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 재해석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2011. 10. 7. 15:44좋은 글, 이야기

십계명 재해석 ;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아마 중학교 때인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후 선생님과 그리고 동년배 친구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했는데 그 내용이 십계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십계명 중에 제 일계명인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배우면서 조금 의아심을 가졌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유일신으로 배워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시면서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마치 하나님 자신 외에 또 다른 신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장로회신학대학에서 공부를 하면서 풀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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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다른 신들을(엘로힘 아헤림)’ 인정하시는 것인가? 여기서 ‘다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아헤르’의 원래 의미는 ‘이상한’, ‘헛된’입니다. 따라서 이는 하나님 외에도 다른 참된 신들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헛된 신들’, 혹은 ‘이상한 존재’를 추구하는 잘못된 속성이 인간에게 있음을 지적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 근동 지방에서 널리 행해지던 다신숭배 행위 뿐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섬기던 각종 유형, 무형의 존재들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십계명 중 첫 번째 계명은 하나님의 유일성 사상을 선포한 계명으로서 모든 다신교적 우상 숭배나 범신론적 철학 사상을 용납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참신으로 인정하고 섬기라는 계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본래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하실 때 흙으로 만드시고 그 속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것이요,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 아담은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 오셔야만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범죄한 후 인간들은 여러 형태로 하나님을 만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은 마치 넝쿨이 의지할 무엇을 찾는 것처럼, 배고픈 인생이 음식을 찾는 것처럼,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굶주린 영혼에게도 만족을 요구하는 깊은 욕구가 있습니다. 전도서 3:11에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민족 어느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찾는 노력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무서운 핍박을 당해도 하나님을 찾고자하는 노력을 뽑아낼 수 없었던 것이 인류역사의 이야기입니다. 네로 황제가 예수 믿는 사람을 그처럼 박해했지만 그들의 노력은 헛수고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제 1계명이 이 본능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제 1계명의 대상을 똑바로 알아야만 지혜 있고 총명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갔을 때 ‘알지 못하는 신’에게 예배하는 제단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곳에서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인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제 1계명이 누구에게 주어진 것이냐 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 계명이 얼마나 절실히 요청되었느냐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신들을 섬기던 애굽 땅을 빠져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태양, 달, 짐승, 곤충 등등을 섬겼다. 하나님이 애굽 땅에 내렸던 10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헛된 신에 대한 혼돈을 일으키신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땅을 취하기 위하여 전진하고 있는데 그 땅의 이방인 거민들도 역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는 제 1계명이 절실히 요청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앞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나 오늘 날에 있어서나 인간은 하나님 한 분 만을 인정하여야 하고 그 하나님께 분열된 마음을 바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실 때 이미 하나님을 믿는 것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어린 아이에게 배고픔이나 목마름을 가르쳐 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일은 본능이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굶주림과 목마름에 대한 대비책은 우리가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과 숭배는 인간의 본능적인 성품입니다. 성경 어느 곳을 찾아보아도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경 첫 장을 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어떻게 출생했는지 어떤 존재인지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우리들을 애굽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너를 보낸 자가 누구냐고 물을 때 모세에게 이렇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

 

    인간은 진실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할 때 자신 스스로 신을 만듭니다. 야만인은 야만스럽게, 문화인은 문화인답게 신을 만듭니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소나, 별이나, 자연을 신으로 삼고 섬겼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돈을, 인기를, 권력을, 명예를, 쾌락을, 지식을 섬기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만 믿고 자신만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 앞에 두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제 1계명을 모든 계명의 머리로 삼으셨습니다. 창세기 1:1절이 성경 전체의 머리인 것처럼 제 1계명은 우리에게 주신 계명의 머리가 됩니다.

 

   만약 사람들이 이 제 1계명을 진실로 순종한다면 나머지 아홉 계명에 순종하는 일은 자연적으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 1계명에 그릇되어 있기 때문에 나머지 다른 계명들도 자연히 깨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첫 번째 계명은 뒤에 나오는 아홉 계명의 기초가 되며 십계명이 보증해 주는 관계의 기초가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우월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서 여호와와 언약 관계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가장 근본적인 조건입니다.

 

  분명 십계명은 특정한 시기에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민족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그 내용은 특수성에 한정되지 않은 보편적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첫째 계명은 그 당시의 유대인들 못지않게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즉 그 당시 하나님께서 금하고 계신 부분은 지금 우리에게도 당시의 유대인들과는 다른 의미로 헛된 신에 대한 경계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이 헛된 신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무수히 많습니다. 오늘 날 각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신이 이름과 성격을 달리하여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최상은 오직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우리 안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20:1-3)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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