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계명의 재해석 ; 살인하지 말라

2011. 11. 18. 16:15좋은 글, 이야기

십계명의 재해석 ; 살인하지 말라

 

 

 

         ’자살 공화국’. 한국의 자살율이 경제 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은 OECD 국가 자살율(표준 인구 10만 명 당)중 평균 28.1명으로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하며1위에 올라 ‘자살 공화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습니다.  OECD국가들이 평균 11.3명인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높은 수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10대부터 30대까지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일 정도로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요즘은 황혼이혼이 늘면서 50대 – 60대 자살율이 덩달아 늘어나면서 자살율도 고령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는 우리와 이웃해 있는 일본의 자살율을 두고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OECD 국가 중 자살율 19.4명으로 3위인 일본이 오히려 한국을 걱정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 번째 계명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이 계명은 생명의 존엄성에 관한 계명인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계명은 인명을 위협하는 모든 행위에 대한 금지 명령입니다. 여기에는 부주의, 방종 또는 증오와 분노 및 원한 등에서 오는 모든 살인 및 상해 행위가 포함됩니다. 이 계명의 근거는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어기고 살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가 됩니다.


    ‘살인하지 말라.’ 그런데 우리는 이 계명을 다른 사람의 생명을 헤쳐서는 안 된다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사실 이 계명에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생명도 헤쳐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우리는 자신의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다룬다거나 파괴할 권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남의 생명을 헤치는 타살뿐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헤치는 자살까지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분명히 자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중 분명한 것은 자신에게 닥치는 일들을 하나님의 일로, 다시 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으로 받아 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내가 중심이 되어서 원망과 분노, 상처와 고독 그리고 무관심 등을 내 자신이 받아 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극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또 내 모든 일에 있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간섭하심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에서 나타나는 결과입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살인 하지 말라.’ 예수님께서는 이 계명을 재해석 해 주셨습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이 계명에 대한 반대 명제를 제시해 주십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질 것이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생명 보호의 권리를 넘어서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설정해 주십니다. 즉 이 계명의 의미는 인간의 생명이 보호된다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인격 존재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은 권리가 있다는데 있습니다.  이는 누구도 타인의 인격을 침해할 권리가 없고 인격적 존재를 공동체에서 추방시킬 권리가 없으며 신체적 혹은 심리적 폭력을 통해 타인의 인격을 훼손할 권리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받은 유대인들은 살인의 결과만 발생하지 않으면 살인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가르쳐 왔지만, 즉 외형적인 살인의 결과가 없으면 살인죄도 없다는 것이 그들의 형식논리적인 가르침이었지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범죄의 영역을 인간 내면으로까지 확대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죽이지는 아니했어도 형제에게 노하는 행위, 형제를 모욕하는 행위, 형제를 경멸하는 행위도 살인죄의 범주에 포함시키셨습니다. 이렇게 살인의 개념에 분노, 모욕, 경멸행위를 포함시키심으로써 예수께서는 단순히 살인만을 금하고 있는 구약율법을 폐하고 새로운 윤리를 제시해 주셨다.  


    ‘살인하지 말라.’ 이 계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단순히 육적인 생명의 귀중함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계명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생명의 귀중함이란 단지 육적인 생명만이 아니라 영적인 생명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합당한 모습으로 돌아 올 수 있다는 그 가능성만으로도 우리 영혼의 생명은 무한히 귀중한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의 생명을 생각할 때 이 계명은 그 가장 숭고한 의미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타락시키는 것도 살인입니다. 


    육체와 영혼의 분리가 곧 죽임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일은 바로 영혼을 죽이는 것입니다. 영혼을 죽이는 일에 다른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잘못된 행실이 다른 사람의 신앙 생활하고자 하는 마음에 타격을 주어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게 만드는 이런 행위도 예수님께서는 무서운 범죄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18:6).’ 


    ‘살인하지 말라.’ 타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나의 생명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타인의 육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영적인 생명도 귀중히 여겨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날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여섯 번째 계명인 ‘살인하지 말라(출20:13)’를 다시 재해석할 필요의 이유입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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