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하가는 것은,

2011. 12. 14. 12:22좋은 글, 이야기

심령이 가난하가는 것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5-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하다는 의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심령이 가난한자가 천국을 얻는다면, 반대로 심령이 부유한자는 천국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 만큼 심령이 가난한자에게 예수님은 관심이 많고,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산에 올라 무리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죽어서 들어가는 천국을 말하는것이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누리는 천국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을 깨닫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면 어떻까요?

"예수님은 가난한 심령을 가지셨을까?"

"그러면 예수님이 가지셨던 심령은 어떤것일까?"

이제 답이 나오지요?.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천국을 소유 할 수 있는, 심령이 가난한자는 예수님을 닮은 자입니다.

다시말하면,

가난하고 소외된 자를 향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가난한 심령이라는  말이지요.

물론 행동까지 가야 가난한 심령이라 말 할수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삶이 가난한자를 심령이 가난한자라고 이야기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바르지 않은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한 분들은 먹고 사는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사실 마음을 평안을 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론 가난한자들 가운데도 심령이 가난하여 천국을 누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자신도 어렵지만 어려운 와중에도 이웃에게 떡 한조각이라도 나누는 마음은 예수님을 닮은 심령을 소유하고 있어 천국을 누리고 있는 심령입니다.

 

그런데 산에 올라 말씀을 전하는 분위기상 가난하고 병든자들이 예수님을 쫓아와 말씀에 귀 기울였다기보다는 그래도 그들보다는 경제적으로 나은 분들이, 지금 말씀을 듣고 있는 대상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난하고 병든자들, 손가락질 당하는 소외된 계층, 즉 율법의 저주아래 놓였다고 일컫는 계층을 멀리하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을 그들에게 나누라는 말씀을 우회적으로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나눔의 사랑을 통해 완성됨을 깨우쳐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피차 사랑의 빛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롬13:8-

 

당시 문둥병자들이 모여 살았던 베다니촌이 예수님이 자주 가시던 곳임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월절 기간에는 아예 베다니에서 누질러 살았습니다. "그들을 떠나 성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마21:9-

당시 소외 계층이었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도 베다니였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되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요12:1-

예수님이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를 살리신 것은 의미 있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심중에 깊이 헤아려 가난한 심령을 소유해야겠습니다.

사도행전 19장 36절 이하에 나오는 도르가여인처럼 선행과 구제가 삶 속에 있어야겠습니다.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루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행9:36- 이런 삶이 가난한 심령을 가진 자의 삶입니다.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심령이 평안을 누리지 못한다면 누가 평안을 누리고 천국을 누리겠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을 이 땅에서도 누리고 죽어서도 천국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천년전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 합니다. "소외되고 손가락질 받는 자를 업신 여지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은 그런 자들이 누리게 될것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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