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9. 25. 11:12ㆍ좋은 글, 이야기
백도 천송 만경(百禱 千頌 萬經)
백번 기도하려면 천 번 찬송하고 천 번 찬송하려면 만 번 성경을 읽어야 한다.신앙인이라면 무엇을 제일 자주 많이 해야 합니까?라고 질문 하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시간을 재어서 기도하라고 한다. 최소한 30분 이상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고 어느 목사님은 목회를 하려면 최소한 3시간 이상 기도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신다. 그리고 어느 기도원은 8시간 이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교회는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기도부터 가르친다.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있다고 하면서 기도를 조리 있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그러나 공식 예배석상에서 아직도 원고를 들고 나와서 읽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틀리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와 함부로 기도하지 않으려고 하는 자세는 기특하다. 죄송하지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기도인지 아닌지 성경에서 발견해야 한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께 아뢰어 간청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나머지 한국교회 성도들은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떼쓰는 것부터 배우고 있는 것이다. 마치 백화점에서 장난감을 사주지 않는다고 해서 아예 드러누워 대성통곡을 하는 아이들처럼 그런 식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먹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기도를 하기에 앞서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기도하고 있는지 분간하지 않고 얼음에 박 밀듯이 청산유수처럼 입에서 줄줄 나오는 것이 기도를 잘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것은 엄연히 따지고 본다면 기도가 아니다. 이방종교에서 불경을 외우거나 무당들이 주문을 하는 모양새를 갖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고려해 봐야 할 것이다.
무엇이 기도인지 거론한다면 몇날 며칠 동안 얘기를 해도 다 할 수 없는 것이 기도다. 젖먹이 아이들이 젖을 달라고 떼를 서야 하는 시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은 연합하기만 되는 것이 아니다. 연합의 근본원리는 성장, 자라나야만 한다. 자라지 않고 연합했다는 것은 연합의 정신과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기도를 올바르게 하려면 찬송을 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찬송을 하게 되면 자신이 좋아하는 곡,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을 선호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찬송은 무엇일까? 잘못 불러도 좋다. 음정박자가 틀려도 괜찮다.
내 안에 하나님과 함께 연합되고 동행하기를 원하는 순종과 지배하심 아래 하나님의 통치를 원하는 자세로 찬양을 해야 한다. 가사가 좋아서 가락이 좋아서 부른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찬양이 아니다. 물론 찬양은 음악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음정이나 박자, 그리고 의미전달을 위해서 음악적 요소가 반드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찬양이란 단어를 분석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호흡하고 호흡해서 그 말씀을 익혀나가면서 삶 속에 적용해 나감으로 생명이 바뀌며 영원히 살쪄 가겠다고 하는 다짐이요, 결단인 것이다. 이것이 아멘이요, 할렐루야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면 함부로 아멘, 할렐루야를 외쳐서는 안 된다.
따라서“계시로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주님과 함께 호흡하면서 배우고 익혀나감에 따라 말씀을 내 삶 속에 적용하여 생명이 바뀔 만큼 명백해졌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자랑하고 과시하게 되었으니 너무나 기쁘고 감사하여 노래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겠습니다.”라는 의미를 갖고 찬양에 임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도나 찬양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바뀐 자만이 하는 기도요, 찬양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만 다니면 새로운 존재로 바뀐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착각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자유며 커트라인이 없다. 예수 믿는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연예인이 예수를 믿고 유명인이 예수를 믿는다고 할지라도 대단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 그들이 과연 예수님과 하나님과 연합된 한 몸이 되어 있느냐? 그리고 생명을 받아 성장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신앙의 관건이다. 그런데 교회 좀 다닌다고 하늘의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교회는 어떤 누구도 다닐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내가 한 몸이 되어 교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허수아비가 교회 다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거 외할머니와 함께 교회를 가는데 교회 입구에서 어느 분이 교회로 들어가는 분들에게 핀잔을 주고 욕을 하면서 그렇게 예수 믿어서 택도 없다는 말을 서슴지 않게 하는 것을 봤다.
