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4. 11:47ㆍ좋은 글, 이야기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라고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 모두의 고백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겨, 우리에게 아름다운 직분을 맡기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으랴. 천한 자들을 택하사 하나님의 귀한 자녀 삼으시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아 하나님의 말씀을 맡기심이니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자신의 모습을 늘 반추하면서 이 은혜를 반복하여 고백하였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였으나(딤전1:13)>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딤전1:11)을 인하여 감격 또 감격하였다. 박해자 사울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될 줄을 누가 알았단 말인가? 포행자였던 살기등등한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할 줄을 누가 알았단 말인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스도인들 각자의 구원받은 일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입지 않고서는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일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교회의 강은혜 집사를 생각하노라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감격을 하곤 한다. 그녀는 베트남 여인이다. 베트남에서 이미 결혼을 한 몸이었으나 딸을 하나 남기고 남편은 죽었다고 한다.
남부 베트남의 가난한 농부의 딸인 그녀는 20대 초반에 어린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이라야 식구는 많고 얹혀사는 것이 늘 눈치가 보이는 형편이었다. 아버지를 도와 몇 마리의 돼지를 치며 근근히 살아갔다. 앞날은 막막하기만 했다. 그 때 한국 남성과 재혼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무조건 신청했다. 외국에 홀로 가서 산다는 게 두렵기도 했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20살이나 연상인 늙은 한국 남자였다. 그러나 베트남 남자들에 비하면 깔끔했고, 오히려 순진해 보였다.
직업도 월급이 꽤 되는 우체부라니 가슴이 벅찼다. 이젠 먹고 사는 데는 염려가 없겠구나 싶었다. 먼저 한국으로 시집을 간 사람들이 고생하며 때로는 매 맞으며 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월급쟁이 남편을 만났으니, 그리고 그다지 험악해 보이지도 않은 순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여 안심이 되기도 하였다.
그녀의 새 남편은 우리 교회 강집사님이다. 그는 말을 좀 더듬지만 너무 착하고 성실하다. 오로지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정된 동네에 우편물을 전하는 것이다. 그는 운전도 못한다. 그렇다고 그가 모자란 것은 아니다. 그저 세상과 좀 떨어져서 산다는 것이다. 너무 영악하지 않다는 것이다. 돈을 관리하지도 못한다. 그리하여 40대 후반인 지금까지도 어머니가 돈 관리를 해준다.
우리가 지금의 교회에 부임한 때에 강집사와 그의 전부인인 이집사는 집사의 직분을 갖고 교회를 다녔는데 그다지 신앙은 깊지 않아서 주일 낮 예배에만 참석을 하였다. 부인은 모태 신앙으로 어머니는 권사님, 오빠는 장로님이었는데 막내딸인 그녀는 미지근한 신앙으로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남편인 강집사와 결혼을 하여 둘이 함께 십 수 년을 미지근한 신앙으로 일관해오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리를 만나면서 주일학교 교사, 성가대원 등으로 처음에는 억지로 봉사를 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는 자에게도 은혜를 부어주심을 보았다. 그녀는 차츰 신앙이 깊어지면서 언제나 집에서 뒹굴면서 시간을 보내던 그녀가 낮에 혼자 교회에 와서 화단에 풀도 뽑고, 교회 청소도 하는 등 자원하여 봉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늘 새침하고 우울했던 표정이 밝아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와서 병원에 갔는데,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러고 보니 몇 년 전부터 빈혈이 있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어안이벙벙했다. 왜 이제야말로 신앙생활을 잘 해보려고 하는데 불치병에 걸렸는가?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어리석은 제자들처럼 “이 병이 누구의 죄로 말미암아 왔습니까?” 라는 쓰디쓴 의문이 일어났다. 본인도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내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길래.” 라고 울먹였다. 아직도 우리는 하나님의 의도를 완전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하나님은 이미 베트남에 한 여인을 예비해 놓으시고 그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는 것은 확실하다.
