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9. 09:26ㆍ좋은 글, 이야기
통(通)하였느냐?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 이는 한의학에서 흔히 쓰는 말로, 통하면 안 아프고, 안 통하면 아프다는 뜻입니다, 즉, 혈과 기가 잘 통해 원기 왕성하던 몸도 소통이 안 되면 그 때부터 병이 든 답니다, 이렇게 통불통(通不通)에 따라 통불통(痛不痛)이 되는 것은 육체의 생리현상만이 아닙니다,
한 지붕아래 부모자식 형제자매 등 가족사이의 불통과 소통의 결여가 가정불화를 낳고, 세대간, 계층간, 빈부간의 불통으로 인한 갈등은 심각한 사회문제를 낳습니다, 나아가 개인과 개인, 정부와 국민, 국가와 국가 사이의 불통은 다툼과 분쟁과 전쟁까지 불러옵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 신선한 피가 모세혈관 곳곳까지 흘러야 하듯,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기위해서 먼저 우리생명의 근원이요 공급원이신 하나님과 형통(亨通)해야 하고,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불통의 담(죄)을 허신 예수그리스도와 소통(疏通)해야 하고(엡2;14), 이 주님의 몸 된 교회와 교통(交通)해야 하고, 그 몸의 지체인 성도 간에 상통(相通)해야 하고, 그리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할 세상과 순통(順通)해야 합니다,
통하기 위해선 먼저 알아야 합니다, 원론적으로 우리 신앙에 있어 소통의 상대는 하나님이고, 소통의 내용은 사랑이고, 소통의 방법은 기도이며, 그리고 그 소통의 현장은 바로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 있어 영적개념에 대한 모호성은 자족신앙으로 실족하는 지름길이요, 천사탈을 쓴 마귀도 하나님의 말씀을 도용하여 우리를 실족시키는 바, 소통을 위해 필요한 신앙지식은 <~에 대해서>가 아니라 <~을>직접 체험적 소통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아가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주님은 자신을 포도나무로, 하나님아버지는 농부로, 우리는 포도나무가지라 하시며, 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가지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는 제하여 불쏘시개감이라 하십니다, (요15;1~7)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하나님의 정원에서 형통의 결과는 알곡과 같고, 불통의 결과는 잡초와 같습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들 포도 같은 나를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그리스도께 접붙이시고, 완전히 한 나무 한 몸이 될 때가지 싸매어 보호하시고, 열매를 맺기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이 열심 덕분에 우리의 믿음은 성숙하여 열매를 맺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축복하시는 이 하나님의 열심(인도 보호 공급하심)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이는 오직 하나님의 선하심의 발로인 자비와 긍휼에 기인하기 오직 은혜요, 이를 아는 우리의 고백은 겸손 즉, 오직 감사와 순종과 인내가 바로 믿는 자의 덕목 일 것 같습니다,
이러한 소통의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바르지 못하면 소통의 장애가 발생합니다, 대부분 신앙의 통증은 바로 하나님과의 <소통의 장애>에 기인합니다, 사도바울은 초기 고린도교회 교인을 젖먹이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알기는 하되, 여전히 자기의 생각과 욕구에 따라 세상의 것으로 각기 왕 노릇하며 사는<육신에 속한 자>라고 부릅니다(고전3;1), 이 <영적기회주의자>들의 염려가 앞서고 의심이 뒤따르는 믿음은, 그들의 한발은 세상에 또 한발은 말씀을 딛고서서 가랑이 찢어지는 아슬아슬한 곡예사(曲藝師)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일반적으로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젖먹이 어린아이들이 가장 쉽게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하나를 아는데도 셋을 안다고, 그것도 아주 제대로 안다고 착각하는 것인바, 이는 패망의 선봉이요(잠16;18), 하나님과의 불통을 초래하는 첩경입니다,
이러한 육신에 속한 자들의 몇 가지 왜곡된 신앙의 자세를 보면, 좋은 것만 편한 것만 즐거운 것만을 추구하는 소위 <웰빙신앙>이 있답니다,그리고 성경의 좋은 구절만을 단편적으로 취하여 귀에 걸고 코에 걸고 자기신앙을 과시하는<요절신앙(要節信仰)이란 것도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자기 편리한대로 자의적으로 확대 축소 해석하거나, 입맛에 맞는 듣기 좋고 말하기 좋은 말만 골라 취(醉)하는<편식신앙>도 있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때론 이러한 성도들의 구미에 맞추기 위한 목사님들의 설교 역시 일류 코미디언 빰치는 언변과 몸 개그로 육신에 속한자의 신앙생활을 지루하지 않게 돕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앙의 태도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자기중심적 신앙으로 지금 이 순간 나의 믿음 속에도 자리 잡고 있지 않은지 되 돌아봐야 할 두려운 모습입니다,
<한비자>는 “삼류는 자기 능력을 쓰고, 이류는 타인의 힘을 부려 먹고, 일류는 타인의 능력을 써 먹는다”고 합니다, 이 말을 신앙생활에 비유해 보면 자기의 지와 능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자는 삼류요, 야생열매 따먹고 살듯<웰빙신앙>,<요절신앙>,<편식신앙>으로 믿음생활 하는 자는 이류요, 오직 성령의 능력에 의지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겸손으로 행하는 자는 일류 신앙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통의 장애를 극복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하여 나의 능력과 힘에 의지하지 않고(약1;5), 하나님의 깊은 곳까지 통달하며(고전2;10), 또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진리의 영>곧 성령의 능력과 그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요16;7~15)
만약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이 소통의 막힌 담을 헐지 못하면, 고인 물은 썩고, 막힌 뚝이 터지듯, 소통하지 못하는 하나님과의 사랑은, 시들은 애정이 그렇듯 논리적으로 따지려고 하고 결국 말라기시대의 이스라엘처럼 “우리가 어떻게 언제”를 외치는 냉소적 신앙으로 하나님의 가슴에 사랑의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답니다,
어짜피 하나님 없는 인생의 모든 것은 손가락사이로 빠져나가는 움켜쥔 물과 같습니다, 그렇기 하나님과 소통하기 위해서 먼저 나 자신을 비워야 하며 이 자기부정의 그 빈자리는 하나님이 풍성하고 다양한 사랑과 은사로 채우십니다, 그리고 이 채워진 하나님의 사랑과 은사는 우리의 믿음의 결실을 통하여 이웃사랑으로 전해지는 바, 곧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요 일꾼이요 선한 청지기라 하십니다,
바울사도는 몸도, 성령도, 주도, 믿음도, 세례도,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는 바(엡4;1~6)<나의 하나님>은 바로 <너의 하나님>이요, 그분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임을 알고 소통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신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마22;40)
얼음 위를 안전하게 미끄러지려면 적당한 속도를 내는 것이 안전하듯 실족하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생활도 열심을 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열심의 동력(動力) 역시 소통하시는 하나님으로 부터의 사랑이요, 나 나름의 열심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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