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너 예수님

2010. 5. 18. 10:21좋은 글, 이야기

트레이너 예수님

   매번 성경공부를 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주님은 이론 공부로 끝내지 않으시고 그때마다 실습을 시켜 주십니다. 그 주에 배운 내용을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들어주시며 아주 특별히 지도해주십니다.

 

   모여서 성경공부를 할 때는 팀으로 가르치시지만, 생활로 돌아가면 자상하게 일대일로 훈련시켜 주시는, 예수님은 아주 특별한 트레이너이십니다. 지난주에는 그 훈련이 너무도 혹독하여서, 그러면서도 놀랍도록 정확하여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몇 달 전부터 대학원 동기들과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여행지는 일본. 나는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더군다나 올해 내가 실직 상태이니, 우리 형편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여행을 강행했습니다. 예약이 끝났으므로, 80퍼센트의 위약금을 물면서 해약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딱부러지게 반대하지 않아서 일이 이렇게 되었다며 되레 나에게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나는 무척 화가 났습니다. 화에 화가 더 쌓여서 내 마음은 분노로 가득차기 시작했습니다. 여행을 가야한다면,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 다 만나는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3년 동안 투잡(two-job)을 하느라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나여야 했습니다.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습니다.

 

  더욱이 집안에 필요한 물건 하나를 놓고 2년 동안 기도해온 것을 알면서, 공교롭게 그 물건값이 여행 경비와 똑같은 것을 알면서, 기어이 여행 가방을 꾸린 남편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도 보란 듯이 내 마음대로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남편이 적지 않은 돈을 자신을 위해 쓴 것처럼, 나는 남아있는 생활비에서 그동안 사고 싶었지만 차마 사지 못했던 것들을 의기양양하게 샀습니다.

 

   남편이 일본에서 돌아오자, 나는 밤새도록 넋두리를 쏟아놓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말하고 울어도 좀처럼 서운함과 억울함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아침에는 밥상머리에 함께 앉지도 않았고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오후에는 오랜만에 근교의 카페를 찾아갔습니다. 한가하게 카페에서 식사해본 지가 5~6년은 된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은 가까운 곳에 있는 식물원에 갔습니다. 승용차로 30~40분이면 갈 수 있는 데인데 그런 곳에도 못가고 살았던 억울함을 풀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대로 돈을 쓰고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을 가도 마음은 지옥이었습니다. 점점 더 분노가 쌓이고 분노가 쌓이는 만큼 될 대로 되라 싶었습니다. 그 와중에 매일매일 해야 하는 성경공부 숙제만 뒷전이 되었습니다. 아니, 마음속으로는 이미 성경공부를 단념했습니다. 벌써 4단계 성경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내면이 성숙된 줄 알았지만, 변한 것이 하나도 없는 듯 했습니다.

원점으로 돌아가 있으니 아예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위선으로 느껴지고 내가 나를 속이며 살고 있다는 아득한 절망감에 괴로웠습니다.

 

  시험이 올 때마다 주님의 도움으로 잘 이겨내었지만 갈수록 시험의 강도가 커지니 더 이상은 높은 단계로 나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금요일 목장예배가 다가올수록 남편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차차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주 목장예배는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건만, 어느새 내 발걸음은 오 성도님댁에 닿아 있고 애찬 준비를 거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토요일 새벽, 뜬금없이 잠이 깨어버린 나는 바로 그 순간에 성령님이 남편을 용서하고 서로 화해하기 원한다는 것을 강력하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신기한지…. 한순간에 모든 것이 다시 반대편으로 돌아왔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던 마음이 어느새 평안함으로 되돌아와 있었습니다. 마치 ‘극과 극’ 체험이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서둘러 밀린 성경공부 숙제부터 하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무릎을 쳤습니다. 이번에 공부해야 하는 내용은 다름 아닌 ‘두 가지 속성’이었습니다. 죄 가운데 살던 옛 속성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새 속성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있는데, 주님을 인정해야 주님이 나를 통치하게 되고 주님의 능력으로 옛 속성이 다스려질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 어쩌면 그 사실 하나를 가르쳐 주시려고 이렇게도 혹독하게 훈련을 시키셨을까요?  주님이 옳았습니다. 간단하지만 너무나 중요한 사실이기에, 행여 내가 지적으로 동의만 하고 슬쩍 넘어갈까 싶어서 주님은 철저하게 실습을 시키신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고 오래 참지 못하고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나의 옛 속성을 어쩌면 그리도 적나라하게 돌아보게 하셨는지…. 도저히 내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어느 한 순간 성령님께서 거짓말처럼 해결하셔서, 능력은 내게 있지 않음을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보여주셨는지….

 

  사실은 남편이 여행을 떠나기 전, 다음번에 내게도 그런 기회를 주실 것이니 기꺼이 허락하라는 음성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나는 단번에 외면하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님의 통치에 나를 완전히 맡기지 못하는 것을 주님은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내가 주님의 음성을 거부하리라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음성을 거부했을 때 다시 솟아오르게 되는 나의 옛 속성이 얼마나 죄악되고 추한 모습인지, 뼈에 사무치도록 철저히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번에 경험한, 주님과의 일대일 훈련으로 나는 다시 한 번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랑으로 나를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내 깜냥으로는, 진리를 깨달아가는 그 단계 단계의 수준을 알지도 상상하지도 못합니다. 다만, 가끔씩 뒤돌아보며 주님이 변화시켜 놓으신 것들에 그저 놀라고 감사하게 될 따름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다릅니다.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고 지금도 어떤 상태인지 다 아시면서도, 나의 내일을 더 크게 바라보십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불행할까봐, 주님이 통치하는 축복의 영역 언저리에서만 맴돌며 천국을 누리지 못할까봐, 아이처럼 나를 돌아보시고 챙겨주시고 이끌어주십니다.

혹독한 훈련을 시키시면서까지 당신의 나라로 나를 이끌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를 만드셨기에, 나를 사랑하시기에…. 아… 그 큰 사랑….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글   쓴   이

민서엄마 

충넘 홍성군 홍동면

greenborisor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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