신 새 이름 ‘그리스도인’, 이 이름에 맞는 합당한 삶을 삽시다. 이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우리의 새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지 못할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계2:17)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호주에 이민을 생각하시는 분, 호주에서 자녀를 공부시키려는 부모님,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젊은이들은 호주에 오기 전 미리 연락이 되어지면 호주에서의 정보, 공항 픽업, 숙소, 일자리 등과 함께 호주에서의 신앙생활과 정착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주님의 일을 이루려 합니다. 또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상담을 통해 젊은이들의 신앙과 인생에 안내자가 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세계를 이끌어 나갈 미래의 주역들을 위해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호주로 오시는 분들은 메일(hanachurchmoksa@hanmail.net)이나 전화(9706 3203 혹은 0414307660)로 미리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함께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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