믿음이 좋은 친정 식구들과 미지근한 믿음의 시댁 식구들, 그리고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그녀의 병을 고쳐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에서 1년 정도의 온갖 치료 과정을 거치면서 최선을 다하여 치료를 했으나 하나님은 그녀를 데려가셨다. 사춘기에 접어든 두 아들과 남편을 남겨두고 그녀는 하늘나라로 갔다. 40대 중반인 남편도 남편이려니와 한 가정에 어머니가 없는 가정은 냉냉하여 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친할머니가 살림을 한다고 하지만,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은 점점 더 말이 없고 침울해져만 갔다. 그리하여 친족들은 서둘러 재혼을 서둘렀다. 시골이지만 직업도 있고 살림살이도 넉넉하니 재혼하려고 덤비는 여자들이 여럿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 나이에 섣불리 재혼을 했다가 망가진 가정이 많으므로 심히 조심하느라 재혼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 때 쯤 목사님은 동네에 심방을 하면서 농촌에서 결혼을 하지 못하고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그 문제의 해결책을 고심하고 있던 차에 모 기독신문을 보다가 농촌총각들의 해외 결혼 광고를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 결혼을 통하여 장가 못간 농촌 총각들을 구제하고 동시에 물설고 낯선 나라로 시집와서 마음고생을 많이 하는 외국 여성들을 상대로 전도를 해야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처음 시도로 한 베트남 결혼 정보 회사를 정하여 지금 제일 급한 불부터 꺼야겠다는 생각으로 강집사님을 찾아가 권유했다.
처음에는 강집사님과 그 어머니 집사님이 펄쩍 뛰었다. 어떻게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 여자와 살 수 있겠냐며 어찌 하든 한국 여자와 재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 중에 강집사님 같은 경우에 한국여자와의 재혼은 많은 어려움이 따르므로 차라리 외국 여자와의 새로운 결혼 생활이 더 나으리라는 확신이 와서 수차례 방문하여 설득하고 설득했다. 그래서 드디어 가족들이 모여 회의를 여러 번 한 후에 우리가 소개하는 그 회사를 통해 재혼하기로 결정했다. 그
회사는 베트남에서 가구 공장을 차려놓고 사업을 하는 장로님이 운영하는데, 시골 목사가 친히 전화하여 부탁을 하므로 특별히 관심을 쏟아 가장 적당한 배우자를 물색하여 소개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 장로님에게 지금까지도 고맙게 생각한다. 정말이지 천생 연분이 따로 없을 정도로 딱 맞는 배필을 짝지어주셨기 때문이다.
강집사님은 자기의 재혼에 심혈을 기울여 애써 준 목사님에게 고마웠는지 베트남에서 온 신부를 인천 공항에서 데려오는 날, 집에도 가기 전에 둘이서 맨처음 교회로 왔다. 나는 그 부부를 처음 볼 때 눈물이 나왔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입은 자매로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였다. 그 때부터 그 자매를 볼 때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라는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 그리하여 3년 쯤 지난 후 드디어 주민등록증이 나와서 한국 이름을 지어서 시청에 가야한다고 우리보고 이름을 지어달라고 할 때, 나는 그동안 늘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이름인 <주은혜>라고 지어주었다.
부부는 참 좋은 이름이라며 그 이름에 만족하였다. 그런데 그 이름을 종이에 적어 주어야 했는데 그저 말로만 해두었더니, 어느 날 주민등록을 내러 혼자 시청에 갔다고 한다. 이름을 쓰는데, 갑자기 <주은혜>가 떠오르지 않고 <은혜>라는 이름만 떠올랐단다. 직원이 “성은 뭘로 할까요?” 하고 물으니 갑자기 성이 떠오르지 않아서 급한 김에 “강이요.” 라고 했단다.
