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2. 5. 11:22ㆍ좋은 글, 이야기
영적예배를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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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예배'라는 말을 너무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예배,수요예배,새벽예배.철야예배,구역예배.등등 성도가 모이기만하면 예배라는 말을 붙이는 실정입니다,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고 성경은 말을 합니다,바울사도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라고 경고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기하기에 진정한 '경건의 능력'에 대해 그 본질을 진리를 통하여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 2절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이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영적 예배"라고 말합니다.‘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 라는 말과 영적인 예배'...이것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구절이나 그리 간단한 개념이 아닙니다. ‘영적인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야’ 하고, 그 다음엔 ‘거룩해야’하며 ‘산제사’여야만 합니다.우선 그 각각의 개념들을 세밀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시대는 수많은 인터넷 정보들과 신앙적인 책들의 홍수, 생활의 편리함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아는데 축복받은 세대는 분명하지만, 저는 지금 이 시대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아모스8:11)에 빠져 있는 때라고 감히 표현합니다, 마지막 때에 그 '기갈'을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보내신다고 하셨는데,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 참으로 두려운 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진리를 깨닫고자 하는 그 열정이 근세의 일제시대나 5,60년대 신앙의 선배들과도 비교해도 너무나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70년대 까지만해도 성도가 집에서 성경을 읽는것을 당연시 여기는 때가 있었기에 저 또한 하루에 두세시간 성경을 읽는것을 당연히 여겼었습니다,그때는 부흥회나 사경회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는게 보통이었지만,시간시간 온교인은 물론,이웃교회 성도들까지 은혜받으러 와서 교회당이 비좁은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모이면 뜨겁게 기도하면서도 부족한 감이들어 산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도 자주 했습니다, 새해벽두에 기도원에 가면 앉을자리가 없을정도로 금식기도하거나 결단의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된것은 그렇게 부르짖었던 신앙선배들의 불같은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었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말이 잠깐 밖으로 샜습니다,
영적인 예배에 대한것은 그 배경을 이해해야만 이 말들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이 성령충만한 초대교회의 예배에 대하여 이 말을 썼을 때 그것은 자신이 처음 깨달은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닙니다.이 모든 것들이 이스라엘의 예배의 본질이었습니다.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신령한 노래'는 바로 다윗의 장막에서 드려지던 예배의 중심입니다.다윗 자신은 물론 그 휘하에 있던 아삽, 헤만,여두둔같은 악사들이 여호와의 영(성령)에 감동하여 부른 찬양을 '신령한 노래'(대상25:1-2)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 장막예배를 이해하면서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 깊이 깨달은 자였습니다.초대교회의 예배는 이스라엘에 부어주신 그 기름부음의 본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그러나 많은 시간이 흘러서 우리는 점점 그것을 잃어버렸습니다.지금 우리는 초대교회의 진정한 기초가 무엇인지에 대한 영적인 감각이 마비되어 있습니다.그러므로 바울이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할 때,그는 성막과 성전에서 섬기던 '제사장'의 '제사'를 인용해서 말하는 것입니다.그는 우리에게 '진정한 제사장'의 삶에 대하여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삶속에서 거룩한 제사장들의 역활을 감당하다가 공동체에 모여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릴때에 하나님의 영광의 불이 우리 마음과 세상을 태우게 될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몸을 '산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간과하는 것 중 하나가 예배나 헌신의 중심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말로는 그렇게 되기를 갈망하고 찬양하고 기도하지만 진정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우리의 복음, 우리의 예배, 우리의 사역들과 소명들이 여전히 공생애 기간의 제자들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을 수가 있습니다.마귀는 우리가 세상적인일이나 죄를 지을때 막지 않습니다.다만 하나님의 뜻대로, 그 기뻐하시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합니다.레위기나 민수기에 보면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도록 드리라'고 강조합니다.무언가를 우리가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버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이것을 항상 생각하고 새기고 집중해야 합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이 주님의 간구가 우리 영혼의 중심을 관통하여 흘러야 합니다.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우리의 만족과 필요와 어떤 체험을 위한 예배가 많음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예배란 교회안에서 모이는 것 뿐만아니라 삶의 자리에서도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것임을 온전히 마음에 새기길 바라고 기도와 말씀에 착념하므로 영적기갈에서 벗어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의 성전입구에 있는 '물두멍'에 우리자신을 늘 비추어 보는 지혜롭고 슬기로운 성도들이 되어 진리되신 주님앞에 담대히 서시길 기원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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