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ay 와 V-day

2010. 7. 6. 10:10좋은 글, 이야기

D-day 와 V-day

     

         죽어가는 영혼을 위해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십자가는 아무 느낌이 없듯,   조국을 위해 울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공휴일에 불과한 날이지만,    6월 호국보훈의 달, 6일은 현충일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께 감사합니다,  역사적으로도 1944년 이 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 영군이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 상륙한 날로, 우리는 흔히 이날을 D-day 라고 부르며, 다음해 5월8일(獨逸) 과 8월15일(日本)은 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기념일로 V-day 라 합니다,

 

    우리 믿는 자의 구속사(救贖史)에도 이와 같은 날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세상을 구원하기로 작정한 D-day가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던 날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날은, 원수 마귀의 통치와 사망의 권세에서 죄의 종노릇하던 우리를  단번에, 완전히, 영원히, 구속(救贖)하신 날이요(히 10;12~14),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確證)하신 날입니다,  성경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43;1)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부활(復活)의 첫 열매가 되신 바,  이는 죄와 사망과 마귀의 권세를 폐하고, 승리의 면류관(冕旒冠)을 쓰시고,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신 날이니 바로 V-day “승리의 날”이 아닐까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 5) 하시는 주님이 이루신 이 ”그리스도의 날들 역시,  예수의 흔적을 따라 사는 우리 믿는 자의 삶속에도 당연히 투영(投影)되어 나타납니다 ,  수사적 표현으로,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그날이 바로 D-day요, 주신 믿음으로 말씀과 뜻 속에서 순종하며 살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예비된 면류관을 소망하며(딤후 4;6~8)  이 육신의 삶을 떠나 하늘 아버지의 품에 안기는 그 날이 바로 우리의 V-day 일상 싶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대속을 통한 우리의 구원(救援)은, 믿음의 전부가 아니며, 신앙의 끝도 아니고,   다만 시작(始作)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제 승리의 V-day를 향해 가는 우리의 인생(人生)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엡4;13)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는 성화(聖化)를 위한 연단과 훈련의 여정일 것 같습니다,

 

    영적 거듭남에 따르는 이 과정은 마치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메마른 광야를 헤매는 이스라엘 같은 고난의 길이요 인내의 시간이랍니다,   성경은“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라고 하지만, 세속의 갈증과 허기로 채우진 광야 같은 현실의 삶 앞에 무릎 꿇은 우리는,   가슴을 쥐어짜며 왜 하필이면 나에게 이런 시련과 아픔이냐고 ” Why me..? 를 외칩니다,그러나 하나님은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本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애3;33)   그럼 본심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아버지가 어린자식을 양육할 때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숙제를 내주거나 문제 앞에 세우는 것은,  필요한 지식이나 능력을 스스로 키워주기 위해, 어떤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기 위한 훈육(訓育)의 방편이요,   이는 어린 자식이나 제자의 성숙과 성장을 위한 부모로서, 선생으로서 당연한 보살핌이요,  잘되기만을 바라는 애정어린 양육의 과정이 아닐까요,

 

   우리는 양자(養子)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신분(身分)에 맞게 갖추어야 될 덕목(德目)들이 있고, 신분이 높을수록 더 많은 것과 더 높은 것이 요구됩니다,  걸레를 그냥 빤다고 행주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팔과 공의를 의지하여(사 59;16) 자기 아들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그 사랑 속에는,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무서운 집념이 있습니다, 또한 자기 아들의 목숨보다 더 귀히 여기는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흠 없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자녀의 모습을 갖출 때까지, 밤새 동풍으로 바다를 가르시고 말리어 마른땅을 밟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출15;21) 하나님의 그 열심이 우리를 씻기고, 고치고, 분명히 다듬어 가실 것입니다,

 

    이 연단의 과정 속에서 오는 고통과 아픔의 감수는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 입니다, “뼈를 깎는 고통과, 눈물로 침상을 띄우는 탄식과, 밀납처럼 녹는 마음과, 입천장에 붙는 혀의 갈증과,  긁어도 긁어도 시원함이 없는 육체의 가시와(욥2;8), 모태에서 차라리 태어나지 말기를 소원하는 곤고와 (욥3장), 죽기를 바라는 절망(욥4;21)등,  그러나“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하십니다,

 

    운동의 효과가 극대화되는 순간은 숨이 멎을 것 같은 그 순간에서 한걸음을 더 내딛는때 부터라고 합니다, 풀무 불에 달구어진 쇠붙이가 녹는 것은 용해점(melting point)을 넘어서는 그 순간 부터랍니다,  그게 바로 연단의 때요 ” Why me..?를 외치는 고통과 참을 수 없는 아픔의 순간이나,   이 연단의 길을 걸어간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그렇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 하시는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풀무 불에 연단된 정금 같고,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좋은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의 피와 땀으로 범벅된 하나님의 이 열심이 나의 믿음을 통해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통째로 번제단에 내어 사르는 회개가 있어야 한답니다,믿음은 죄를 먹고 자라 회개를 통해 열매 맺는다고 합니다,

 

     지옥으로 달리는 열차 속에서 살기위해서는 천국이 있는 반대편으로 가야 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앉아있는 의자를 반대편으로 돌려 앉아 천국을 바라보고 간다고 천국으로 가게 되나요?  아닙니다, 그 열차에서 내려 천국으로 가는 열차로 바꿔 타고 가야 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도덕적 인간이 빠지는 2가지 딜레마가 있는데, 그 하나는 악(惡)을 행하면 <회한과 죄책>을 낳고, 선(善)을 행하면 <도덕적 교만>을 낳는다고 합니다, 믿음의 관점에서 보면, 악인은 불의(不義)에 빠지지만, 선인은 자의(自義)에 빠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봐야 합니다, 그저 의자만 돌려 앉아 지옥 길을 가는, 스스로 의로움(自義)에 빠져 하나님과 자신을 기만하고 있지는 않은지,.., 성경은 “이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眞理)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롬10;2) 하는 바,  이는 차라리 불의를 행하는 자보다 예수 영접하기 더 어렵답니다, 이렇게 회개란 우리의 전인격이 하나님에게로의 완전한 방향전환을 의미하며, 이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의미합니다,

 

    우리와 화평의 관계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사 43:1),  <고든 리빙스턴>은 “누구를 만나 어떻게 사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즉 행복과 불행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독불장군으로 살수 없는 게 인생이기(창 2;18) 관계 맺기가 중요합니다,   이러한 관계 중에서도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참사랑의 관계인 바,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아픔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문제와 고난의 현장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언제나 나를 도우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가시는,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성숙된 믿음은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은혜에 놀라워,  주님이 달리신 <고난의 십자가>와, 승리 승천 부활하신 <빈 십자가>를 바라보며 감사의 고백을 할 수 밖에는 없습니다, “ Why me..!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은혜이기, 논리보다는 체험이 앞섭니다,  그래서 이 아픔의 외침인 Why me? 와 감사의 고백인 Why me! 가 없는,  즉 개인적인 체험이 없는 연단 받지 않은 믿음은 연약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고백(告白)합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다고 (시 119;71),, -아-멘,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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