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원하시는 사순절은

2014. 3. 12. 11:10좋은 글, 이야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순절은

3월 5일 사순절이 시작되었다. 교회마다 사순절기간을 통해 특별새벽기도회를 실시하고 있으며 각종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순절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날을 기점으로 하여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리며 기도와 묵상, 금식 등으로 40일 동안 주님의 발자취를 밟아가고 있다.

왜 40이란 일정을 정해야 했는지는 자세하게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서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회수를 기억하고 있다. 다윗도 베들레헴 광야에서 아버지의 양을 목양하였다. 40일을 블레셋 사람들에게 훈련을 받았다. 40이란 숫자가 너무나 중요하다.

히브리어로 40 레비이(y[iybir]) ‘동침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40년이나 40일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로 동침되는 의미는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 말씀을 배우고 마음에 기록해서 실제의 삶 속에 적용하여 결실로 대답이 나와야 하는 의미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가 되는 수준으로 이끌어 올리기 위해서 40년이란 세월을 광야에서 생활하게 하신 것이다.

히브리어로 40년‘아르바임 솨냐’(hn:v; !y[iB;r]a') 는 숫자로 말하면 40년이라는 뜻이지만 이 말은 하나님의 질서정연한 말씀과 하나로 동침하기 위해 반복을 계속해 나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질서를 잡는 말씀인 광야 안에서 정돈된 하나로 동침되게 하기 위해서 반복된 훈련을 40년간 받게 하신 것이다.

이 과정을 통과하지 않으면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가 없다. 광야 안에서 하나님의 정돈된 말씀과 하나로 동침하지 못하고 반복된 훈련을 인내로서 통과하지 못한 불평, 불만을 일삼던 1대는 여호수아와 갈렙만 제외하고 모두 죽고 가나안에 못 들어갔다는 것을 뺘에 사무치게 기억해야 한다. 예수만 믿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교회를 다니고 유명한 목사 밑에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육에 속한 일련의 속성들을 깨뜨리고 죽이지 못하면서 불평하고 번민, 고통에 사로잡혀 아직도 애급에 머물러 있다면 광야 안에서 40년의 훈련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생명 길은 육의 속성을 죽여야 가는 길이기에 고난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어있다.

고난이란 의미를 지난번에도 언급했지만 주님과 함께 강한 체험을 같이 하는 그 자체가 바로 고난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광야 안에서 40년간은 걸음마를 배우고 영혼이 살쪄가면서 그리스도의 분량까지 장성한 자로 커가는 기간이다.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났다고 해서 신앙생활의 전부 과정을 통과한 것이 절대로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40년을 걸어서 통과하는 데는 과정이 있다. 신앙인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나서 하나님께서 독수리날개로 덮어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애급의 바로와 그 군대들에게 콧김을 불으셔서 홍해에 수장시키셨다고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찬양했다.

애급에서 나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고 계속해서 춤을 추고 노래만 부르는 일이 있는 줄로만 믿었다. 예수를 믿고 나서 구원을 받고 기쁨을 안고 춤만 추면서 천국 길을 가는 것으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젖만 먹는 어린아이 단계의 초보신앙이다. 하나님께서 광야 40년을 준비해놓으시고 이 광야 40년을 통과하게 하셨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어린아이 상태를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급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고 나서 이제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으로 착각을 하고 기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이제부터가 광야 40년이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육적 단계에 머물러 있으면서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은 이것이 한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다나가 다른 길로 빠져버리는 것이다.

사이비나 이단으로, 아니면 무속종교인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에서 벗어나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와 강을 건너 버리고 만다. 심지어 자살하는 목사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문제 기독교 안에 있으면서도 아직 광야에서 맴돌고 가나안 땅을 건너가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40이란 굴레 속에 금식기도를 매년 동안 하는 분들이 있다. 40이안 단어 속에는‘정리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기나긴 애급생활을 정리해야만 되는데 정리를 못하고 있다. 즉 죄에서 자유함을 얻고 불만 불평에서 해방을 얻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육의 속성에 젖어 헤매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40일 금식을 하거나 사순절 동안 40일 새벽기도를 하는 것은 일정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맥상통한 차원이 되기 위해서 자신의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 아무리 40일 동안 금식과 기도를 하고 난 뒤에도 정리가 되지 않으면 수포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로 인해서 실족된 존재가 없는 살펴야 할 것이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간 것은 키가 작아서가 아니라 키가 큰 존재들이 삭개오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존재가 바로 내가 아닌지를 성찰해야 할 것이다. 뽕나무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십자가의 역할을 한 것이다.

나무는‘에츠’(#[<)인데‘상담하다’는 뜻으로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주님과 상담을 해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나무를 짊어지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한 길을 걸어가신 것이다. 즉 죽은 나무인 나(我)와 살아 있는 나무인 예수와 한 몸이 되는 사건이 바로 십자가 사건이다.

십자가를 목에 걸거나 귀에 거는 장식용이 아니다. 내 안에 이미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장식용으로 신앙생활하지 마라. 신앙은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니는 액세서리가 아니다. 만약 그런 생각이나 의식을 갖고 행동하고 있다면 신앙생활이 아니라 종교생활인 것이다. 그게 바로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적인 삶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정리가 안 되었다면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말씀으로 동침해야 한다. 아가서를 왜 읽어야 되는지 그 어느 누구도 올바르게 깨닫지 못할 것이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면 다른 곳에 가서 자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것처럼 영적 간음과 혼외정사를 숨어서 하지 않고 아예 드러내면서 하고 있다.

현재 부정적인 모습으로 교회 안에서 헌금유용, 재정남용, 부적절한 여자 문제, 각종 부도덕한 행위를 영적 간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주 은밀하게 위선과 애곡을 넘나들면서 마음껏 자행하고 있음을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종교의 테두리를 갖고 있는 한 그런 악행은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

종교적인 프로그램에 의해서 사순절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순절을 맞이할 것인지는 독자들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주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사순절은 어떤 논리나 방법론을 내세우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말씀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하게 된다. 주님과 한 몸이 되어 동침하는 사순절이 되기를 바라면서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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