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1. 14:32ㆍ좋은 글, 이야기
존재를 바꾸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존재를 바꾸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거듭난 사람이 변화되고 점점 주님을 닮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10년, 30년, 50년 신앙생활을 하고 제자훈련이란 교회교육 시스템으로 성경공부를 하여도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와 목회자들의 고민이며 하소연입니다. 왜, 목회자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이 변하지 않을까요? 바꾸어지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꾸어진다면 어떠한 방법으로 가능할까요?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생명을 얻게 하는데(요20:31, 요일5:13)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하여 주님이 오셨습니다.(요10:10) 그분이 오심으로써 믿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린(요3:15-16, 딤전6:12)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 새 생명을 받으면 바꾸어지고 행하여지는데(롬6:4), 왜 인간의 생명이 바뀌지 않을까요? 어떻게 해야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존재를 바꿀 수 있습니까? 이것을 살펴보기 위해서 우선 생명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생명은 수천 년이 가도 같은 생명으로 계승됩니다. 소나무라는 식물은 태초에도 소나무였으면 수천 년이 지나도 평생 소나무입니다. 곤충이나 동물, 인간의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존재가 바꾸어질까요? 인간에게는 세 가지 생명의 속성이 있습니다. 짐승의 생명, 인간의 생명,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첫째, 짐승의 생명은 짐승의 속성을 닮은 것입니다. 인간이 마귀에 의하여 양심에 화인을 맞으면 인간의 생명인 이해타산적인 관계가 끊어지면서 사람에게서 짐승 같은 행동이 나타나게(시49:20) 됩니다. 그러한 사람에게는 보통 짐승의 이름을 붙여서 별명을 지어 줍니다. “그는 늑대같은 사람이야.”처럼 여우, 원숭이, 호랑이, 족제비, 벌레, 미꾸라지, 개 등등으로 표현합니다.
성경에도 보면 “개들을 삼가고”(빌3:2), “들의 짐승들아”(사56:9), “벙어리 개(사 56:10)” “이성 없는 짐승과 같아서”(벧후2:12),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사41:14), “개들과”(계22:15), “독사의 자식들아”(마3:7),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시49:2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인간 이하의 행동을 하면 ‘개만도 못하다’고 합니다.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사람이 사람답지 못할 때 사람을 짐승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인간의 속성을 벗어나서 화인을 맞아 양심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짐승은 아무리 사람같이 살려고 흉내를 내고 노력을 하여도 사람같이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돌고래가 사람의 흉내를 내고, 원숭이나 침팬지가 사람과 비슷하여도 인간처럼 윤리와 도덕적으로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짐승은 영원히 짐승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둘째, 인간의 생명은 본질적으로 이해타산(利害打算)적으로 손익계산을 통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인간 역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습니다.“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눅6:32~34)
인간의 생명은 육신적이기에 이해타산적으로 삽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서도 칭찬받기를 바라고 행하는 것입니다. 죄인들뿐만 아니라 인간은 모두 다(눅6:32~34) 그렇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을 믿는 자가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인간의 속성을 모르면 사람 때문에 공동체에서 상처를 입고 실망하고 인간관계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사람은 이해관계를 철저히 따져서 관계를 유지하고 동맹관계를 맺고 무역을 하고 정치를 하고 서로 통합도 맺어갑니다. 역사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에 따라 기술과 문화는 다르지만 인간의 속성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언제나 똑같습니다. 인간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손익을 계산하는 이해타산적인 생명입니다. 인간의 속성을 제대로 알면 사람 때문에 실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조금 더 배우고 신분이 조금 더 높은 사람은 인간의 생명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율법을 통해서 참고 억누르고 자제할 뿐입니다. 하지만 극한 상황에 봉착하면 결국 손익 계산을 따지고, 이권과 연관성이 있으면 곧바로 인간의 죄성이 폭발합니다. 이해관계가 맞지 않으면 관계를 끊고 그런 일이 쌓이다 보면 결국 쌓았던 바벨탑은 무너지고 맙니다. 그래서 공산주의가 저절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로 이해타산적인 인간의 특성을 가진 자본주의는 아직까지 건재하며 인간의 교만을 자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세계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모른 채 사람을 믿다가 사람 때문에 실족하고 시험에 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가 선지자를 통해서 네 이웃과 친구를 믿지 말며 네 품에 누운 여인이라도 믿지 말라고(미7:5) 했습니다. 인간은 이해관계가 맞지 않고 유익이 되지 않으면 결국 배반하고 결국 그 언약을 깨기도 합니다. 인간은 믿음의 대상자가 아니요 사랑의 대상자입니다. 