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 15. 23:15ㆍ좋은 글, 이야기
변화 받는 법(롬12:2)
우리는 이전에 사단의 종으로 죄 가운데 살았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단에게서,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었고,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구원받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마땅합니다. 고후5:17대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완전히 새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벧전4:2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제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를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구원받기 이전에는 정욕의 노예가 되어 죄 가운데 살았다면, 이제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자녀다운 거룩한 생활을 하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자체로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초는 이미 마련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이루어진 변화를 우리의 생활 가운데 실제로 적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은 롬12:2을 통해 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롬12:2에서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이 시간에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변화를 받는 방법으로서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함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럼 마음은 무엇으로 새롭게 해야 할까요? 겔36:26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새 영(靈)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에게 새 영을 주십니다. 먼저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로워진 영의 활동으로 마음이 새로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새롭게 되면 우리의 육신이 새롭게 행동을 하게 되고, 그래서 우리의 생활이 새로워지게 되고, 우리의 다스림을 통해서 우리의 환경까지도 새로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변화의 순서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우리의 영이 새롭게 되고, 우리 영의 역사로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고, 우리 마음의 역사로 우리 육신의 행동이 새로워지고, 우리 육신의 역사로 우리의 환경이 새로워지는 순서입니다. 이러한 순서의 과정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하나님께서 본래 축복하신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스리는, 즉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왕노릇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는 반대의 순서로 살아갑니다. 즉, 환경의 영향을 받아 육신의 행동이 이루어지고, 육신의 영향을 받아 마음이 생기고, 마음의 영향을 받아 영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순서의 과정은 우리가 다스리며 왕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거꾸로 영향을 받고 지배를 당하며 종노릇하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롬8:13에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육신을 지배하지 못하고 거꾸로 육신의 지배를 받게 되면 사망의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으로써 육신을 다스리는 삶을 살아야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풍성히 누리게 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음을 잊지 맙시다. 육신에게 져서 계속 육신의 종노릇이나 하면서 살라고 우리를 구원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워진 영으로 육신을 다스리며 왕노릇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왕노릇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좌우하는 중요한 관건은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대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럼,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새롭게 해야 할까요? 그 기준은 바로 본문 하반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에 순종하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육신을 쳐서 복종시켜 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육신을 다스려 나가려면, 우리의 마음이 육신이나 환경의 지배가 아닌 성령과 성령으로 새롭게 된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환경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변화되어야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고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관계없이 먼저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어야 우리의 환경까지도 변화될 수 있고 우리가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환경의 지배를 받는 종이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왕으로 살아가도록 창조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광야 생활을 통하여 계속해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셨던 삶의 원리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광야의 좋지 않은 환경 조건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광야의 좋지 않은 환경으로 불편을 느끼고 결핍을 느끼는 육신의 정욕에 지배를 받지 않으며, 어떠한 환경 조건 속에서도 오직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지하고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시려고 하셨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우리의 마음이 환경이나 환경적인 불편과 부족함 때문에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육신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그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환경에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두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환경에 있는 한 우리는 환경의 영향으로부터 절대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즉, 합3:17-18과 같은 신앙의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러한 수준의 신앙은 첫째로,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시며 인자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만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전적으로 순종할 때 가능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지 못하고, 도리어 환경을 믿고 의지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한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 내 목표, 내 삶, 내 꿈 등을 하나님께 복종시키지 못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문제입니다.
둘째로 이러한 수준의 신앙은 이 세상과 세상 것에 대해 완전한 포기가 이루어졌을 때, 즉 이 세상과 세상 것에 대하여 나 자신이 십자가에서 완전히 처리되어 죽었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과 삶의 지향점이 이 세상과 세상 것이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고정되어 있을 때 가능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간 금식하시며 받으신 시험은 그 비결을 가르쳐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반드시 극복하고 결단해야 세 가지를 가르쳐 주십니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떡, 즉 육적인 필요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 즉 영적인 필요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육적인 필요가 채워지지 않는다고 해서 죽을까봐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떡을 먹어 육신이 살았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못해 영혼이 죽었다면, 그 사람은 살았어도 산 것이 아닙니다. 비록 떡을 먹지 못해 육신이 죽는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영혼이 살았다면, 그 사람은 죽었어도 산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마음에서 떡을 추구하며 떡이 부족할까봐 걱정 근심하며 매달리는 집착을 끊어내 버립시다. 떡을 포기하고 말씀을 추구하십시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위급한 환경 조건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과연 우리를 건져주실까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마음은 환경 조건의 변화에 따라 요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환경 조건의 변화에 따른 근심 걱정 자체를 내려놓으십시오. 환경 조건에 대해 포기하십시오. 우리가 환경 조건을 초월하시며 주관하시는 하나님만 굳게 붙드는 신앙이 되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단을 경배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만 섬기며 경배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권력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굴복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됩니다. 즉,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권력에 대해 완전한 포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권력을 완전히 포기하지 아니하고 미련을 갖고 있는 한 언제든지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권력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것을 섬기며 경배하게 될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래서 수시로 우상 숭배의 죄에 빠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이 아래 땅의 것이 아닌 저 위 하늘의 것을 추구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기억합시다. 이 아래 땅에 보물을 쌓지 말고 저 위 하늘에 보물을 쌓아야 하는 사람들임을 기억합시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권력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시면 얼마든지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고 추구해야 할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다운 변화된 삶을 살아가려면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하는데, 한 마디로 우리의 마음이 이 세상과 세상 것들이 아닌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고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세상에 대하여는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이 세상과 이 세상의 것들은 다 내어버리고,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려는 마음이 될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이러한 마음의 변화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과 세상 것들에 대한 관심과 그것들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다운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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