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경험들

2014. 4. 10. 10:20좋은 글, 이야기

불편한 경험들

글/ 김관성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시고 그에게 숨을 불어 넣으셨습니다. 그렇게 존재하게 된 인간을 히브리어로 ‘네페쉬’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표현으로 ‘생령’ 내지는 ‘살아 있는 영혼’을 말합니다.

그런데 ‘네페쉬’의 원래적 의미는 ‘목구멍’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목구멍은 갈망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임과 동시에 무언가를 목구멍으로 채워야 하는 갈망하는 존재이며 그것이 인간이 가진 한 단면입니다.

꿈과 이상에 사로잡혔던 젊은 시절은 어느새 다 지나가버립니다. 사랑과 열정도 식어갑니다. 삶이 이어지면 질수록 좌절할만한 일들이 많아지고 그것이 경중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무력감으로 우리 각자들의 삶을 찾아옵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살아보니 인생이 별것이 없더라.”를 삶의 철학과 가치관으로 자녀들과 젊은이들을 향해 전수하게 됩니다. 각자들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남아있는 시간들이 때로는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았는데........” 지나온 인생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니 즐겁고 복된 날들보다는 자책하고 한숨 쉬며 넘어온 시간들이 훨씬 많았음을 발견하게 되고, 앞으로 걸어야하는 시간들도 그와 비슷하리라는 예상이 우리 자신들을 또다시 서글프게 합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하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싶지 않는 현실이지만 삶과 인생이 그렇게 굴러가게 될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탄식과 눈물의 고개를 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절망과 좌절은 인간들에게서 떨어 질수 없는 단짝 친구들입니다.

아무리 멋지고, 신나고, 즐거운 경험도 그것의 기간은 짧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갈망과 소원함의 깊이와 넓이를 전부 채워주지는 못합니다. 결혼이 그러하고, 월드컵 축구대회가 그러하고, 여행이 그러하고, 섹스가 그러하고, 사업의 성공이 그러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들의 현주소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들을 이런 식으로 방치하실까요? 자기의 형상을 따라 지은 존재들의 삶을 매일매일 가슴속에서 사이다가 터지는 경험으로 인도하면 얼마나 좋으냐 말입니다. 왜 끊임없이 또 다른 것을 갈망하고 소원하면서 애타고 목말라하는 ‘네페쉬’의 자리로 몰고 가서 만족이 되지 않는 자리로 인도하실까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켜 줄만한 명확한 답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에 희미하게나마 그 이유를 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일성을 C.S 루이스는 던져줍니다. 그의 목소리를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 세계 내에서 결코 만족을 주지 못하는 어떤 갈망을 경험한다면, 가장 타당한 설명은 내가 또 다른 세계를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놀라운 통찰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인생가운데 경험하는 좌절, 절망, 눈물, 한숨, 무력감, 우울, 침체와 같은 감정과 정서들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에 빈 공간을 만드셨다. 이 빈 공간은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고 오직 하나님만으로 채울 수 있다.” 고 외친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눈물과 한숨으로 가는 인생이 되었다고 실패한 인생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천성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의 세심한 열심과 돌봄임을 기억하는 복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료/창골산봉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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