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7. 23:57ㆍ좋은 글, 이야기
하나님은 사명을 주시고 함께 하십니다
이제 때가 되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는 사명을 주십니다. 이 이야기가 기록된 출3:1-12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몇 가지 메시지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1절(상)을 보면 모세가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명을 주셨습니다.
모세가 애굽 왕의 딸의 아들로 입양되어 애굽 왕궁에서 왕자의 신분으로 살았던 과거에 비하면 도망자 신세가 되어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고 있는 현재는 너무 초라하고 비천해진 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이었고, 그에 따라 모세가 묵묵히 순종함으로 주어진 일에 성실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섭리하심을 믿고 어떠한 자리, 어떠한 일이든 하나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며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 고전7:17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 등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이 자리는 너무 초라하고 비천하다 생각하고 그래서 불만 가운데 불성실해서는 안 됩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자리에 만족하며 주어진 일에 성실할 때에만 하나님의 뜻이 있다면 더 큰 자리에서 더 큰 일을 하게 하실 것입니다. 마25:21대로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에 충성한 종에게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1절(하)을 보면 모세가 호렙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 사명을 주셨습니다.
호렙산은 그 이름이 황폐한 지역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황폐한 지역, 즉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모세를 만나주시고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황폐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황폐하게 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고, 그래서 아무것도 없지만 도리어 하나님만으로 충만하게 되는 행복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호렙산, 즉 황폐한 지역은 고난과 외로움의 장소이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로 충만하게 되는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고, 그래서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서 없어지지 않는 모습을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습을 신기하게 여긴 모세는 그곳으로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15:17대로 아브라함에게도 불로 나타나셨습니다. 히12:29대로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종으로 삼아 박해하고 있는 대적 애굽을 소멸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주실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떨기나무 불꽃은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이 떨기나무, 즉 보잘 것 없는 가시덤불에 붙었습니다.이것은 현재 떨기나무처럼 보잘 것 없는 모세를 통하여 불과 같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전1:26-29대로 미련한 자, 약한 자, 천한 자, 멸시 받는 자를 택하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부으시고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시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크신 영광에 참예하게 하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그리고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타서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어떻게 나무가 멀쩡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택하여 사용하실 때에 때로는 그로 말미암아 고난의 길을 통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고난으로 내 자신은 망가질 것 같은 걱정에 사로잡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불은 떨기나무를 태워 없애지 않음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망가뜨리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3-4절을 보면 모세는 기이한 모습을 보려고 돌이켜 다가왔고,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다가오는 것을 보시고 모세를 부르셨고,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하셨던 것처럼 여러 간접적인 통로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모세처럼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민감함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간접적인 부르심에 우리가 모세처럼 조금이라도 반응하면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우리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보다 확실하게 직접적으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그때 우리는 모세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즉시 응답하며 듣고 순종할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그러셨듯이 복된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약4:8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를 사모하며 노력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찾는 자들이 찾을 것이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너무 가까이 나아오지 못하게 하시고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가까이 나아가 만날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으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결코 우리와 같은 사람이 아니시며 우리를 만드신 창조주이심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마땅히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신을 벗어야 합니다. 신을 벗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버리고 낮아짐을 뜻합니다. 우리가 피조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존경을 표하고 절대 복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앞에서 여러분의 신을 벗으셨습니까? 나 자신을 버리고 낮아져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고자 하시는 복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정체를 밝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의 말씀과 함께 이를 위하여 모세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주시기 전에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하신 것은 그만큼 구원의 말씀과 사명 부여에 권위를 더하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구원의 약속이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사명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확실한 약속이요, 반드시 수행해야 할 사명이라는 말씀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밝히신 것은 눅20:37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죽었으나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있으며, 따라서 그들과 맺으신 하나님의 구원 약속은 효력이 없어지지 않았고, 반드시 그들에게 했던 약속 그대로 성취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 사람이 바뀐다 해도 변함이 없으며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재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우리가 현재 어떠한 사람인지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붙들 수 있습니다. 도리어 우리가 현재 처한 상황이 힘들수록, 우리가 현재 부족한 사람일수록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으로 더욱 위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6절을 보면 이제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렸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정체를 밝히시는 순간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부족하고 죄악된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감히 바라볼 수 없었고 두려움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만나 뵈었던 사람들의, 성경에 기록된, 공통적인 반응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대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 앞에 낮아져서 엎드려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은 마땅히 우리의 경배를 받아야 할 분이십니다.
7-10절에서 이제 하나님께서는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하시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하시며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사명을 주십니다.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루실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그 약속대로 이루시기 위하여 세워 쓰시는 일군에게 감당해야 할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11절대로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모세는 하나님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묻습니다.우리도 하나님께 사명을 받을 때 이런 질문을 잘 합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어리석은 질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질문이 어리석은 이유는 12절에서 하나님께서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하신 대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세가 “내가 누구관대 그런 엄청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내가 너희들이 출애굽하여 이 산에서 나를 섬기는 날이 오게 하겠다.” 대답하시는 데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우리는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어요?”라고 물으며 나 자신의 능력을 걱정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네가 하는 것이 아니다. 너와 함께 하는 내가 하는 것이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10절에서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즉,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하게 하겠다.” “내가 하겠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 사명을 받은 우리는 “네 신을 벗으라.”하신 말씀대로 나의 주권을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전적으로 복종하여 행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주시며 약속하신 대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주신 사명을 이룰 수 있게 하나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는 권능이 없지만 하나님은 크신 권능이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로 주신 사명을 행하게 하십니다. 하실 수 있으신 하나님, 크신 권능이 있으신 하나님께서 하시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을 굳게 믿고 전적으로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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