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3. 23:29ㆍ좋은 글, 이야기
길을 찾다
누구나 한 번쯤은 길을 잃어버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가끔 TV에서 어렸을 때 엄마와 함께 혹은 누나와 함께 밖에 나갔다가 손을 놓쳐 길을 잃어버리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울고 있는 아이를 보여준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른다.
나는 길치라서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은 내가 동쪽 얘기를 하면서 반대쪽인 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며 나더러 방향치라고 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내가 전주의 고등학교에 가게 되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전주〇〇여고인데 당시에 그 학교는 오래된 건물로 교실이 복식구조로 되어 있었다. 가운데 복도를 두고 양쪽에 교실이 반대 방향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복도는 항상 어두침침하였다. 아마도 전기를 절약한다고 복도에 불을 환하게 밝혀 놓지 않았던 모양이다. 나는 입학한 지 몇 달이 지나도록 쉬는 시간에 홀로 화장실 가는 것을 꺼렸다. 주위를 살펴 우리 반에 누군가 화장실을 가는 아이가 있으면 뒤를 따라 가곤했다. 촌놈이 혼자서 화장실을 갔다가 10분 내에 교실을 못 찾아 헤매어 다음 시간에 늦을까봐서 였다.
시험이 끝난 날 오후에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지만 그때에는 영화관을 혼자 찾아간다는 것은 몹시 두려운 일이었다. 혹은 영화를 보고 나서 하숙집을 못 찾아 헤맬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리하여 친구와 동행해야만 영화관에 가곤 했다. 지금도 나는 처음 가는 길을 자동차를 몰고 가려면 머뭇거린다. 아예 기차나 버스를 타고 간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노라면 참담한 경험이 있다. 정읍의 어느 중학교에 근무할 때 일이다. 가을 소풍을 내장산으로 갔다. 내장산 경내의 어느 곳에서 모이기로 했다. 아이들은 각기 버스나 부모님의 차로 가고 교사는 자기 차로 갔다. 나도 내 차로 내장산에 갔다. 가을이라서 그 유명한 내장산 단풍을 구경하러 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입구에 들어서서 서서히 가면서 주차할 곳을 찾았다.
입구 쪽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중간쯤에 겨우 빈자리를 하나 찾아서 주차를 하고 걸어서 약속한 장소까지 걸어갔다. 소풍을 마치고 아이들을 종례해서 귀가시킨 후 나는 내 차를 주차한 곳을 찾으며 걸어갔다. 공터마다 차가 빽빽이 주차되어 있는데 모두가 비슷비슷하여 내 차를 주차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세 시간이 넘도록 소풍지에서부터 입구까지 여러 번을 왕래했다. 나중에는 내가 정말로 길맹이구나 싶어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지쳐 포기할 즈음에서야 차들이 많이 빠져나간 후 겨우 내 차를 찾아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이들은 가끔 인생을 살면서 길을 잃고 헤매며 머릿속이 하얘지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이며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찾을 수 없는 때가 있을 것이다. 나는 길치라서 가끔 길을 잃고 헤맨 경험이 많지만 감사하게도 인생의 길은 일찌감치 찾아 바르게 걸어가고 있음에 안도한다.
인간은 범죄함으로 길을 잃어버린 이후로 끊임없이 길을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도를 닦는다’라고 하는데 그 도가 바로 길(道)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바른 길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철학과 사상, 종교가 생겨났다. 그러나 사람이 스스로 찾은 길은 그 어느 것도 완전하지 못하다. 영혼이, 마음이 어두워진 사람은 바른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바른 길을 마련해주셨다. 그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이를 수 있는 천국에 이르는 길이다. 사실, 인생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향하여 가는 길의 여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C.C.C.(한국대학생선교회)에서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를 가끔 나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예화로 써먹는다.
미국의 C.C.C. 대표 간사 중 하나인 빌 브라이트(오래 전에 들은 것이라 이름이 정확한지 모르겠다)는 하버드대학 캠퍼스에 가서 학생들에게 전도를 하곤 했다. 그가 종종 사용하는 전도 방법은 “NEXT"라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하버드대 학생들은 항상 바삐 종종걸음으로 달려가곤 했다. 어느 날도 캠퍼스 벤치에 앉아 있던 그는 두꺼운 책들을 한 아름 안고 바쁘게 달려가는 학생 한 명을 불러 세웠다.
”학생, 어딜 그리 바삐 가시오?“
”지금 강의에 늦어 바쁩니다.“
“아무리 그렇기로서니 나하고 잠간만 얘기를 나눕시다. 어차피 늦은 거 당신에게 물어볼 아주 중요한 질문이 있다오.”
바쁘다는 학생이 웬일인지 걸음을 멈추고 그의 곁에 앉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무엇을 하려오?”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야지요.”
“좋은 직장에 취직한 다음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다음에는 집을 사고 자동차도 사고, 그 다음에는 가족들과 여행을 다니면서 즐겁게 살아야지요.”
“그 다음에는요?”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손자손녀들이 자라는 것을 보고, 은퇴하여 한적한 시골로 가서 아내와 함께 여생을 편안하게 보내게 되겠지요.”
“ 그 다음에는요?”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죽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당신이 지금 바삐 달려가고 있는 것은 종국적으로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아무 말이 없이 골똘히 생각에 잠긴 그에게 빌 브라이트는 길을 잃은 인간의 모습과 그 길을 찾아주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설명해주었다.
가끔 전도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아무런 대비 없이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지금은 아직 오지 않은 인생의 끝이 자기에게는 마치 찾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리라.
하나님이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으므로 육은 죽어 그 본래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함을 알고 사는 자는 복이 있는 자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갈 수 있음을 하나님은 성경에서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길을 한사코 마다하고 자기 스스로 길을 찾아보겠다고 온 인생을 허비한다.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고 말씀하셨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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