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방과 중언부언 기도에 대하여

2020. 8. 5. 11:16좋은 글, 이야기

골방과 중언부언 기도에 대하여

 

마태복음 6장 5-8 “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절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절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절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5-8).”

 

이 말씀은 성도들에게 잘못된 기도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본문이다. 대체로 “기도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조용히 하라. 기도할 때 한 말 또 하고 또 하듯이 같은 말을 반복하지 말라”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잘못되었다.

 

“본문은 5-6절과 7-8절, 둘로 나누어 생각해야 한다. 보통 기도를 별로 하지 않는 분들일수록 오늘 본문을 강력한 무기로 사용한다. 새벽기도나 수요기도회, 철야 기도하러 교회에 가는 사람에게 ‘기도는 골방에 가서 은밀하게 해야지. 왜 꼭 교회를 가서 해야 하냐?’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적용이다. 결국 이런 잘못된 해석과 적용은 성도들의 기도 생활을 방해한다.

 

5-6절의 적용에는 전제가 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 특별히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기도에 대한 태도 즉 "외식하는 자"와 같이 기도하는 것을 남에게 자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그런 전제없이 아무렇게나 보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절이 아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기도를 꾸짖는 누가복음 18장 9-14절이 마태복음 6장 5-6절과 관련 있다.”. ”12절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13절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2-13). “

 

바리새인들의 이 기도에는 그 마음속에 ‘내가 이만큼 기도하는 사람이야. 내가 율법을 지키는 사람이야. 내가 이만큼 금식하는 사람이야. 내가 이렇게 경건한 사람이야’라는 자기 의가 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 6장 5-6절은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기도, 자신을 드러내며 자랑하는 자들에게 그렇게 기도하지 말고 차라리 문을 닫고 골방에 가서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7-8절이 더 심각한 문제다. 중언부언이 무엇인가? 우리는 보통 기도하다 보면 자연스레 반복되는 말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말씀이 떠올라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중언부언하지 말라’ 앞에 ‘이방인처럼’이란 단어가 있다. 결국 중언부언이란 말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이란 말이 강조된다. 그렇다면 이방인처럼 중언부언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에 이방인의 중언부언을 잘 드러내는 기도가 있다.

 

바로 열왕기상 18장에 엘리야 선지자와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이다.”“26절 그들이 받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르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 정오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여 이르되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이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더라(왕상 18:26-28).”

 

“바알 선지자들의 기도 모습이 26절에 나온다. 그들은 몇 시간을 불을 내려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28절에서 그들은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기도한다. 여기서 규례란 매뉴얼을 의미한다. 즉, 이방인들의 기도 이미 짜여진대로 기도한다는 뜻이다. 그 기도의 특징은 두 가지이다. 이 땅에서 내가 잘 살고 잘 될 것에 대해서, 그리고 이 땅에서 자기 가족이 잘 되는 것이 목적이다. 

 

어느 무당이 점치러 온 사람에게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고 말하는가? 재물로 가난한 이웃을 도우라고 말을 하는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하는 무당이 있던가?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 왜? 그들은 악령에게 사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가 이런 샤머니즘에 사로 잡혀있다. 많은 성도들의 교회 다니는 목적이 이 땅에서 자신이 형통하고 자녀들이 잘 되는 것을 기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언부언하는 샤머니즘과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중언부언의 헬라어의 어의는 무엇일까

 발음 : 밧톨로게오(battologevw, battologeo,)

 어근 : 바토스(Batto",말더듬이)와 로고스(lovgo"말씀,)의 합성어

 해석 : 성경 말씀에 능숙하지 못하고 더듬다. 다시 말해 말씀을 붙들지 못하고, 또는 말씀에 입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세상적이고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단어로 유창하게 기도하는 것을 중언부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성경의 잘못된 해석으로 오히려 기도를 막는 경우가 많다. 기도에 관한 성경의 올바른 해석으로 더욱 기도에 열심을 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자기 의를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어 하는 외식하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고.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뜻은 이방인처럼 성경 말씀 없이 이미 짜여진 각본대로 특정한 단어를 주문처럼 외워되지 말라는 뜻이다.

 

오늘부터 말씀을 읽고  그 말씀 속에 부딪치는 한 구절을 붙잡고 구하고 싶은 것을 반복적으로 기도해도 상관없다, 한 시간 내내. 주여~ 예수님~만 부르짖어도 상관없으니 담대히 기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