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7. 21. 08:45ㆍ신앙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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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은인들 홍 목사가 신앙인으로 또 목회자로 거듭나 지금의 소신 있는 목회를 하기까지는 몇 사람의 만남이 있었다. 그는 먼저 아내 박미령 사모(50)를 꼽는다. 할아버지 영향으로 신앙을 접하게 된 홍 목사는 사회에 발을 내딛으면서 교회를 떠나게 됐다. 그를 박미령 사모가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은 것이다. 탄탄한 박 사모의 신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홍 목사는 그로 인해 다시 교회를 찾았다. 그러나 20여 년만의 교회 생활은 그에게 이질감으로 다가왔다.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홍 목사는 최재숙 목사(당시 영락교회 전도사)를 기억했다. 당시 인기가수로 살던 홍 목사에게 따끔한 충고를 준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당시 최 전도사는 홍수철 가수에게 예배 전 주보를 나누어주며 “세상 인기보다 하나님의 인기를 얻는 사람이 되세요”라고 말하곤 했다. 홍 목사는 그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기 가수인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어느 날 홍 목사는 “내가 교회를 계속 나가든지 아니면 끊든지 분명히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이 상태로는 너무 불편해서 교회에 나오기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정확히 기억해요. 그때가 지난 1988년 12월 24일이었어요. 크리스마스 이브인데도 그날따라 스케줄이 여유가 있었어요. 그래서 진지하게 ‘기도’라는 것을 하게 되었지요. ‘하나님, 도와 주세요. 교회를 제대로 나가 술과 담배도 끊고 살든지 아니면 그만 두겠습니다’라는 식으로 거의 강짜를 부린 것이지요. 얼마나 기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갑자기 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어요. 갑자기 회개의 기도부터 많은 기도를 하게 되었지요.”홍 목사는 다시 결심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말이다. 그때부터 교회 생활이 새롭게 보였다. 은혜스러웠고 또 재미있었다. 방송 스케줄을 변경해가며 또는 이런저런 핑계를 만들면서까지 예배에 꼭 참석을 했다. 아내와 함께 철야예배까지 찾아가기도 했다. 그것이 그에게 즐거웠다.
홍 목사는 신앙생활에 대해서 너무나 궁금한 것이 많았다. 그중 예수님이 왜 그렇게까지 고난을 받으셔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성경통독은 ‘만병통치약’과도 같았다. 너무도 재미있었다. 그는 프로그램 쉬는 시간에도 계속 성경을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했고 또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경을 계속 읽던 홍 목사는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리고 기도했다.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쳐다봤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홍 목사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주님, 절 용서해 주세요”라는 고백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알았어요. 참 기쁨이 무엇이지 말이죠. 그동안 사실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항상 공허함에 시달렸었거든요.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 생활 속에서 말이죠. 참 평안을 발견했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나’ 중심에서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요.”그는 대중가수의 길을 접고 찬양가수의 삶을 살기로 했다. 작지 않은 결단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듯이 아내가 그의 길에 함께해주었다. 연예인의 화려한 생활에서 신앙인의 경건한 삶으로 급회전을 하게 된 것이다. 찬양가수의 삶에 그는 만족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이 의아해 했지만 그는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라고 굳게 믿었다. 큰 교회보다는 주로 작은 교회, 가까운 곳보다는 가능하면 먼 곳을 찾아다니며 찬양 집회를 했다. 장애인과 소외된 분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나의 고백’이라는 찬양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가수'에서 '목사'로 찬양가수 홍수철에게 큰 고민이 찾아왔다. ‘신학을 해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이것까지는 아니다’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나 끊임없는 권유가 그를 고민하게 만든 것이다. “주님의 인도하심인데 제가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많은 기도를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일단 신학공부를 하는 것이 찬양가수의 길을 가는 것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신학교 문을 두드리게 된 것이죠.”
“신학교 졸업 후 바로 교회를 개척했어요. 약 20평 되는 작은 예배당을 얻어 아내와 단 둘이서 새벽예배를 드리면서 시작했지요. 조금은 답답하기도 했었지만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믿고 열심히 사역했어요.” 홍 목사에게는 ‘진실함’과 ‘열정’이 무기였다. 아니, 그것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통했다. 한두 명씩 방문하던 이들이 계속해서 교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년 만에 비록 작지만 20평의 예배당이 성도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새벽예배 때도 20, 30여 명이 고정적으로 참석했다. “특별한 프로그램은 없어요. 그저 아픈 분들을 열심히 찾아가 위로하고 기도해 주었지요. 또 교회를 떠나지 않고 언제나 제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항상 있으려고 노력한 것밖에는 말이죠.”홍 목사는 개척 3년만에 예배당을 확장하게 됐다. 두 배 크기로 말이다. 현재의 상가 자리 바로 위층이다. 더 큰 사역으로 인해 어깨가 무겁지만 이제껏 함께한 은혜가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감에 넘쳐 있다. “새벽마다 고백하는 기도가 항상 동일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저를 도와주세요. 하나님이 이끌어주지 않으면 안 됩니다’는 것이죠. 그냥 저절로 그런 고백이 나와요.”홍 목사의 사역에 절대적인 응원단이 있다. 바로 아내 박미령 사모와 신학생인 자린(21), 요셉(14, 중2)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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