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17. 15:19ㆍ좋은 글, 이야기
탐심을 갖고 십자가를 지지
말라.
많은 분들이 십자가를 진다고 한다. 자기 남편 때문에 자기 아내 때문에 아니면 자신의 자녀가 불구나 장애인으로 십자가를 진다고 한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볼 때는 십자가를 지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 내는 분들이 있다. 또한 너무나 처절해서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몇 개월 전 심방을 요청해서 간 집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있었다. 태어나면서 가진 희귀질병으로 인해 누워서 대소변, 목에 가래를 제거하는 호스와 산소를 연결하면서 연명해 가는 모습에 함께 간 분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무슨 말로 위로해야 될지 모를 정도로 거실에 혼자 뉘어 놓고 지켜보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9년 동안 그 아들을 위해 잠시 한순간도 쉴 수 없을 만큼 손이 가야 했고 아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직장도 가까운 곳을 택해야 했다. 그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부모를 비롯하여 할머니, 할아버지가 동원되고 친인척들이 불교 삼천 배를 세 번이나 감행했으며 백방으로 뛰어 다녔다. 유명한 의사들과 능력을 행하는 은사자들에게까지 찾아갔다.
그런 와중에 예수를 알게 되고 영접하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견뎌왔다. 그리고 목사님들과 기도의 능력자들이 찾아와서 끊임없이 기도해 왔다. 그러나 별 차도가 없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런 가운데 그 부모는 또 다른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아들을 놔두고 잠시 한 눈을 팔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 흔한 외식 한 번 하지 못하고 나들이는 꿈도 꾸지 못한 채 모든 인생을 아들에게 전념하게 되어 버렸다.
필자가 시편 26편의 말씀을 증거할 때 이제 아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 하나님께서 이 가정에 구원의 표징으로 아들을 보내주신 것으로 여기고 부모가 이로 인해 주님을 영접했으니 놔 줘야 한다고 설교했더니 아버지가 언짢게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며 여겼다. 이런 설교를 했던 필자는 그 부모보다 얼마나 놀랬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설교를 할 때 아들의 엄마는 설교 중간에 비스듬히 무릎을 꿇었다가 바른 자세 무릎을 꿇고 말씀을 경청했다. 아들의 아버지는 그 아들을 다시 살리고 싶은 마음을 놓치지 않고 싶어 했다. 그러나 엄마는 아들을 포기하는 마음이 아니라 주님께서 데려가신다고 하는 음성을 제대로 듣고 반응을 보인 것이다.
어느 누가 아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기 않겠는가? 그러나 아들을 향한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탐심을 갖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아니 보여주신 것이다. 아들을 고쳐보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우상단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늘날 자녀를 주신 하나님을 향해 감사하면서 올바르게 키워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얼마나 우상단지를 만들고 있는지, 자녀를 향한 마음이 주님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키워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바램으로 양육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탐심이다. 탐심은 우상숭배라고 사도 바울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골 3:5) 그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함에도 불구하고(갈 5:24) 탐심의 탈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형국이 되었다.
오늘날 목회를 하거나 신앙생활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십자가로 여기며 사명으로 삼고 나아가는 가운데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겠지만 점점 지고 가면서 내가 십자가를 얼마나 잘 지고 가는데 주님께서 알아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내면에 마치 뱀이 옹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미처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다. 이것이 숨어 있는 탐심이다.
어느 인천시 모 교회에서 중견 신사가 찾아왔다. 사업이 어려워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했더니 은사가 있다고 하는 권사와 장로가 어느 기간 동안 서원기도를 하면 응답이 온다고 하면서 서원기도를 권유했다. 자신의 교회 성도들도 이 방법을 택해서 실행했더니 서원 기도한 대로 놀라운 응답을 받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서원기도를 한지 몇 주 정도 지난 가운데 권사가 그 신사에게 자신의 교회에 와서 섬기고 십일조도 바치면 서원기도의 응답이 제대로 된다고 권유했다. 이에 따른 신사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필자에게 문의한 그 신사는 마음이 찹찹하여 실망의 모습이 역역했었다. 한국 교회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장면이라고 위로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리 성경에 있는 방법을 취했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상식의 선을 넘으면 문제가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 있다. 왜 교회를 옮겨야 하며 십일조를 반드시 그 교회에다 바쳐야만 서원기도가 응답이 되는지 분명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탐심이라고 지적하게 된다.