그 직원이 “왜 하필이면 강입니까? 강씨는 고집이 세고 좀 드센 성품을 나타낸다고들 말하는데요. 우리나라에 드센 성이 세 가지 있쟎아요. 최 씨, 강 씨, 그리고 거 뭐더라? 좀 더 좋은 성을 가지세요.” 그 때 은혜 씨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 강 씨가 드세다고? 그렇다면 나도 드세어야 하겠구나. 나도 드세어져야 만만해 보이지 않을 테니까. 난 반드시 강 씨로 해야겠어. 그리고 우리 식구들 모두 강 씨이니 나만 다른 씨 할 건 뭐야. 똑같은 씨가 되어야지.” 하면서, “강 씨로 해주세요. 남편 성을 따라서요.” 하니 직원도 그저 웃으면서 그게 좋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주일날 교회에서 점심식사를 하면서 하는데 어찌나 배꼽빠지게 웃었는지, 하여튼 강은혜 집사는 유머 감각이 많다. 그리고 어찌나 얘기를 재미나게 잘하는지 할머니들이 좋아한다. 그리하여 주변에 사는 남자들의 외국 여성과의 결혼 성사에 조금은 일조를 하고 있다고 해야겠다. 우리 교회에서 칭찬이 자자한 젊은 집사님이다.
어쨌든 강은혜 집사는 한국에 온 그 주로부터 지금까지 특별한 일이 있는 날만 빼놓고 한 주도 예배에 결석하지 않는 주일성수를 잘하는 성도이다. 7월에 한국에 와서 바로 그 주일부터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는데, 그 고충을 몇 달 전에서야 그녀의 입으로 고백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사실, 일 년 동안은 교회 다니기가 엄청 힘들었단다.
말은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지, 베트남에서는 접하지 못했던 색다른 분위기, 입에 맞지 않는 식사, 언어의 장벽으로 인하여 아무하고도 마음을 터놓을 수 없으므로 겪는 고립감, 자기만 홀로 낄 수 없는 문화의 장벽들,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애로점들이 있어서 사실은 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성품처럼, 싫어도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끝끝내 해보는 끈기로 버텼다고 한다. 지금은 교회를 빠지면 오히려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작년 겨울에는 그녀의 집에서 밤 8시에 기초교리 성경공부를 했다. 그 성경 공부 시간에 이런 저런 고충, 고민, 간증들도 함께 나누곤 했다. 그 때 그녀가 고백한 것이다.
강은혜 자매는 한국에 온 다음 해에 학습을 받고, 그 다음 해에 세례를 받았다. 그 부부의 고명딸도 유아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2010년에는 집사 직분을 받았다. 나는 그녀가 하나님의 특별한 택하심을 입은 은혜로운 자매임을 확신한다.
지난 10월에 베트남과 캄보디아에 J노회 교역자부부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베트남 여행 가이드 말에 의하면, 베트남은 85% 정도가 불교도이고 14% 정도는 카톨릭이며 나머지 1%는 무교도인들, 혼합종교인들, 신교도인들이 차지하는데, 그러므로 신교도인들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고 하였다. 아직은 베트남이 공산국가 체제이기 때문에 자유로운 포교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기독교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상태라고 하였다.
그 때 우리 부부는 제일 먼저 강은혜 집사를 떠올렸다. 베트남에 살고 있었다면 예수님을 믿기가 정말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하니 은혜를 많이 받은 강은혜 집사님은 참 복 많이 받은 사람이구나 했다. 바로 그 때, 그동안 터지지 않아서 통화를 전혀 할 수 없었던 남편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가는 버스 안에서였다. 한국의 강은혜 집사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통화는 길게 이루어지지 못하여 안부만 서로 전하고 전화는 끊겼다. 나중에 돌아와서 물어 보니 친정아버지께서 하노이에 계시는데 우리를 만나보고 선물도 주고 싶어했노라고 하였다.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입성할 때 여리고성의 이방 여 사제였던(성경에는 창녀라고 나왔으나 사실은 이방 여 사제라고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읽었다.)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들을 영접하여 탈출하도록 도와주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믿음을 고백함으로써 여리고성이 무너질 때 온 가족과 함께 구원받아 예수님의 족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린 일이 있다.
또한, 사사 시대에 흉년이 든 이스라엘을 떠나 모압 땅에 가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빈털터리의 처량한 신세가 된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모압의 신을 버리고 어머니의 하나님, 어머니의 은혜의 땅을 찾아 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룻의 택하심을 생각해본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삶과 의지할 데 없었던 불쌍한 젊은 여인이었던 베트남 여인이 물설고 낯선 이국땅에 시집와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며 구원의 방주 안으로 들어왔으니 이 어찌 큰 은혜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놀랍고 놀랍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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