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6. 19. 12:52ㆍ신앙간증
10년전 네팔서 남매 잃고 방글라데시서 8년째 사역 이중환 선교사 특별한 이야기
“처절하고 극심한 고통을 통해 주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었습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8년째 사역하고 있는 이중환(47) 선교사의 고백이다. 선교사로서 엄청난 고통을 당했던 이 선교사는 “고난의 과정은 ‘내 선교’에서 ‘하나님 선교’로 전환되는 훈련이었다”고 간증했다.
공대생이었다가 신학교에 입학한 이 선교사는 채플 시간에 한 선교사로부터 선교 현장 스토리를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순교 이야기였고 자신도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후 1995년 교단(기성)의 파송을 받아 네팔 선교사가 되었다.
고도 3000m 높이의 동부 산악지대. 그는 거기서 초등학교 운영과 교회 개척 사역, 순회 전도사역을 펼쳤다. 6살난 쌍둥이 남매와 돌 지난 아들을 사모에게 맡기고 때로는 한 달씩 집을 비우는 일도 있었다.
선교사 3년 차인 1997년 1월 초, 고산지대의 추운 날씨 때문에 아이들의 방에 석유난로를 켜놓은 게 화근이었다. 쌍둥이 남매는 가스에 질식돼 숨을 거뒀다. 그날은 한국 단기 선교팀이 방문하는 날이었고 환영식은 장례식으로 변했다. 네팔 신두와 마을 교회옆 양지바른 곳에 남매를 묻은 이 선교사와 사모는 한없이 울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을? 왜 두 명씩이나 데려가셨는지 원망스러웠다. 신학교 시절 선교사로부터 들었던 순교 이야기와 아이의 죽음이 겹쳐졌다. 가혹했다.
현장에서 철수하고 3개월을 안식하면서 그와 사모는 실어증 환자처럼 말을 줄였고 하나님과 대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류 구원을 위해 자기 아들을 사망에 내어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해는 감사로 변했다. 그는 네팔에 뼈를 묻으리라는 각오로 다시 들어갔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는 건 또 다른 고난이었다. 학교 운영에 대한 현지인의 집요한 방해와 정부에 대한 투서로, 급기야 네팔 정부로부터 추방 결정이 내려졌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사고로 죽은 아이에 대한 살해 누명까지 쓰고 법원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처참한 안식년’을 맞아야 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이기에 이토록 쓴 잔을 마셔야 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그를 선교지로 부르고 계셨다. 이번엔 방글라데시였다. 사역 3년째 되는 해에 그는 피묻은 복음의 메시지를 재발견했다. 마치 마른 뼈가 살아나는 듯했다.
“아이들의 죽음도 결국 순서가 바뀌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난이 영광과 복으로 다가온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참된 십자가 복음의 만남을 통해 선교는 오직 주님께 속해 있음을 깨달았다.
이 선교사는 지난 8년 동안 방글라데시에서 무려 33개 교회를 개척했고 지금은 현지인 사역자 목회 프로그램과 제자훈련 사역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고난의 터널을 통해 하나님은 더 큰 사역을 맡기셨고 또 이루게 하셨음을 이 선교사는 확신하고 있다.
글·사진=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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