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지망월(見指忘月)

2011. 12. 4. 09:51좋은 글, 이야기

견지망월(見指忘月)

 

 

 

     견지망월(見指忘月)이란 말이 있습니다,즉 “달을 보라“고 가리켰지만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바라본다는 뜻이랍니다,하나님의  말씀과  뜻 속에서 자유하고 기뻐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현장에서도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이러한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라보는 자의 잘못일 수도 있고, 가리키는 자의 잘못일 수도 있습니다,

 

    바라보는 자의 잘못은 그 당사자 개인의 문제이나, 가리키는 자의 잘못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문제가 됩니다, 특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보고  듣고  읽어 아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고 체험적 경험이 필요한  지식이며, 믿음은  알고 믿는 게 아니요  알기 위해서 믿는 것이기 때문에, 바라보고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만약  가리키는 자가 무지하거나  또는 무지를 감추기 위해  체험적 지식의 약점을 이용하여  잘못 가리키고 있다면  이건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죽어가는 환자들을 살리는 병원과 같고,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은 죽어가는 환자를 수술하여 새 생명을 주는 의사와  같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도구인 말씀은, 그 손에 들린 수술 칼과 같습니다,그러니 만약 이 의사가 돌파리 의사라면  또는 그 손에 든 수술 칼이 오염되어  있다면 그 환자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어떤 고아원이 있습니다,염불에는 관심 없고 오직 젯밥에만 관심 있는 그  고아원의 원장은 원생들의 복지와 양육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원장이란 자기의 명예와  원생숫자에  곱해져  나오는 정부 보조금에만  관심이 있기, 온갖 방법을 통해 원생들을 위탁받고 나면 마치 사냥한 노획물처럼 고아원에 던져 놓고 또다시 원생 모으기에만 급급합니다,그러다보니 내 팽개쳐진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배고파  아우성을 칩니다,그럴 때면 원장은 사탕 한 알씩을 입에 물려 그들의 허기를 잠재우고, 목마름에 물을 찾는 아이들에게 솟아나는 샘물이 아닌 고여 썩은 물 한 컵씩을 퍼 먹여 그들의 갈증을 면케 했다고 하면 어떻겠습니까?

 

    목마르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사탕 한 알, 썩은 물 한 컵은 우선 당장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소시킬 수 있는 임시방편은 될지 몰라도 그들을 건강한 모습으로 성장시킬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음식이 아니고 차라리 독(毒)이요, main dish는 아닙니다,이러한 양육을 받는 고아들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메말라 결국은 영양실조로 다 죽게 될 건 분명합니다,

 

    성경의 말씀 중 목사님들이 가장 설교하기 좋고, 듣는 교인들도 쉽게 은혜 받을 수 있는 말씀은, 소위 욥기나 잠언 같은 지혜서의 말씀들 같습니다,말씀 한 귀절 한 마디가  다 주옥같은 말씀이요, 은혜 안 되는 말씀은 한마디도 없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지혜서의 말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 적용되는 율법서와는 달리, 상황에 따라 그 적용을 달리하는 말씀인 바,  그  말씀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사건과 상황과 이유와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될 순 없습니다,지혜란 바로 지식을 잘 운용하는 실력을 말하기 때문이랍니다,

 

     신학대학원을 나오고 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목회자로서의 능력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해도, 그 능력이 곧 실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갖춘 그 능력을 잘 풀어낼수 있기 위해서 즉,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회를  하기위해서, 목회자는 항상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즉,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만이 능력을 실력으로 잘 풀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 주신 능력만을 믿고 자만하는 목사님의 준비되지 못한 설교는 보고 듣는것도 안타깝지만,이나마도 듣고 그래도  은혜를 받았노라고 아-멘!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더욱 안타깝습니다,하나님의  연애편지인 성경말씀은  어느 한마디도 은혜 안 되는 말씀 없고, 영적으로 갈급한 자들의 입에 달지 않은 말씀  없고,

또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게 하시는 성령님의 은혜의 역사도 있으니, 하나님의 그 사랑에 그저 감사 할 뿐입니다,

 

    준비되지 못한 설교는 영적으로 갈급한 심령 속에 주어지는 사탕발림일 뿐, 성숙과  성장(聖化)을  위한 좋은 음식은  분명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교인들에 대한 사랑이 결여된 섣부른 양육은, 오히려 교인들을 요절신앙(要節信仰)에 빠지게 하고,  마치 티벹 불교에서 "마니차"를 돌리며 자기신앙을 자위하듯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게합니다,결국 이러한 신앙의 자세는 우리의 삶에 힘을 주고, 위로를 주고, 지혜를 주지 못하며,  삶과 신앙을 분리시킴으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생활을 메마르게하고, 이로인한 견지망월한 믿음이 충만할 때 ,우리는 기독교의 이름을 빙자한 “종교적 공갈”(마틴 루터) “종교적 사기“에 걸려들어 몸과 마음과 영혼이 몸살을 앓게 됩니다,(딤후6;3-5)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주일성수  잘하고 ,십일조  잘 내고, 봉사 열심히 하고,  이런저런 교회생활 열심히 하면 되지, 우리가 신학을 공부할 것도 아니고  성경 많이 아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그러나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충  알아야 할 게 있고 정확히 알아야 할 게 있습니다,적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라면 적당히 대충 알아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대충 알고 지낼 가벼운 상대는 분명 아니십니다,거룩하신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우리를 아버지와 자녀라는 절친한 관계로 부르셨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나, 사랑하는 사람끼리 소통하는 것을 보면 ,눈짓하나 표정하나만 봐도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를  압니다,따라서, 이러한 교감이 오갈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그 분을 충분히, 그리고 당연히 알아야합니다,

 

    “믿음의 주(主)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 알기 위해 바라봐야 하고, 알기 때문에 바라봐야  할 이 예수는, 소위 외식하는 바리새인 등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율법(律法)이 가리키는 그리스도는 보지 못하고,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 율법에 착념(着念)함으로 인해 정작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어리석은 짓을 자행했습니다,(갈3;24) 이 십자가의 처형은 견지망월한 믿음이 부른 최악의 사건(事件)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것"과 "아는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엡 4:13) 이 말을 뒤집어보면 예수를 '믿는것"과 "아는일"은 항등식(恒等式)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를 안다고 해서 다 믿는 것이 아니요, 믿는다고 해서 다 안다고 말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이 둘은 우리의 믿음의 배가 하늘나라를 향하여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좌우(左右)의 노(櫓)입니다,

 

    체험적경험이 요구되는 믿음에 있어, 이러한 믿는 것과 아는 일의 분리를 가져오는 원인이자 결과인 견지망월한 믿음생활은, 하나님의 본질을 훼손(제2계명)하고, 그의 명예를 더럽히는 일(제3계명)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호4;6)  아-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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