일부 은사자들이 이런 언행으로 인해 한국교회 안에서 많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이로 인해 사이비와 이단으로 몰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이 교회 세우기 위해서 집을 내놓고 고난과 어려움을 간증인지 자랑인지 몰라도 거품을 품으며 말한다. 십자가 뒤에 아니면 주님 뒤에 자신을 숨겨야 하는데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세습을 반대하며 외침으로 인해 주변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목사는 아들의 유학을 위해 교회 비자금을 사용했으며 장성한 아들이 운영하는 선교사역을 위해 수백억을 지원한 바가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그 아들이 세습을 했던 모 교회 목사님에게 사과를 하면서 저희 아버지를 이해해 주십시오 라는 말을 한 것이 입으로 전달되어져 있다. 이것은 세습보다 더 위선적이며 왜곡적인 탐심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앙생활을 얼마나 했느냐는 계급장과 교회의 직분을 벼슬로 여기고 있다. 성경을 읽은 회수, 각종 수료증, 트로피, 선교여행 사진 등등이 다 자랑거리가 모두 탐심에 나오고 있다. 대전에 어느 목사는 자신이 교회건축을 한 뒤에 안식도 할 겸 몇 개월을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깊은 기도 속에 자신이 걸어온 길이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자랑의 길이였으며 자신의 성공에 도달하는 길인 것을 깨달았다. 돌아와서 자신이 받았던 감사패 공로패, 축하패 등, 자신을 위해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을 다 모아서 다 때려 부수어 땅 속에 깊이 파묻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뒤에 목회를 졸업하고 평신도로 돌아갔다.
얼마 전 치과에서 일어난 일이다. 과거에도 치아를 치료한 뒤 관리를 잘못한 상태로 와서 싸구려로 해줬다고 친척들을 데리고 와서 원장을 비롯하여 병원 관계자에게 항의하고 변상을 받아갔다. 변상비를 받아서 다른 치과에 가서 치료한 뒤 AS를 해달라고 왔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병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날도 어느 권사가 와서 자신의 틀니와 다른 사람의 틀니가 왜 다르냐? 하면서 따지며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왜 이 모양으로 만들어 났느냐? 하며 항의했다. 권사님께서 치아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균 번식과 함께 치아가 망가지게 되었다고 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신의 입장만 고수했다.
원장은 답답해서 그러면 그렇게 다른 사람을 데리고 오시면 왜 다른지 알려주겠다고 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권사가 잘못을 시인했다. 이 병원에 90%이상이 크리스천이라고 자처하는 분들이 온다. 다 그렇지 않지만 일부 가운데 치료가 거의 다 되어갈 시점에 꼬투리를 잡아 잘못되었다느니 변상하라는 식으로 협박을 해서 공짜로 한다.
뿐만 아니라 치료비를 내지 않으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꽁무니를 뺀다. 왜 다른 사람은 싸게 해주면서 왜 나는 이렇게 비싸게 받느냐? 하는 식으로 얼마나 까다로운지 병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선 기업 단체로 착각하고 있다. 이 모두가 탐심을 갖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들이다.
목사고 선교사이니까 공짜로 해줘야 하고 싸게 해줘야 되는 대접받고 싶어 하는 것은 누구나 갖고 있다. 교회 직분자이니까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식으로 한다면 살아남을 기독교인 기업과 병원은 망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식 없는 일들이 현재 우리 주변에서 늘상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기업이나 병원 그리고 기타 장사하는 분들이 예수 믿는다는 핑계로 주께 하듯 하면서 섬기고 가격을 낮추어 대접함에도 불구하고 악 이용하며 등쳐먹는 목회자나 직분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것이다. 그런 인간들은 인간이기를 거부하며 예수 믿는다는 탈을 쓰고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는 사기를 치는 행위다.
섬기는 자세로 임하는 곳에 섬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섬김을 악 이용해서 자신의 탐심을 채워나가고 있다. 하나님께 받은 직분이 마치 하늘에 준 계급장으로 착각하지 마라. 그것을 들먹여 대접을 받았다면 죄송하지만 하늘나라에서 받아야 할 것을 이 땅에서 다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그런 미안하고 죄송한 짓을 많이 했는지 빚을 지고 있는 분에게 부탁해서 제게 필요한 것을 공급받은 일들이 있었다. 얼마나 송구스러웠는지 탐심의 탈을 쓰고 얼마나 부끄러운 짓을 많이 했는지 통회자복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치 불에 달구어진 숯불을 내 머리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았다.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탐심의 탈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다니는 모습이 한국 교회 안에서 얼마나 자행되고 있는지 사순절을 지나고 부활절이 되었지만 아직도 하나님과 교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심을 채워나가고 있으면서 사순절 새벽기도에 나가고 부활절 행사와 더불어 계란을 먹고 있다.
이것이 과연 절기를 지켰다고 보는가? 고난주간에 하루 금식이나 금요일에 온종일 금식하면서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고 방치하고 있다. 탐심의 굴레에 있었던 내가 죽어서 다시 태어난 것이 부활절인데 그날을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며 찬양해야 되는데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업보를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사명이니 소명이니 하면서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자랑하지 마라.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선지자 행세를 하고 있다면 탐심의 탈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형국임을 개달아야 한다. 무시무시한 고난을 겪는다고 십자가를 지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라.
말씀을 정확하고 철저하게 지키기 위해서 주님과 함께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또 들어야 한다. 탐심의 탈을 벗겨질 때까지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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