믿음의 대상자는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일지라도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거하지 않는 신앙인은 종의 신앙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종처럼 결국 배반하는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내적 성령을 받기 이전에는 주님을 부인하고 하늘의 루시엘 천사도 하나님을 반역한 것처럼, 오늘날 역시도 하나님의 생명을 받기 전에는 제자훈련을 하여도 배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신앙의 현주소요, 정치인의 모습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모르면 믿는 자들도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상처를 많이 받고 좌절하고 불신하고 삽니다. 이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기에 어쩌면 당연합니다. 성경에서는 다른복음을 좇는 것을 이상히(갈1:6) 여긴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상히 여겨야 할 것은 인간의 생명이 아니라 다른복음을 받아서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존재를 바꾸어야 합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생명의 속성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생명의 전이는 접붙임을 통해서 같은 종류끼리만 전이가 됩니다. 예를 들면 찔레에 장미를 접붙이면 찔레에서 아름다운 장미꽃이 핍니다. 찔레와 장미가 모두 같은 장미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또 감나무과에 속하는 고욤나무에 단감을 접붙이면 단감이 열립니다. 같은 종류에 속했기 때문에 생명이 분배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할 때 모든 생물들은 그 종류대로 창조했다(창1:21)고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어떻게 전이되게 됩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사람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단7:9, 겔1:26-28, 왕상22:19-20, 출33:20-23, 롬8:3, 계1:13-16)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과 모양이 같고 같은 종류에 속했다는 증명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같은 종류인 사람의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없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분배받아(요일5:12) 접목이 될 수 있으며, 존재의 본질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그걸 위해 예수님이 오셔서 온전해질 수 없는 법인 율법을 폐하시고(히10:1, 히10:9) 온전해지는 상위법인 생명의 성령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제 믿는 자가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면 주님이 내 안에 거하여 생명이 되고 온전해져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존재가 바꾸어지려면 구원받은 내 영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여 하나가 됨으로써 한 영이 되는 것입니다.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6:17)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합하여 한 영이 되면 내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나와서 사랑할 수가 없는 원수를 사랑하게 되고 은혜를 모르 자와 악한 자에게 도 선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헤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6:35)
셋째, 하나님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인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면 이상의 말씀이 실제되고 내 삶의 내용이 되어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주님의 마음으로 손익계산 없이 사랑하고 선대하며 자비를 베푸는(눅6:35)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거하면(갈2:20) 존재가 바뀌어서 이해타산적으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인 주님의 마음을 갖는 것(고전2:16)입니다.예수님께서 첫 번째 행하신 기적은 바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 항아리 6개에 물을 채우라고 지시(요2:6)하셨습니다. 그 의미는 엿새 동안 세상의 혼탁한 삶의 물에 있다가 다시 칠일째 부활생명이 시작되는 주일에 주님이 주신 포도주를 내 속에 채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는 기적의 변화는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화학적 변화입니다. 즉 본질적 변화를 말합니다. 내 육신의 삶이 죽고 부활생명을 받아서 주님이 내 안에 거하여야 본질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존재의 변화입니다. 본질의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즉, 돌 항아리가 채워지기 전에는 사람은 이해타산적 존재로서 손익계산을 하면서 돈이나 혈육으로 그 생명을 유지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무엇보다도 물질이나 혈육을 중요시합니다. 인간의 족보는 인간의 육신의 피, 혈육으로 이어져가는 족보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세계 즉, 믿음의 족보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이어가는 생명의 족보(마1장)입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며 존재를 바꾸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존재를 바꾸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그 일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셨고, 그 부활생명이신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거하시면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생명(영생)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바꾸는 기독교 운동만이 교회의 소망이며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산 길입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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