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0. 14. 15:10ㆍ좋은 글, 이야기
십계명의 재해석 ;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몇 년 전 이태리를 방문했을 때 토리노 대성당을 가 보고 싶었지만 일정 상 그곳을 들리지 못했습니다. 내가 그곳을 가보고 싶었던 이유는 그곳에 ‘예수의 수의’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의 수의’란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을 당하신 후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옷감을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예수님의 수의가 맞느냐 하는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더 유명세를 타는 것은 그 수의에서 예수님의 얼굴의 모습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 이태리의 고고학자 세쿤도 피아는 이 성당에서 여러 유물들을 사진촬영을 하는 중 우연히 ‘예수의 수의’를 촬영했는데 놀랍게도 그가 찍은 사진의 필름에 예수의 얼굴과 신체의 일부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그 후 그 수의에 대한 관심은 세계로 퍼져 나갔고 특히 기독교인들의 관심은 고조되었습니다. 결국 요한 23세의 지시에 의해 이 수의를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분석했는데 그 결과 예수님의 시대와는 동떨어진 14세기 정도의 것이라고 발표되어지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그 수의가 예수님의 것이냐, 아니냐는 굉장히 중요해 보입니다. 또 정말 그 수의에 찍힌 모습이 예수님의 얼굴이라면 모든 사람들의 상상 속에 있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얼굴을 그려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만 그려 보는 것일까?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은 왜 한 장도 이 땅에 남아 있지를 않은 것 일까? 예수님보다 더 훨씬 전의 사람들의 인물이 그린 초상화는 역사의 고증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데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초상화는 왜 볼 수 없을까?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더디 오시자 예수님의 행적을 글로는 남겨 오늘 날 우리들에게 성경을 남겨 주었는데 왜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인 성자의 모습을 한 장의 그림으로도 남기지를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깁니다.
유대 사람들은 초상화를 남겨 두지 않았습니다. 또 유대 어린이들 중 여자 아이들은 인형을 가지고 노는 법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에 해당되는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문화인류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형은 본디 우상이 변형된 것이라고 해서 히브리인의 관습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님의 수의가 남겨져 있었다면 그것은 분명 우상처럼 섬겨졌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초상화가 남겨져 있다면 사람들은 그 앞에서 절을 하며 복을 빌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유대 역사를 통해서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광야로 내몰자 그들은 다시 또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불평을 쏟아 놓았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통해 그들을 징벌하셨습니다. 죽어가는 백성들은 모세에게 자신들을 위해 여호와께 기도하여 달라고 간청하고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물린 자마다 쳐다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고 뱀에게 물린 자들 중 놋뱀을 쳐다 본 자는 다 살게 되었습니다.
죽어가는 모든 사람을 살린 이 놋뱀은 그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병을 고쳐 주신 분은 하나님이신대 그들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그 놋뱀을 치료의 신으로 우상화하여 버렸습니다. 그 놋뱀은 그렇게 약 700년을 보관되다가 히스기야 왕이 종교개혁을 실시할 때 이 놋뱀을 부수어 버리면서 그것은 한낱 놋 조각에 불과하다며 이를 우상화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침을 가합니다.(왕하18:4)
심지어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들어가지 못한 모세는 모압 땅에서 120의 나이에 죽음을 맞습니다. 그러나 훗날 그의 무덤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의 영원한 지도자인 모세의 무덤을 우상화하는 것을 미연에 막기 위해서 입니다.(신34:6)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그 사이도 참지 못하고 그들은 아론에게 자신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모세는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고 그것에 절하지도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산에서 내려 오는데 산 밑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인도할 형상을 만들었고 심지어 아론은 그 송아지 형상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고 우상화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수 많은 우상 앞에 절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하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우상을 만들고 또 그것에 절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이었습니다. 이것이 해결되어지지 않으면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그 땅에 있는 수많은 우상을 섬기고 그 앞에 또 절할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니라”(출20:4-6)
지금으로부터 약 340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이 계명은 오늘 날에도 똑 같이 이 땅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불변의 계명입니다. 현대의 시대에 하나님을 대체한 수 많은 우상들 앞에 오늘도 우리는 절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며칠 전 예배 후 식사 중에 권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손자가 며칠 전 모발폰을 잃어 버리고 나서 “할머니, 내가 지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야” 라는 하소연하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얼마 전 정전사태가 일어 났을 때 몇 시간을 컴퓨터 인터넷을 못하자 아이들을 비롯해 어른들까지도 안절부절 못하며 정신적으로 불안해 했다고 합니다. 요즘 모발폰과 컴퓨터 인터넷 등등이 우리들의 우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전 스티브 잡스는 수 많은 문명의 기기를 우리들에게 남겨 두고 이 땅을 떠나갔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그것들이 없으면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또 다른 우상들도 남겨 주고 갔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하나님을 대체한 우상들은 없는지 돌아 보아야 합니다. 혹시 목사님이 혹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대신한 우리의 우상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셔야 하는 교회가 예수님을 대체한 휘황찬란 건물로 우상화 되어 버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만이 나의 삶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의 것들이 우상이 되어 나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지 나 자신 스스로부터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께서 두 번째 계명을 주신 이유입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좋은 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도가 깊어 질수록... (0) | 2011.10.15 |
|---|---|
| 아픔이 100일 때 축복은 100에 100승 (0) | 2011.10.15 |
| 제사장의 옷 (0) | 2011.10.14 |
| 무전기가 고장났다, 소통할 수가 없다… (0) | 2011.10.13 |
| 사랑과 다이아몬드 (0) | 2011.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