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6. 19:54ㆍ좋은 글, 이야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오래전에 김추자씨의 늦기 전에 늦기 전에라는 대중가요가 온천지를 진동시킬 만큼 대 힛트된 적이 있습니다.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휘날리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의 겨울이, 누구에게든지 또한, 연령에 관계없이, 갑자기 닥칠 수 있습니다. 10대 어린이가 불치의 병으로 몸이 굳어져 갑니다. 30대의 한창 나이의 젊은이가, 가정을 꾸미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 시한부 암 선고를 받기도 합니다.
먹고 싶고, 쓰고 싶은 것 쓰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어느 정도 사업에 성공을 이룬 40대 사업가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서,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좀 더 건강할 때, 돈이 있을 때 더 열심히 봉사하고 후회 없는 신앙생활을 해야 됩니다. 사실, 우리가 70을 살고, 80을 살고, 90살아도, 정말 의미 있게 살 수 있는 세월은 그렇게 길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긴 세월이 주어질 것이라고 착각을 하고 삽니다.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신앙을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겨울이 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 것도, 언제나 기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인생행로는 일방통행이기에, 한번 지나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봉사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에, 더욱 좋은 일을 많이 하시기를 부탁합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일생이 70이고, 혹시 힘이 남아 더 살아 봤자 80인데, 그저 고통과 슬픔의 연속이며 그것도 금세 지나가니 우리가 멀리 날아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전도서 3장 1절에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하늘 아래 모든 일에는 목적에 따라 때가 있으니라. 고 했습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사랑봉사단' 사무실. 66㎡(20평)쯤 되는 공간 정면에 '주는 것은 사랑(愛)이고 받는 것은 복(福)이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고, 다른 쪽 벽에는 자원봉사 때 찍은 사진 100여장이 붙어 있습니다.
오전 11시쯤 불편한 걸음걸이에 키가 150㎝ 남짓인 이갑천(59)씨가 들어오자, 의자에 앉아 있던 이성기(63)씨가 다리를 쩔뚝거리며 다가가 가운을 둘러줍니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위질을 하던 이씨는 갑천씨의 머리를 한참 더 살피더니 "공짜라고 대충 자를 수는 없지" 하며 머리카락 끝을 조금 더 다듬습니다.
34년간 노인과 장애인을 위해 무료 이발 봉사를 해온 이씨는 전주 일대에서 유명한 '가위손'이다. 이씨는 "34년 동안 이발한 게 어림잡아 20만번이니, 머리를 맡긴 사람은 1만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며 그간 봉사활동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습니다.
이씨가 봉사를 시작한 것은 그가 다니던 성당의 신부가 "가진 것을 나눠보지 않겠나"고 제의한 1978년이다. 초등학교 졸업 후 구두닦이·넝마주이·잡상인 등 온갖 일을 하며 이발 기34년 이발봉사 해온 전주의 '외발 가위손' 전주자림원에서 봉사를 시작, 선덕보육원과 사랑의 집 등으로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그러던 1981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다리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골수염 진단을 받고 왼쪽 무릎 아래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의족을 차고 익숙해지기까지 3개월 동안 이씨는 다리를 잃은 슬픔에 봉사도 관둘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TV에서 우연히 외발 이발사가 등장하는 영화 '장마루촌의 이발사'를 보게 됐고, 멀쩡한 두 손으로 봉사하는 게 '사명'이라 여기고 끝까지 하겠다. 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IMF 사태'로 운영하던 이발소를 정리한 1998년까지 밤과 주말에 장애인·노인 복지시설 10여곳을 돌며 봉사를 계속했습니다. 2005년엔 아예 150여명으로 구성된 '한사랑봉사단'이란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친분이 있던 이·미용사들과 이발 기술을 배워 보탬이 되겠다는 주부, 식당주인, 공무원 등 300여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이들은 지금까지 43만여회 머리를 깎았습니다. 매일 오전 조를 나눠 요양병원, 장애인 시설, 군부대 등 20여곳을 방문하고, 오후에는 사무실로 찾아오는 사람들 머리를 깎아줍니다. 사무실은 전주시가 매년 보조해주는 200만원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늘 빠듯해, 이씨가 매월 사비 20여만원을 보탠다. 고 합니다.
기초수급비와 장애수당 등 45만원이 월수입의 전부인 이씨가 임대아파트 임차료 15만원과, 불편한 다리 때문에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 기름 값 등을 대고 남기는 돈입니다."돈 욕심은 전혀 없다"는 이씨도 한 가지 고민은 있습니다. 전주한옥마을 복원 때문에 한사랑봉사단이 쓰고 있는 사무실이 오는 8월 철거될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조그만 공간만 마련된다면 덜 먹고 덜 써서 봉사활동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슈바이처가 운영하는 아프리카 랑바레네병원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미모의 간호사 마리안 프레밍거는 헝가리 귀족의 딸로, 한때 재색을 겸비한 최고의 미인으로 추앙받았고, 비엔나에서 가장 유명한 연극배우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날 슈바이처의 찬송가 연주를 듣고 “지금까지 내 인생은 허상일 뿐이었다. 남을 위한 삶에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결심하고 아프리카행을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20년 동안 슈바이처가 운영하는 병원에서 흑인 병자들을 위해 사랑을 베풀다가 죽었는데 그녀가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은 “남을 위한 삶이 이렇게 행복한 것을…”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어느 교회의 장로님이 암이 걸려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입원 기간이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 육 개월쯤 지나자 “목사님, 한 번 만이라도 교회 나가서 예배드리고 싶어요.”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상태가 안 좋아 교회에 오시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나도 어느 순간에는 “나, 한 번만 교회 나가보고 죽으면 한이 없겠습니다.” 그런 소원을 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돈 벌 때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나이 먹어서는 두 배 세 배 힘만 들고 돈도 잘 모으지 못합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처럼만 생각하고 미루지 마십시오. 눈이 어둡고 다리 아프고 병들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에, 주님을 위해 봉사하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본분은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워하고 상처 입은 한 사람이라도 더 치유해 주려고 막 땀 흘리면서 살아야합니다. 그저 사람은 기쁘게 살면서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잠언서 3장 12절> 고 잠언기자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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