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27. 20:49ㆍ좋은 글, 이야기
영적 발돋움-헨리 나우엔
사실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사랑을 쏟았고 정성들여 키워놓은 자녀들을 떠나보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나름대로의 행로가 있는 손님에 불과하며 우리가 그들의 행로를 알 수도 없고 지시할 수도 없다는 점을 계속 되새기면 평안한 마음과 축복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보내기가 쉬울 것입니다. 좋은 주인이라면 존중하는 마음으로 손님을 맞고 손님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을 베풀 뿐만 아니라 그들이 떠나야 할 시간이 왔을 때 가게끔 놓아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머’에 계십니다. 즉 우리의 마음과 생각, 우리의 느낌과 사고, 우리의 기대와 바램, 우리의 삶을 이루는 모든 사건과 경험 너머에 계신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그 모든 것의 한가운데 계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핵심에 닿게 됩니다. 기도 가운데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부재 사이의 구분이 더 이상 실재로 구별되지 않는다는 점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기도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하나님의 부재와 결코 분리되지 않으며 하나님의 부재가 하나님의 부재와 분리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우리가 사람들과 같이 있는 경험과는 상당히 달라서 우리는 그것을 부재라고 여기기가 아주 쉽습니다. 한편 하나님의 부재를 강하게 느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됩니다. 시편 22:1-5은 이 점을 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짓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 하시니이다
우리 열조가 주께 의뢰하였으므로
저희를 건지셨나이다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경험을 표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체험의 정점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이 말씀을 하실 때는 철저한 홀로 됨과 온전한 받으심이 서로 잇닿았습니다. 그 완정한 공허한 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 졌습니다. 그 암흑의 시간에 새로운 빛이 나타났습니다. 죽음을 목격했을 때 생명이 확실하게 증언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재가 가장 큰 소리로 표현 되었을 대 하나님의 임재가 가장 심오하게 드러났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끈기 있게 기다리면서 우리는 그 사람이 이미 우리의 삶으로 가득 채웠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자기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아들이 멀리 떠나 있을 대 더 깊어질 수 있듯이, 자녀는 집을 떠나있을 때에야 부모에게 감사하는 것을 배울 수 있듯이, 또 연인들이 서로 오래 떨어져 있을 때 서로를 새롭게 발견 할 수 있듯이 하나님과 우리의 친밀한 관계는 하나님의 부재라는 정결케 하는 체험을 통해 더 깊어지고 성숙해 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갈망에 귀 기울임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그 갈망을 지으신 분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자기고독의 중심을 접하면서 우리는 자신이 이미 사랑의 손길로 만져졌음을 감지합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먼저 우리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점과 우리가 친밀함을 베풀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하나님 자신의 내적인 친밀함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내면 존재의 중심에 하나님으로 가득 찬 우리의 생각이 내려와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빈자리를 마련할 때 우리의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됩니다. 그 자리에서는 생각과 느낌의 차이, 아는 것과 겪은 것의 차이, 사고와 감정의 차이가 없어지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생각에서 모든 사고를 비워내고 우리의 마음에서 모든 경험을 비워낼 때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집을 내면 존재의 중심에 마련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바울처럼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도란 결코 달콤하거나 쉬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을 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서 고통을 없애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도는 우리에게 더 큰 고난을 줍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은 고난당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고, 우리가 들어가게 되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그분이 사랑으로 인간의 모든 고통을 품으시는 친밀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얼마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는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고난 받을 것이고 더 많은 빛과 더 많은 어두움을 볼 것이고 더 많은 은혜와 더 많은 죄를 깨닫게 될 것이고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더 많이 내려가서 거기서 하나님을 향해 발돋움 할수록 고독은 고독을 향해 말할 수 있고 깊음은 깊음을 향해, 마음은 마음을 향해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고통을 함께 발견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거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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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창골산 봉서방]'좋은 글,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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