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을 앓고 있는 몇몇 교회를 보며

2011. 12. 15. 11:18좋은 글, 이야기

몸살을 앓고 있는 몇몇 교회를 보며

 

 

 

     

     의사이자 가족치료학자인 보웬은 가족치료이론의 여러 개념 중의 하나로 다세대 전수이론을 주장하였다. 다세대전수이론이란 정서적 문제가 개인을 넘어서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여러 세대를 걸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내 경우만 봐도 그렇다. 큰아이가 대여섯 살 되었을 무렵이다. 마루에서 남동생과 깔깔대는 소리가 방안까지 들려왔다. 무슨 일로 저렇게 즐거워하나 싶어 슬며시 나가보았다. 십 원짜리 동전을 바닥에 세워 왼손의 엄지와 검지로 잡고 오른 손으로 튕겨 한 2미터 쯤 앞의 종이 위에 그린 원 안으로 그 동전을 넣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동전이 원안으로 들어가면 ‘골인’을 외치며, 손뼉을 치며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그들이 하는 방식 그대로 ‘골인!’하며 손을 치켜들며, 손뼉을 치며 함께 즐거워해주었다면 그들의 정서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끼쳤겠는가. 그랬다면 그들의 성품이 지금보다도 더 발랄하고, 더 효능감을 가진 자녀들이 되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도리어 검지손가락을 내 입술에 수직으로 대면서 ‘쉿’ 하며 제지하곤 했다. 그러면 그들은 그 즐거움을 멈출 수 없어 한쪽 구석으로 가 소곤소곤 거리며 소리 나지 않게 웃곤 했다. 그럴 때라도 못 본체 하고서 그냥 방으로 들어왔으면 좋으련만 어리석은 나는 눈을 내리뜨며 그것마저 제지하곤 했다.

 

     어디 그뿐이랴.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쿵푸를 하면서 웃고 즐거워하면 함께 놀아주지는 못할망정 옆에서 ‘으쌰, 으쌰’하며 장단을 맞춰줘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는 엄마에게 예의 있게 행동해야 한다고 훈계하고, 아내에게는 엄마로서 체통을 지키라고 핀잔을 주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의 외향성과 유능감과 기쁨의 정서를 막아버리는 행동을 했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부모요, 멋대가리 없는 아버지였던가.

 

    그럼에도 당시에는 내가 옳은 줄로 여겼다.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야 가족치료를 조금 공부하고서 내 양육방식이 잘못된 줄을 알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원인도 알게 되었다. 나의 그런 행동은 내 아버지, 어머니가 나를 키우던 방식 그대로였던 것이다. 내가 자란 가정(원가정) 분위기와 똑같이 만들어가려는 시도요, 나 보기에 좋은 대로, 내 성격대로 만들어가려는 시도였던 것이다.

 

     나의 그런 양육방식으로 인해서 이제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한 내 자녀들의 성격을 가만히 보면 내 성격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한다. 그 성격은 또한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과도 유사함을 발견할 수 있다.

 

     나보다 아내의 성격이 더 좋은 면이 많기 때문에 아내의 성격을 더 닮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이제 와서 어찌하랴. 그래서 객지에 있는 자녀들이 어떠어떠한 일을 했다고 전화로 말을 해줄 때면 특히 어려서 길러주지 못한 부분이라고 생각되는 면은 지금이나마 길러주려고 크게 칭찬해 주고 있지만 이미 대부분의 성격이 다 형성되어버렸기 때문에 그 영향은 극히 미미할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에도 부모의 성격과 삶의 방식들이 세대 간에 전수되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아브라함 가정과 다윗가정 그리고 한나 여인 가정과 엘리제사장 가정, 여로보암 가정, 바아사 가정 등 수없이 많다. 그 인물들 중에는 가족 간에 편을 가르는 부모는 세대 간에 영향을 끼쳐 그 자녀 그리고 손자 세대들까지도 그들 부모처럼 똑같이 편을 가르고, 경건한 부모와 악을 행한 부모 역시 자신들의 방식을 자녀들에게 영향을 끼쳐 대개는 그 자녀들도 그 부모와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모두 다 부모가 자신의 삶의 방식을 여러 형태로 자신들도 모르게 대물림 해주기 때문이다.

