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

2013. 10. 8. 11:03좋은 글, 이야기

 여호와 이레(준비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려가서 번제로 내게 드리라고 명령하신다. 아브라함은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고하지 않고, 심지어 외아들을 가장 사랑하는 이삭의 어머니 사라에게도(사라는 이삭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끔찍이 사랑했을 것이다) 상의하지 않고 다음 날 일찍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와 칼과 불을 챙겨가지고 두 종과 이삭을 데리고 길을 떠난다.

 

    산에 이르러 종들은 산 아래 두고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은(아마도 사춘기쯤 되었을 것이다) 준비물을 손수 나눠 들고 산을 오른다. 이삭은 힘이 있으니 번제에 쓸 나무를 지고, 아버지는 늙었으니 불과 칼을 들고 두 사람이 말없이 산을 오른다. 한참을 가다가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무슨 일인지 몹시 궁금한 이삭은 산 중턱에 이르러 드디어 입을 열어 아버지에게 묻는다. 이삭은 준비물로 미루어 보건대 하나님께 번제의 제사를 드리러 가는 것인 것쯤은 안다.

 

    “아버지,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아브라함은 뜨끔하다. , 이놈아, 네가 바로 번제할 어린양이다, 이렇게 말해야 하는데……. 그때 성령님께서 그에게 대답할 말을 주신다. 성령님은 항상 자기 사람들이 궁지에 몰릴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 못할 때 그 입에 할 말을 넣어주신다. 이것은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다.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삭은 아버지의 대답에 아직도 미진한 무엇인가 마음속에 남아 있지만 더 이상 추궁하지는 않는다. 그의 성품이 잘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삭은 부모님이 매우 늙어서 낳은 외아들이지만 차분하고 이해심 많고 마음이 넓다. 꼬장꼬장하지 않다. 잘 따지지 않는다. 웬만한 것은 다 이해하고 용납한다. 그의 삶 전체에서 그리하였다.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그리하였다. 당시에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인 우물 문제에서도 그리하였다. 그의 종들이 판 우물을 그를 시기한 이웃 사람들이 자기 종들을 시켜 빼앗아가거나 막아버려도 불평하거나 다투지 않고 다시 다른 곳에 우물을 팠던 사람이다.

 

   드디어 둘은 하나님이 지시한 곳에 도착한다. 아브라함은 마음이 착잡했을 것이다. 그는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는다. 갑자기 칼을 잡고 이삭에게 달려들어 잡으려 한다. 아브라함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시던 하나님이 급히 그를 부르신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이미 숫양을 준비해 놓으시고 계셨다. 숫양은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아브라함은 그 숫양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아브라함은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며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하였다. 우리는 모두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한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대신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하셨다.

 

   그 숫양이 바로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임을 그리스도인들은 다 알고 있다. 하나님이 자기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끼지 아니하시고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게 하여 보내셔서 인간의 죄와 허물을 대신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사 인간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고 그를 믿는 자들에게는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이러한 구속사를 펼쳐 가실 때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을 인간들이 알아주기를 원하셔서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대리 경험케 하신 것이다.

 

    성경에 자세하게 언급이 안 되었을지라도 성경을 읽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시의 아브라함의 심정을 깨닫는다. 백세에 낳은 독자 이삭을 자기 손으로 칼로 잡아 불 위에 얹어 태워 번제로 사용한다는 것은 아무리 믿음의 조상일지라도 참혹한 일임에 틀림없다. 하나님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실 때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졌다고 마태복음서는 증언하고 있다. 영화 <벤허>에서는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 하늘이 캄캄해지고 강풍과 폭우가 몰아치는 장면으로 묘사했다.

 

우   리 부부가 월요일 밤에 <산약초> 공부를 하게 되었다. 남편은 시골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이 현대병(, 당뇨, 고혈압 등)으로 고통을 받는 모습을 보고 어찌하든지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마침 주변 어느 요양원에서 월요일 밤에 두 시간씩 <산약초> 강사가 강의를 한다 하여 참여하게 된 것이다.

 

   강사님은 광주에 사무실을 갖고 있으며 오랫동안 <산약초>를 연구해왔다. 그는 기독교인이 아닌데 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자연에 인간의 모든 질병을 치유할 약초를 다 주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의 경험에 의하면 자연에 어떤 풀이 지천으로 나게 되면 다음 해에는 반드시 그 풀이 약이 되는 질병이 만연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 보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의 삶에서도 몇 가지 체득된 게 있었다.

 

    우리 교회 집사님 몇이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인하여 고생을 하며 살고 있었다. 어떤 집사님은 심지어 남편과 이혼하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한다. 술이 취한 후에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하여 한 때는 병원에 입원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은 병원에서도 특별한 치료법이 없는 모양이었다. 몇 달 있다 나오면 며칠 만에 다시 도져 마찬가지가 되고 말았다. 그들의 황폐한 삶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으나 딱히 도울 방법이 없어 안타까웠다.

 

    그런데 약초 공부를 하다가 알코올 중독을 치료할 좋은 풀을 알게 되었다. < 도꼬마리>라는 풀이다. 들판에 지천으로 나서 그 씨가 여물면 벌레처럼 옷에 붙어 귀찮은 풀이다. 우리가 공부 중간에 실생활에서 부닥치는 질병에 대해 질문을 하면 강사님이 잘 설명해준다. 알코올 중독자가 술을 끊게 하는 방법은 도꼬마리 씨를 태워서 갈아서 술에 섞어 몇 번 마시고 나면 다시는 술을 입에 댈 수 없을 만큼 술이 역겨워진다는 것이었다.

 

    몇 년 전부터 사택 앞마당에 그 풀이 나서 남편은 시시때때로 그 풀을 뽑아 버렸다. 길을 지날 때 그 씨가 옷에 붙으면 귀찮으니까. 그러나 야생초들이 으레 다 그렇듯이 뽑아도 뽑아도 그 풀은 다시 나서 잘 자랐다. 작년에 다 뽑았다고 했는데 올해엔 더 많이 나서 길 한쪽을 다 차지해 버려 그쪽으로 지나다닐 수가 없게 되었다. 마침 그 즈음에 한 성도가 남편의 알코올 중독으로 삶이 괴로워 교회를 쉬네 마네 했다. 하나님께서 그 풀이 필요하므로 우리 마당에 준비해 주셨음을 그제야 알게 되어 우리 부부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얘기를 하며 웃었다.

 

    그 후 남편은 고창에서 농사를 짓는 형님의 집에 다녀와서는 형님의 묵혀둔 밭에 도꼬마리가 엄청 나 있더라는 것이었다. 추석 때 가서 형님에게 그 풀을 뽑지 말고 두라고 말했다. 자기가 가을에 와서 그 씨를 수확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현대인들 가운데 알코올 중독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코올 중독자 가족을 둔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풀을 땅에 마구 마구 심어놓으신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알코올 중독으로 황폐해져 가는 가정을 안타깝게 여기신 것이다. 올해엔 우리가 먼저 두어 명을 대상으로 실험해보고 효과가 있으면 글을 써서 발표하리라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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