그런데 갓난아기나 어린아이를 데리고 들어가는 부모 앞에서 아이를 향하여 살살 손을 빌면서 굽실굽실 인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외할머니가 하시는 말씀이“진짜 성도와 가짜 성도를 구분하고 있네”하면서 들어가셨다. 어린 나로서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신앙을 갖고 한참 후에야 그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어느 교회에서 장로님이 나오시더니 저는 이 교회에 다니는 장로이지만 교회학교에 다니는 유치원생의 발가락에 때만큼 여길 수 없다고 고백을 했다. 그런데 그 교회 목사는 그 내용을 다 듣고 하시는 말씀이 이제부터 장로님을 유치원생의 발가락에 때만큼도 여겨서는 안 된다고 공식선포를 했다. 그런 후에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너무나 다른 모습으로 헌신과 봉사를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찬송이요, 기도의 표본이다. 기도하면 할수록 영력이 쌓아지는 것으로 아니며 불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공덕을 쌓는 줄로 착각한다. 주님과 연합되어지면 기도하게 되어있으며 찬송하게 되어 있다. 새벽기도에 나오라고 독려하고 권면하고 있는데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바뀌지 않았는데 나오라고 해서 나와지는 것이 아니다.
왜 새벽기도를 해야 되는지 모르면서 새벽기도를 하지 마라. 저녁에서 아침의 사이 경계선을 의미하는 새벽도 되지만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은 존재가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결단을 위해서 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새벽이란 단어와 면류관이란 단어는 서로 동의어로서 새벽기도를 하는 것은 면류관을 씌워주는 시간이다.
옛 사람에 새 사람에 교환되어졌다는 의미에서 씌워주는 것을 의미한다면 새벽기도를 나오라 마라해서 안 된다. 필자가 어느 교회에서 이 내용을 전했더니 그 다음 날에 새벽에 거의 다 참석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이와 같이 의미를 모르고 하는 행위는 하나님께서 용납도 하지 않겠지만 거기에 대해 전혀 모르신다고 할 것이다.
적어도 백번을 기도하려고 한다면 천 번 이상 찬송도 해야 하지만 만 번 이상 성경을 읽어야 한다. 그래야만 중언부언의 기도를 하지 않는다. 기도의 내용을 들어보면 쓸데 없는 소리가 너무나 많다. 하나님을 설득하지를 않나? 공갈협박에다 심지어 가르치기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실소를 하고 계실까?
성경도 잘못 읽게 하고 있다. 글자만 알면 성경을 읽는 것으로 만들어놨으니 그 성경을 대하여 교인들이 무엇을 동원하여 성경을 읽고 있는가?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성경을 읽어대니 이해하기는커녕 오해를 하며 읽는 것이다. 자신의 기준과 판단으로 성경을 읽는다면 그것은 성경으로서의 가치를 이끌어낼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기에 그 내용을 알려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계시한 하나님과 계시의 주체이신 예수님과 한 몸과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사상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계시를 깨닫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오랜 시간 동안 기도에 몰입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으로 계시의 내용이 열려지는 것이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열려지는 것이 아니다. 계시의 기본원리와 본질과 원형을 모르는 채 성경을 읽어나가기 때문에 이해가 안 되며 이상한 해석이 나와서 이단, 삼단들이 속출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을 만 번을 읽은 분도 예수님께서 몇 년 몇 월 며칠에 온다고 장담했으니 말이다.
속독법을 동원하여 만 번을 읽어도 죄송하지만 헛소리만 하게 되어 있다. 숫자를 채우려고 하지마라. 성경책의 종이만 넘겨서 성경책이 너덜너덜해졌다고 해서 많이 읽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읽어도 괜찮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만 번 이상의 묵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배와 통치하심 속에서 말씀을 읽혀져야 한다.
만 번을 읽어라는 의미는 만 번을 채우면서 읽으라는 뜻이 아니다. 깨달을 때까지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깨닫지도 못했는데 몇 번 읽었다고 그 어느 누구한테도 명함을 내밀지 마라. 아무리 만 번을 읽어도 깨닫지 못했다면 그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어서 깨달아졌다면 만 번 이상으로 읽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수백구절 외웠다고 해서 대단하게 여기지 마라. 그 말씀의 본질과 원형을 모른다면 마치 술 취한 자가 가시나무를 흔들고 다니는 것과 흡사하다. 과거에는 암송을 자주했다. 그러나 말씀의 원형과 본질을 깨닫고 난 뒤에는 제대로 암송하는 구절이 없다. 암송을 못해도 괜찮다.
그러나 성경 말씀 속에 숨겨진 원형과 본질을 찾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 깨달을 때까지 그 깨달은 말씀을 삶 속에 적용하는 찬송을 해야 한다. 생명이 바뀔 정도로 불러야 한다. 그리고 생명이 바꿔진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한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겠다는 다짐과 결단, 맹세의 모습을 보여드리면서 하나님의 형상이 이루어진 것을 나타내야 하는 신앙인의 기도요, 찬송이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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