 

    다세대 전수이론은 가족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교회의 건강치 못한 전통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도 바로 그 전통이 세대 간에 전수되기 때문이다. 건강치 못한 전통을 이어받은 앞선 성도들은 후배 성도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신앙생활 하도록 악영향을 끼친다.

 

   만약 자신들과 똑같은 방식이 아니면 잘못된 방식이라며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며 비판과 비난 그리고 충고와 지적을 한다. 그러면 후배 성도들은 선배 성도들을 그대로 닮아가든지 아니면 그런 요구를 견디다 못한 성도들은 교회를 박차고 나가 다른 교회로 옮기든지 아예 교회에 발을 끊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는 목사도 그 전통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잘못된 목사라며 정죄를 한다. 하지만 지혜로운 목사는 인내하며 말씀으로 조금씩 변화를 시켜나가 필경은 건강한 전통을 다시 세워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가 교회를 떠나든지 아니면 자신의 세를 키워나가 급기야 교회에 두 파가 형성된다. 불쌍한(?) 성도들은 그런 사실도 모른 채 멋모르고 어느 한쪽에 합세하며 죄악에 참예하게 된다.

 

   그 반대 현상도 있다. 건강한 교회에, 자라면서 상처를 많이 입은 성품적으로 건강치 못한 목사가 부임하여 교회를 분열에 휩쌓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테면 자신의 상처에 의해 부한 성도, 세력 있는 성도들만을 가까이 대하며 그들과만 기도원이나 나들이 등을 다닌다거나 혹은 자신에게 협력을 잘 하지 않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성도들은 배척하고 협력을 잘 하고 도움이 되는 성도들에게만 특별대우를 함으로써 성도들을 양분화 시켜버린다. 그리하여 성도 간에 서로를 불신하며 물고 뜯는 일이 시작된다.

 

    그뿐 아니라 목사가 균형 잡힌 바른 신학이나 신앙을 가지지 못한 결과로 주님이 바라시는 성도를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닮은 균형 잡히지 못한 주의 백성을 길러내기도 한다.

 

    이를 테면 목사 자신이 기도를 중요시하는 관계로 기도를 많이 하는 성도들만이 매우 신앙이 좋은 성도인 양 칭찬을 함으로써 또한 자신이 주로 신비한 것만을 추구하는 스타일이라서 신비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신앙의 전부인 양 가르치고 설교함으로써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소홀히 하게 하여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어가지 못하게 한다. 그럼으로써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그 반대로 기도를 잘 하지 않는 목사는 ‘기도만 잘하면 뭐해!’ 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하게 함으로써 역시 성도들을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간다.

 

     이러한 일들이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되는 일이기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모르며 설령 안다고 해도 자신의 부족을 탓하지 않고 상대방만을 탓한다. 가족치료학자 사티어는 자신의 상담경험을 바탕으로 보웬의 다세대전수이론과 똑같은 견해를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한 개인은 성장하면서 경험한 사건을 새로이 만든 가족에서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이런 견해를 피력하고 싶다. “자신이 자란 원가정에서 습득한 성격이나 삶의 방식을 새 가정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으로써 가정이나 교회에서 예수님의 성품, 예수님의 삶의 방식을 닮은 가족이나 성도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품, 자신의 신앙양태를 닮은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한 마디로 건강치 못한 부모 혹은 성도들이 자신도 모르게 자녀들이나 다른 성도들을 심각하게 오염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비교적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는 가정의 아버지 혹은 교회의 목사나 장로, 권사 등의 중직자는 더 더욱 그럴 가능성이 많다.”

 

    요즘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는 몇몇 교회를 보며 보웬과 사티어의 가족치료이론 중 다세대전수이론이 생각나 몇 자 적어보았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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